[단독] 20대 남성 역차별? '스펙' 같은 20대 여성, 남성보다 17.4% 적게 번다

2019. 3. 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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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과·학점 같아도 여성 소득 남성의 82.6%에 불과
임금 차별 없는 공무원·교사로 여성 응시자 몰려
"'여성 고용 할당제'가 남성 역차별이라는 것도 편견"
지난해 3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3시 스탑 조기퇴근시위’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

박기동(62)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은 2014년 12월 사장에 취임한 뒤 인사 담당자 등에게 “여자는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단절될 수 있으니 조정해서 탈락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전 사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현장 업무 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각종 업무 투입에 적절하지 않다’는 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면접에서 1위였던 여성이 8위로 순위가 변경되는 등 합격권 여성 7명이 불합격 처리됐다. 지난해 11월4일 대법원은 박 전 사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

국민은행 인사팀장 오아무개씨와 전 부행장 이아무개씨, 인력지원부장이던 에이치알(HR)총괄 상무 권아무개씨는 2015년 상반기 신입 행원 채용과정에서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남성 지원자 113명의 서류 전형 평가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췄다. 지난해 10월26일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위반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1심 재판부는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위의 두 사건은 공기업과 은행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차별 채용을 했다가 유죄를 받은 사례다. 최근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 사이에선 적어도 20대에선 남녀가 평등하다거나 혹은 남성들이 되레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여성 노동 정책의 중심을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 이후 ‘경력 단절 예방’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뒤집고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되기 전인 20대 사회 진출 초기부터 임금에서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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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같아도 여성 임금 남성 82.6% 불과

최근 한국사회학회 논문집 <한국사회학> 제53집에 실린 캔사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와 오병돈 연구원의 논문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를 보면, 20대 여성은 남성과 학교와 학과, 학점 등 ‘스펙’이 모두 같아도 남성의 82.6%밖에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한국고용정보원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를 이용해 소득이 있는 21~29살 응답자 7만5337명 가운데 대학을 졸업한 뒤 18~24개월이 지난 미혼 취업자의 월평균 소득을 측정한 결과, 대학 졸업 2년 이내 남성의 월평균 소득은 216만원으로 여성의 평균 소득 173만원보다 20% 많았다. 특히 노동자 1천명 이상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성은 30%인데, 여성은 23%에 불과했다. 반면 시간제 근무자 비율은 여성이 남성에 견줘 2배 가까이 높았다. 게다가 남성 39%가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평균 이상의 월급여가 지급되는 정규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은 20%에 불과했다.

‘스펙’이 같아도 여성은 임금 차별을 받았다. 연구팀이 △370개 출신 대학 △205개 세부 전공 △학점 △국외 어학연수 여부 △출신 고등학교의 계열 등 모든 변수를 통제해 가족 배경뿐만 아니라 학교·학과·학점 등 이른바 ‘스펙’이 같을 때, 대학 졸업 이후 2년 이내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82.6%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가 직업과 전공의 성별 분리가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공학 전공의 소득이 타 전공의 소득보다 높은데, 한국은 남학생이 공학 부문에 집중돼 있는 반면 여학생은 교육이나 인문학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남성들 사이에서 그동안 20대 여성의 낮은 소득은 성별에 따른 전공 분리의 결과, 즉 소득이 높은 공대 출신에 남성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연구 결과, 대학 세부 전공, 직업, 고등학교 계열이 같은 상태에서도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85%에 불과했고, 특히 공대 나온 여성은 공대 나온 남성의 82.9%만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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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차별 피해 공무원 시험 몰리는 여성들

연구팀은 국가가 법률 등으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는 공공부문 취업 시장에 여성 응시자가 몰리는 이유도 민간기업의 남녀 임금 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무원과 교사 등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97.4% 정도인 것으로 나타나 다른 직업군보다 격차가 훨씬 적었다. 연구팀은 공공부문의 2.6% 남녀 임금 격차는 사실상 군필 남성과 여성 사이의 호봉 격차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도 학교와 학과, 학점 등의 ‘스펙’을 동일하게 통제하면,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91.9%로 격차가 벌어졌다. 연구팀은 이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출신 대학이나 전공면에서 남성보다 높은 스펙을 가진 여성들이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에 더 몰리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김창환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학과 학점 등 조건이 같아도 남성은 7급, 여성은 9급 시험에 응시하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이는 민간기업에서 성별 임금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여성들이 직급과 상관없이 공무원이나 교사 등 공공부문 직종 자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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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고용 할당제’가 남성 역차별이라고?

연구팀은 최근 제기되고 있는 ‘20대 남성 역차별설’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작성한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현안 보고서를 보면, 20대 남성들은 “성별 할당제, 가산제 등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된 여성 편익 친화적 정부정책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팀이 내놓은 조사 결과는 이런 분석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 2년제 대학 출신 여성의 월평균 소득은 같은 학교를 졸업한 남성의 83.1%였다. 하지만 상위 10위권 대학 출신 여성은 남성의 78.3%로, 2년제 대학 출신보다 되레 격차가 더 컸다. 이에 연구팀은 “주로 상위권 대학 출신 여성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큰 여성 고용할당제 때문에 역차별이 발생한다면, 상위권 대학 출신 여성들의 임금 격차가 더 적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처럼 남녀 임금 차별이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이전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부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채용 초기 단계부터 여성 차별을 막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환 교수는 “‘기회균등’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민간기업의 채용과정 중 여성 차별이 존재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민간기업에 여성 채용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성이 몇 명 지원했고 회사가 몇 명의 여성을 채용했는지 현황을 요구할 필요는 있다. 많은 기업들이 납품과 용역 등에서 정부와 같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정부가 여성 채용 현황을 협업의 조건으로 내거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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