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경찰 '반민특위 습격'..민족반역자에 면죄부

김대근 2019. 3. 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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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졌던 반민특위는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해체됐습니다.

친일경찰의 조직적인 방해와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후 민족반역자들은 면죄부를 얻었습니다.

김대근 기자입니다.

[기자] 친일 행적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지난 1948년 조직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어렵게 출범은 했지만, 친일파의 방해 공작과 회유에 시달렸습니다.

[김정륙 /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아버지 수행비서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감투를 들고 왔어요. '슬슬하고 대충 넘어가보자. 내각에 들어와라. 뭐를 원하느냐.' 아버지가 화가 난 거예요. 감투를 들고 흥정하러 왔다고.]

친일파 청산에 부정적이던 이승만.

친일경찰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반민특위 암살 계획을 세우거나, 사무실 앞에서 연일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1949년 6월 6일, 친일경찰들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을 벌였습니다.

[김정륙 /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친일파에게 당한) 피해를 호소하는 고발장이 전국에서 반민특위로 들어왔는데, 엄청 쌓여있었어요. 산 증언이거든요, 이게.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에요. 얘들(친일경찰이)이 쳐들어와서 제일 먼저 없앤 게 그겁니다. 그걸 탈취해서 불살라 버렸어요.]

결국, 특위는 1년도 안 돼 해체됐고, 민족반역자에 대한 심판은 흐지부지됐습니다.

역사에 친일 잔재라는 오점을 남긴 반민특위 습격 사건.

70년이 지났지만, 경찰의 공식 사과는 없습니다.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친일세력 청산을 위한 조직을) 국가 공권력이 침탈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특히 거기 앞장섰던 대한민국 경찰은 단 한 번도 사과나 반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민주경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민특위 해체 사건의 원죄가 있는 선배들의 행위에 대해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경찰은 그 뿌리를 임시정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인 백범 김구 선생을 1호 경찰로 기리고 있습니다.

가려졌던 역사를 발굴하는 노력이 과거의 잘못까지 드러내는 용기로 이어진다면,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도 더 커지지 않을까요?

YTN 김대근[kimdaegeu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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