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부역자 처벌 안한다".. 미래 위해 과거와 선 긋다

홍주형 2019. 3. 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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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전환에는 과거 청산 문제가 남는다.

폴란드의 관대한 과거청산 방식은 폴란드만의 체제 전환의 맥락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 이후 상황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과거 청산의 문제가 대두되는 모든 나라에 일정 부분의 시사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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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관대한 과거청산 '굵은 선' 정책 / 1989년 협상 통해 동구권 첫 체제 전환 / 공산 세력 잔존 전면 청산 어려워 타협 / 지식인, 관대한 방법 도입 자긍심 가져 / 젊은 층선 각종 문제의 출발점 취급도

체제 전환에는 과거 청산 문제가 남는다. 과거 체제에 부역해 반인권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다. 이 점에서도 폴란드는 독특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굵은 선 정책’이다.

지난해 12월19일 바르샤바 연구실에서 만난 마레크 한데레크(사진) 국립추모연구소 연구원은 “1989년 8월24일 초대 비공산 연립정부의 수장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총리는 ‘굵은 선’을 긋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이 ‘굵은 선’은 공산정권 하에서 활동한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전통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1990년 폴란드는 공산 비밀경찰을 해체하는 경찰 개혁을 단행했지만, ‘누가 비밀경찰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과거 비밀경찰을 색출하지 않았다. ‘베팅법(veting law)’이라고 불리는 과거청산법은 상당히 관대한 형태였는데, 공직자로 진출하려는 사람은 과거 공산 정권에 협조를 했는지 여부를 ‘선언’하면 면죄부를 받았다.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가 과거가 밝혀지면 공직 진출에 제한이 있도록 하는 정도의 구속력만 갖고 있는 법이었다.

지난해 12월22일 폴란드 바르샤바 노비 시비아트 6/12, 현 파이낸스 빌딩, 구 공산당사 앞. 바르샤바 전체가 긴 휴식에 접어드는 크리스마스 전 금요일 오후 건물 1층에 불이 켜진 상점은 고급 수입 명품샵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 공산당의 거점이자 서구 자유 진영과의 최전선에서 동구권 공산 진영의 보루 역할을 했던 이 건물 앞에는 ‘데탕트(동서 긴장 완화)’의 상징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동상이 서 있다.
이는 ‘협상에 의한 체제 전환’이라는 폴란드 특유의 체제 전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서구 민주주의 진영과 동구권의 길목에 위치한 폴란드는 소련이 건재하던 1989년 동구권에서 첫 주자로 체제 전환을 이뤘다. 1980년 공산권 최초로 합법적 정치세력으로 등록한 자유노조(솔리대리티)가 1989년 2∼4월 구 공산권도 참여하는 원탁협상을 통해 그해 6월 처음으로 부분적인 자유선거를 치렀다. 자유선거를 치른 의석은 자유노조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여전히 공산당 세력이 압도해 결국 공산당 출신 대통령과 자유노조 출신 총리가 연립하게 된다. 말하자면 여전히 소련의 입김이 강한 동구권에서 폴란드는 공산당과 자유세력이 공존하는 체제 전환을 이룬 것이다. 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꾼 공산당은 여전히 폴란드에서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적 과거 청산은 쉽지 않았다.

폴란드의 관대한 과거청산 방식은 폴란드만의 체제 전환의 맥락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 이후 상황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과거 청산의 문제가 대두되는 모든 나라에 일정 부분의 시사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폴란드 지식인들은 이같은 관대한 과거청산 방식에 일반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제 전환 당시를 기억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폴란드 전문가들 역시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 중에서는 생각이 다른 이들도 있다. 한데레크 연구원은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폴란드 민주주의에 생기는 각종 문제의 원인으로 이 ‘굵은 선 정책’을 꼽기도 한다”며 “굵은 선 정책을 폴란드 사회에서 합의된 원칙으로 보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바르샤바=글·사진 홍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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