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탄핵 2년, 한숨만 나온다

박래용 논설위원 입력 2019. 3. 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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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역사는 나선형으로 흐른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 지 2년, 대한민국은 직진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전으로 돌아갔다. 정치분석가 박성민은 현재 한국의 유권자 구도를 30·20·30·20의 네 그룹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30%는 진보진영이고 두 번째 20%는 진보 쪽에 가까운 중도, 세 번째 30%는 중도보수, 마지막 20%는 태극기세력으로 대표되는 강경보수다. 현재 한국당 지지율은 갤럽 20%, 리얼미터 28%로 나온다. 맨 마지막 태극기 그룹과 비슷한 수치다. 지난 대선에서의 홍준표 득표율(24.0%) 그대로다. 지지층이 확장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체 유권자의 20%를 차지하는 강경보수는 이번 한국당 전당대회를 주도했다. 아스팔트 위를 떠돌던 이들은 장내로 들어와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난장판을 만들었다. 연설회장에는 ‘탄핵 부역자 나가라’는 팻말이 물결쳤다. 보수의 미래를 다투자는 전대는 ‘박근혜 배신자 찾기’로 변했다. 황교안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 결국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심을 산 강경보수 황교안은 대표가 되고, 민심을 얻은 중도보수 오세훈은 떨어졌다. 한국당은 딱 이만큼 민심과 떨어져 있다.

황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전투’와 ‘통합’을 선언했다. 20대 국회 들어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만 16번이다. 북한 인사의 방남을 막겠다고 한겨울 벙거지를 쓰고 통일대교를 막기도 했다. 달이 떠도 반대, 해가 떠도 반대였으니 새삼스럽게 전투 선언은 하고 말 것도 없다. 통합은 공허하다.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쪼개진 것은 친박과 비박 간의 갈등이 탄핵 정국 속에서 더는 동행이 어려울 정도로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을 나간 바른미래당이 다시 합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총선 전략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다고 그 결합이 오래갈 리 없다. 황 대표는 첫 당직 인사에서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할 사무총장 자리에 친박 원조(한선교)를 앉혔다. 새 대변인은 박근혜의 대변인(민경욱)이 맡았다. 좌파독재를 저지하겠다며 ‘신적폐저지특별위원회’(김태흠)를 만들었다. 친박은 똘똘 뭉쳤고 좀비처럼 다시 살아났다. 한국당은 타임머신을 탄 듯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갔다.

분노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 출범 3년차가 됐는데도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과거의 것이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위기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위기 곱빼기 상황이다. 과거의 것도 죽지 않고 새로운 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의 법치·민주주의 훼손은 역사의 퇴행이었고, 촛불은 그를 회복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시작한 거대한 변화는 정치 앞에 멈춰 섰다.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개혁은 철벽에 가로막힌 듯 힘을 잃고 있다. 국정 어젠다에서 개혁 의제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무능한 이미지가 겹쳐진다. 초기의 당당함과 신선함, 파이팅도 찾아보기 어렵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 완장이라도 찬 듯한 행세, 시민단체식 아마추어 발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돌려막기 인사, 말뿐인 개혁에 시민들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20대 폄훼, 판결 불복, 100년 집권론 같은 오만한 언행이 잇따르는 건 시민의 정서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징후다. 민주당 토론회에서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야당의 실수 없이는 총선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결국 재집권에 실패해 현재 집권세력이 제2의 폐족으로 전락할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새해 교수들이 꼽은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에도 이런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촛불의 무거움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때 80%대 대통령 지지율은 태극기세력을 제외한 모두가 지지했다는 의미다. 그 슈퍼 지지율은 근 반토막이 났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식 반대로 일관해온 한국당과 한 자릿수(리얼미터 9.5%포인트) 격차로 좁혀졌다. 한유총이 정부의 멱살을 잡고 흔든 것도 해볼 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적폐세력이 적폐저지위원회를 만드는 마당이다. 개혁을 하려면 담대한 발상, 과감한 도전, 실천이 필요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권교체는 시대교체로 이어지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절망으로 변하고 있다. 돌아가든 직진하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는 걸까. 시민들은 묻고 있다. 한숨만 쉬고 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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