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과자, 초콜릿에 숨겨진 인도네시아의 눈물

정대희 2019. 3. 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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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공익법센터 어필, 인도네시아 팜유산업 진출한 한국기업의 환경·인권 침해 실태 공개

[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인도네시아에 팜유농장을 소유한 한국기업
ⓒ 환경운동연합
 
라면과 과자, 초콜릿, 치약, 화장품, 아이스크림...
 
슈퍼파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산품들이다. 이 제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팜(Palm, 기름야자)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로 만든 식물성 기름, 팜유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팜유는 누군가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다.
 
5일 환경운동연합과 공익법센터 어필은 팜유산업의 환경과 인권 침해 실태를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시 종로구 카페 회화나무에서 '빼앗긴 숲에도 봄은 오는가'보고대회에서 이들은 삼성물산과 LG상사, 대상그룹, 포스코대우, 코린도 그룹 등 팜유산업에 참여한 한국 기업들의 민낯을 공개했다.
 
그라목손은 '죽음의 농약'으로 불리는 제초제다. 독성이 강하고 해독제가 없어 우리나라에선 2012년부터 보관도, 판매도 금지된 제품이다. 하지만 이 물질은 삼성물산 소유 인도네시아 팜유 공장에서 쓰였다. 김혜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현지 주민들은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그라목손을 다뤘고,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과 어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2008년 7월 인도네시아의 아테나 홀딩스와 합작법인 S&G Biofuel Pte Ltd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물산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리아우주의 농장 두 곳을 인수, 총 2만 4000ha 규모의 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삼성물산 소유 팜 농장이 들어선 뒤 수질오염 문제 등이 불거졌다고 주장했다. 김 활동가는 농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우물을 파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지역주민들은 빗물을 받아서 마시거나 물을 사서 먹는 수밖에 없다.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강물도 오염된 상태였다고 했다.
 
대상그룹도 비슷한 시기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2009년 11월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 PT. Miwon Agrokencana Sakt를 설립했다. 보르네오섬 서부 칼리만탄주에 위치한 농장을 인수해 총 1만 1130ha 규모의 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대상그룹은 보상 없이 경작허가권을 얻었다.

김 활동가에 따르면, 대상그룹은 인도네시아 6개 마을의 경작허가권을 얻는 과정에서 마을의 리더들을 모아두고 보상 없이 회사에 토지를 넘긴다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또 마을 주민들에게 충분한 사전 고지나 논의 절차도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은 눈앞에 불도저가 나타나고 나서야 마을이 경작된다는 걸 알았다.
 
이런 이유로 인도네시아 6개 마을 주민들은 농민조합을 만들어 지역 법원에 대상그룹의 경작허가권을 무효로 하는 소를 제기했다.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5ha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해 다시 경작허가권을 받도록 판결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환경연합 카페 회화나무에서 팜유 산업의 환경과 인권 침해 실태를 알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 정대희
 
포스코 대우의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은 2015년 세계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연기금(GPFG)의 윤리위원회가 문제로 삼으면서 국내외에 알려졌다. 환경운동연합과 어필에 따르면, 포스코 대우가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머리우케군 울릴린면에 PT Bio Inti Agrindo(이하 PT BIA)라는 이름의 팜유 플랜테이션(기업적인 농업경영)을 운영하고 있다.
  
김혜린 활동가에 따르면, GPFG 윤리위원회는 'PT BIA'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약 260여 차례 걸쳐 화재를 이용해 토지를 정리했다며, 인공위성 사진 등 증거를 내놨단다. 그리고 지난 2015년 'PT BIA'의 열대림 파괴와 생물 다양성 손실 등을 기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파장은 컸다. 같은 해 8월 GPFG는 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포스코 대우와 모기업인 포스코를 모두 투자대상에서 제외했다. 2017년에도 로레알 등 20개가 넘는 세계적 기업들이 포스코 대우가 산림파괴 금지정책(NDPE)을 채택하고 이행할 때까지 포스코 대우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해 2월 영국 최대 드럭스토어 부츠(Boots)가 포스코 대우와 거래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6월에는 세계 5위 연기금인 네덜란드 공적연금이 "개선의 여지가 없다"라며 포스코 대우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LG상사는 지난 2009년 11월,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자회사 PT. Green Global Lestari를 통해 보르세오섬 서부 칼리만탄주에 위치한 총 2만ha 규모의 팜 농장을 인수했다. 이후 팜유 공장을 준공해 생산량을 늘려나갔으며, 지난해 11월에도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주에 각각 8000ha와 1만 7000ha 규모의 팜 농장을 새롭게 인수해 연간 18만 톤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하지만 LG 상사 소유 팜유 농장도 토지분쟁과 수질 오염 문제가 불거졌다. 김 활동가는 LG상사 소유 팜유 농장 중 318ha가 숲으로 보존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팜유 농장에 포함돼 주민들과 분쟁을 겪고 있다고 했다. 특히 LG상사 소유 팜 농장에서 팜 열매를 수확한 농민 5명을 절도죄로 고발하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단다.
 
코린도 그룹의 환경파괴와 인권 침해는 잘 알려진 일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기업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선 재계 순위 20위권의 대기업이다. '코린도(Korindo)'란 이름은 한국(KOREA)과 인도네시아(INDONESIA)에서 이름 따왔으며, 팜유와 목재, 신문용지 생산, 금융산업, 해운물류 부문 등 60개 이상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어필에 따르면 코린도 그룹은 인도네시아 파푸아 주와 북말루쿠 주에 있는 8개 지역에 약 16만ha에 달하는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4만 9000ha를 차지하는 7개 지역은 파푸아 주에, 나머지 1만 1000ha는 북말루쿠주에 있다.
 
김혜린 활동가는 1998~2016년까지 코린도 그룹의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 부지에서 약 5만ha 이상의 산림이 파괴됐다고 했다. 서울시 면적과 맞먹는 크기다. 코린도 그룹은 지난 2013년부터 팜유 플랜테이션 사업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섰는데, 약 3년 만에 3만ha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림을 빠르게 파괴했다는 것이다.
 
2016년 글로벌 환경 연구 비영리 자문회사인 에이드인바이런먼트와 환경운동연합을 포함한 국내외 환경단체는 '불타는 낙원' 보고서를 발표해 코린도가 불을 사용해 토지를 정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위성사진과 항공사진, 화재정보 등을 통해 얻은 모든 증거에 따르면 2013년~2015년까지 코린도 그룹의 팜 농장 부제에서 최소 894개 이상의 화재지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김 활동가는 "토지 정리를 위한 방화는 인도네시아 환경보호 관리법에 따라 명백한 불법이다"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국제환경단체 열대우림 행동네트워크(RAN) 등 4개 환경단체가 발표한 '아주 위험한(Perilous)'에 따르면 코린도 그룹의 팜유 플랜테이션은 지역공동체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지역주민들의 관습적 권리가 인정되는 토지와 숲을 무단 점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이행도 실패하고, 경작허가권을 취득하지 않은 채 지난 2012년 불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코린도의 산림파괴 행위가 국제사회에 알려지자, 주요 고객들이 줄지어 거래를 중단했다"라며 "지난 2017년 6월에도 삼성 SDS와 통합 물류 협약을 체결하고도 이에 반대하는 세계 시민들의 청원으로 협약이 무산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의 팜유 농장
ⓒ 환경운동연합
  
정신영 어필 대표는 "한국 정부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환경 및 인권 침해의 위험이 있는 특정 국가의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 환경과 인권의 위험 요소에 대해서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라며 "또한 투자 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와 한국임업진흥원은 인도네시아의 팜유 산업에 진출한 기업들의 환경과 인권, 노동권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진출할 예정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팜유 산업의 환경과 인권 위험요소를 인지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 대표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기업은 신규로 산림을 파괴해 농장을 확대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라며 "해당 기업은 'NDPE(No Deforestation, No Peat, No Exploitation 산림 파괴와 주민 착취 등이 없는 팜유 생산)' 정책을 채택해 이행하고,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관으로부터 검증받은 이행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지하고 관련된 모든 문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지역사회 동의 없이 무단 점거해 운영 중인 플랜테이션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지역공동체 소유의 토지를 방화해야 한다"라며 "그곳의 파괴된 생태계를 복구하고, 지역사회와 노동자 권리침해, 생계수단 박탈에 대한 구제책도 마련해야 한다"라고 쓴소리했다.
 
한편, 환경운동연합과 어필은 한국에 수입되는 팜유량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이들에 따르면, 무역통계진흥원 자료를 통해 파악한 결과 지난해 약 606만 947t이 수입됐으며, 이 중 21만 9886t이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것으로 파악했다.
 
또,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림청에 제출받은 '인도네시아 팜유산업 산림청 융자지원 내역' 따르면, ▲대상홀딩스 69억 2400만 원 ▲LG상사 64억 2800만 원 ▲한국남방개발 21억 3700만 원 ▲제이씨케미칼 86억 900만 원 등의 금융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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