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저주'로 3대 메이저 휘청

2019. 3. 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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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내리막길 원전- ② 일본 해외사업 잇단 실패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 도미오카 지역의 임시 폐기물 저장소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건물 잔해와 흙, 낙엽 등을 담은 대형 플라스틱 봉지를 운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REUTERS

원전 강국 일본의 원전 수출 사업이 잇따라 좌초했다. 히타치제작소는 1월17일 영국 웨일스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호라이즌 프로젝트’ 중단을 공식 결정했다. 히타치는 이에 따른 3천억엔(약 3조680억원) 손실을 2018 회계연도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히타치 경상이익은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사장은 사업 중단 이유로 “민간 기업으로서 경제 합리성”을 들었다. 해외 원전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는 뜻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 등 잇따른 원전 사고로 안전기준이 강화돼 안전 관련 비용이 크게 늘었다. 인건비 등 다른 비용 증가도 만만치 않다. 반면 경쟁 상대인 풍력·태양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전력 구매 단가는 떨어졌다. 비용은 늘고 가격은 하락하니 원전 사업의 투자 여건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히타치는 2012년 독일 전력회사들로부터 원전 개발 업체 호라이즌뉴클리어파워를 892억엔에 인수해, 웨일스 북서쪽 앵글시섬에 원전 2기를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전체 건설비 3조엔(약 30조7천억원) 가운데 3분의 2는 영국 정부가 빌려주고, 3분의 1은 히타치와 일본·영국 투자자들이 부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익성 우려에 발목 잡혀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더 이상 투자자 모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히가시하라 사장은 호라이즌 프로젝트 중단 방침을 발표하면서 “몇 년 정도는 국내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사업 채산성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업 중단은 사실상 철수라고 전했다. ‘사업 중단’이란 표현을 쓴 것은 완전 철수 때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약금을 피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철수 도미노

히타치를 비롯해 일본 3대 원전업체인 미쓰비시중공업과 도시바도 ‘원전의 저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2013년 수주 전 막판에 한국을 제치고 터키 북부 흑해 연안의 시노프 원전 사업을 따낸 미쓰비시는 2018년 말 사업 철수 방침을 굳혔다. 철수를 공식 결정하지는 않았으나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수익 악화로 전력 단가 인상 등을 요구했으나 터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 원전 터 주변에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돼 건설비가 2조1천억엔에서 5조엔으로 불어났다. 게다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터키 화폐 리라 폭락으로 비용 부담이 더욱 커졌다.

일본 반도체 선두 주자였던 도시바는 원전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그룹 해체까지 내몰린 대표적 사례다. 도시바는 원전 건설의 대명사였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으나, 웨스팅하우스는 약 7조원 손실만 안기고 파산했다. 자금난에 시달린 도시바는 가장 돈 되는 부문인 메모리반도체까지 팔아야 했다. 메모리반도체 지분 40%를 유지했으나, 회사 경영권은 한·미·일 컨소시엄(SK하이닉스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 등)에 넘어갔다.

해외 원전사업 철수를 결정한 도시바는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위해 프랑스 엔지와 합작해 만든 원전 건설 업체 뉴젠도 청산하겠다고 2018년 11월 발표했다. 도시바는 한국전력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해 뉴젠 매각에 나섰으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자 청산을 결정했다. 웨스팅하우스 파산만으로도 이미 치명상을 입은 도시바는 잇따른 ‘원전 독배’로 재기 불능의 처지에 놓였다.

또 다른 원전 강국 프랑스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한때 세계 원전 4기 가운데 1기를 건설하던 프랑스 아레바는 핀란드 원전사업 지연 등으로 2014년 6조원 넘는 손실을 기록한 뒤 프랑스전력공사(EDF)에 원전사업을 매각했다. 아레바는 회사 이름을 오라노로 바꾸고, 원전 건설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사용 등 핵연료 관련 사업, 원자로 해체와 관련 기술 컨설팅 등에 주력할 방침이다. ‘세계원자력산업동향보고서(WNISR) 2018’ 주저자인 마이클 슈나이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 기업이던 아레바와 웨스팅하우스가 새 원전을 짓다가 줄지어 파산했다”며 원전시장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업계 재편 가시밭길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신·증설을 중단했다. 이후 “원전 수출로 기술력과 인재를 유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해외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다. 한국이 영국이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나설 때 내세우는 논리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본 원전 3사 모두 쓴맛만 보고 해외 원전 건설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현재 일본 국내외에서 원전 수주가 전무해 업체들로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 원전업계 재편과 통폐합이 불가피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업계에선 10여 년 전부터 재편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도쿄전력은 2020년을 목표로 협력의 기본 틀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8년 여름에는 전력업체인 도쿄전력과 중부전력, 원전 건설 업체인 히타치와 도시바가 제휴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경제주간 <도요게이자이>가 전했다. 우선 도시바와 히타치는 비등수형(BWR), 미쓰비시는 가압수형(PWR)으로 원자로 종류가 달라 통합이 쉽지 않다. 같은 비등수형 계열에서도 도시바가 기술력에서 앞서는 반면, 실적에선 히타치가 우세해 기싸움이 팽팽하다.

해외 원전 사업에서 일제히 철수한 것이 그나마 통합의 장애물을 줄이는 긍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히타치의 사업 중단 발표 직후에도 일본 정부는 원전 수출 전략에 변함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당장 생존을 위한 업체 간 통폐합이라는 높은 산부터 넘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박중언 부편집장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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