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한반도에서 자취 감출까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19. 3. 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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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KR), 독수리훈련(FE) 종료 / 北 핵실험·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상응조치 / 주한미군 주둔 필요 의문 제기 가능성 / 철수에 가까운 대규모 감축 우려도 / '위협'→'가치'로 한미 동맹 구조 전환해야

지난 70여년 동안 한반도 정세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한미군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물 것처럼 인식됐던 주한미군은 언제부턴가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미 동맹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대규모 연합 야외기동훈련이 종료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이었던 독수리(FE) 훈련은 올해부터 없어진다. 매년 3~4월 진행된 독수리 훈련은 한국군과 미국 본토 및 일본에서 전개하는 미 증원군이 실제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 진행하는 훈련이었다. 독수리훈련이 종료되면서 대대급 이하 소규모 훈련이 연중 실시된다. 매년 3월에 했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연합 지휘소 훈련인 키리졸브(KR) 연습도 사라지고, 동맹연습으로 대체된다.

독수리 훈련과 키리졸브 연습의 종료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고조된 북한 비핵화 협상 무산 우려를 불식시키고 대화 동력을 유지하려는 조치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한 것에 대한 ‘상응조치’인 셈이다.

하지만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과 미군 전략자산 전개 중단은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우려도 적지 않다.

한미 해병대원들이 시가지 전투훈련 도중 실내 진입 절차를 숙달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비싼 청구서 받을 가능성 높아져

독수리훈련과 키리졸브 연습은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전면전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다. 한미 양국은 100만명에 달하는 군대가 군사분계선(MDL) 북쪽에서 한반도 남부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상황에서 이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 미 육군과 공군 중 일부는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한국군과 다양한 종류의 훈련을 상시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기반한 작전계획을 발전시켰다. 미 본토 증원군이나 주일미군 병력은 한반도 전개 훈련을 통해 유사시 증원 과정을 익혔다. 지상군과 공군 외에 해군 및 해병대도 일부 병력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유사시 증원군의 한반도 전개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대규모 연합 야외기동훈련이 사라지면 수만명에 달하는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킬 필요성은 낮아진다. “훈련을 하지 않는데 굳이 그 많은 병력을 한반도에 둘 이유가 있는가. 다른 전장에 투입하거나 본토로 불러들이는 게 더 낫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단급 이상 대규모 실기동훈련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는 작고 가벼운 군 구조로 개편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지적도 피하기 힘들다. 대규모 훈련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미 공군 B-1B 전략폭격기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가 함께 비행하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제공
철수에 가까운 형태의 대규모 감축 우려도 나온다.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전력이 사용할 한국 내 주요 항구와 비행장 관리 인력 및 군수지원부대, 정보부대와 일부 공군전력을 제외한 지상군 전력을 철수하는 대신, C-17 전략수송기를 통해 미 본토나 일본에서 한반도로 대대급 이하 부대를 순차적으로 파견해 소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신속대응군 체제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한 군사적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미 본토보다 한반도에 주둔시키는 게 비용면에서 효과적인가”라는 ‘돈’ 문제만 남게 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국내 정치적 후폭풍 등의 의식,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만간 시작될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부담을 늘리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강해질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이 현재 규모를 유지한다 해도 예전과 같은 전투력을 발휘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려면 수만명의 한미 연합군을 지휘한 경험이 필수다. 하지만 대대급 이하 훈련만 하면 사령부 간의 작전 조율이나 군수지원 절차 등을 익히기 어렵다. 전면전 상황을 가정한 연합작전계획 업데이트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대규모 훈련 중단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재개할 경우 훈련 규모를 예전으로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한국 해군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이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과 함께 훈련 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위협→가치 위주로 동맹 구조 바꿔야

주한미군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기존에 수행했던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떠맡을 의사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소련은 붕괴됐고,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힘이 부족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 손을 떼기가 가장 쉬운 곳이다. 유전지역도 아니고, 미국으로 통하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위치해있지도 않다.

한국 육군 현무 탄도미사일과 주한미군 에이태킴스 전술미사일이 동해상의 가상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미국이 한국에 방위력을 제공한 것은 냉전 시절 유일한 전쟁터였던 한국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함으로서 유럽 등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20여년 전에 사라졌다. 더 이상 한반도에 남아있을 뚜렷한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은 소련이나 북한 등 공산주의 침략 대응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한반도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거부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부담이 늘어나기만 하는 곳이다.

만약 주한미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존재감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갖춘 일본, 핵보유국이자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중국 사이에 끼게 된다. 중국의 거듭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과 일본 초계기의 저공위협비행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쇠퇴를 틈타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주도권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반도의 바다와 하늘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격돌할 가능성도 있다. 양국은 이미 1894년 청일전쟁 당시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서로 싸웠던 전례가 있다.

한미 공병부대가 설치한 부교 위를 한국 육군 천마 지대공미사일 발사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육군 제공
이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한미 동맹 구조를 전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기존에는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위협’에 기반한 동맹 체제였지만, 앞으로는 서로 공유할 ‘가치’에 의해 동맹을 유지해야 미국이 한반도에 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은 1945년 8.15 해방 이래 70여년 동안 미국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시장경제나 민주주의 등 미국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도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전략적 차원의 고민을 미국과 얼마나 공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중국 견제’라는 요소를 미국과 공유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연합훈련도 많고 주둔군 규모도 큰 일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달리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크게 하지 않는 것은 비용 지출을 상쇄할만한 전략적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해병대원들이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목표지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해병대 제공
주한미군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전략적 공유가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의 팽창을 미국과 공동으로 견제해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함께 도모하는 방법과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전적으로 전담하고 미국의 힘을 다른 지역에 쓸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향후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 확률이 높다. 전략자산 전개 중지와 독수리훈련 종료는 한반도에 미군이 등장할 기회를 이미 줄여놓은 상태다. 군사동맹에 기반한 한미 관계 약화 가능성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가 실제로 이뤄지기 전에 ‘자국 우선주의’에 기초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요소를 정부는 서둘러 식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평화는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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