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탄광은 지옥"..'강제징용' 조선인 흔적 곳곳에

윤설영 2019. 3. 7. 08: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르포|'강제징용 지옥' 아소탄광 가다

[앵커]

일본의 대표적인 강제징용 현장입니다. 혹독했던 노동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 아소탄광, 그 현장을 지금부터 전해드리려고 하는데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 조선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아소탄광 창업주의 손자가 아베 정권의 2인자 아소 다로 부총리고 계속해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윤설영 특파원입니다.

[기자]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일본의 3대 석탄생산지인 지쿠호 지역입니다.

평범한 주택가에 1970년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탄광의 입구가 남아있습니다.

지쿠호 지방에 남아있는 유일한 탄광입구입니다.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요.

바닥의 경사가 45도쯤 될 정도로 매우 가팔라서 제대로 발을 딛고 내려가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강제징용자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기 어려운 석탄 굴 속에서 중노동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소 탄광은 '압제 탄광'이라 불릴 만큼 노동환경이 혹독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 약 8000명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4900명이 감시의 눈을 피해 도망갔을 정도입니다.

[도노무라 마사루/도쿄대 교수 : 기본적으로 야쿠자가 지배했습니다. 사람들이 도망가거나 잡혀 돌아오면 '린치'를 당하고…]

아소 탄광 인근 호코지라는 작은 절에 세워진 묘비입니다.

'조선인 탄광 순난자'라고 또렷이 적혀있습니다.

아소 가문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거대한 공장은 100년 넘게 가동 중인 아소시멘트 공장입니다.

공장이 보이는 이곳에 1000명이 넘는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이 살았습니다.

[박강수/재일 사학자 : (조선인 기숙사를) 료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수감소예요. 자유가 없고, 일만 하는 수감소였어요.]

아소시멘트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타테 공동묘지입니다.

이곳에 조선인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는데요.

위령비 어디에도 조선인이라는 표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소시멘트 측이 위령비에 '조선인'이라는 문구를 넣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납골당 문을 열어봤습니다.

하얀 광목에 조선인 이름이 쓰여진 유골함이 안치되어있습니다.

[박강수/재일 사학자 : 김도화, 여자 이름이죠. 아소시멘트에서는 여자도 일을 많이 했습니다.]

조선인 14명과 무명인 등 총 32기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박강수/재일 사학자 : '18구가 일본 사람이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일본식으로 바꿨기 때문에 (조선인일 수도 있습니다.)]

[도노무라 마사루/도쿄대 교수 : 안전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어서 사고가 잦았습니다. 일본인 노동자가 줄면서 자연히 조선인 노동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아소시멘트 사장을 지낸 아소 부총리는 조선인의 강제징용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영상디자인 : 오은솔)

◆ 관련 리포트
[르포] ② 강제징용으로 얻은 부, 대 이어 정치…'아소 제국'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165/NB11779165.html

◆ 관련 리포트
[르포] ③ 70여 년 흘렀지만 선명한 기억…징용 피해 밝힐 증거는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166/NB11779166.html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