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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북쪽 경계는 어디까지?

임기환 입력 2019. 03. 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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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66] 고구려가 6세기 중반 이후 요하를 너머 요서로 진출하여 대릉하 하류와 의무려산을 잇는 선까지 영역의 경계를 확장했음에 대해서는 전 회에서 언급했다. 다만 고대에 영역 경계는 오늘날 국경처럼 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이나 산맥 등 자연 조건이나 영역이 서로 맞닿은 국가들 간 세력 관계 등 다양한 조건에 의해 중간 점이지대가 설정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중간 점이지대는 주민이 살지 않는 공백으로 남는 게 아니라 두 국가와는 무관한 다른 종족이나 집단이 거주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말하자면 세력의 완충지대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경계가 선이 아니라 면이라는 점이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런 면의 형태를 갖는 경계선이 자연 조건이나 인문 환경에서 보아도 훨씬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딱 잘라서 선을 긋고 이를 양 국가와 주민의 단절적 경계선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사고와 행위다.

이처럼 면으로 구성되는 경계로서 점이지대나 완충지대는 양 국가의 역관계에 따라 수시로 변동하게 마련이다. 6세기 이후 고구려와 중원 왕조 세력이 충돌하는 고구려의 서쪽 경계가 그러했다. 6세기 전반에 고구려가 요서로 진출하였고,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수가 요서로 진출하면서 양국 간 경계의 충돌이 심화되고, 수의 고구려 원정에 따라 요서 지역이 수에 편입되는 변화가 이어졌다.

물론 수가 멸망한 뒤 고구려가 요서 지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였는지, 다시 요서로 진출하였는지 아니면 요하선에 머물렀는지, 또 당나라와 경계의 충돌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고구려와 당의 전쟁을 살펴볼 때 다루도록 하겠다.

이제 2회에 걸쳐서는 고구려의 북계와 동계에 대해 살펴보겠다. 6세기 이후 북계와 동계는 중원 왕조나 유목세력과 연속되는 서계와는 양상이 달랐다. 즉 고구려와 세력을 다툴 수 있는 수준의 국가나 정치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가 작은 편이었다. 이는 5세기 초를 전후하여 고구려 세력권 범위 내에서 경계가 형성되었고, 이를 깨뜨릴 형세 변화가 없이 고구려 말기까지 죽 이어졌기 때문이다.

본래 고구려가 성장해갈 때 3세기까지 고구려 서북쪽에는 부여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부여는 고조선의 뒤를 이어 만주 일대에 등장하여 세력을 떨쳤지만, 3세기 말 선비족 모용씨(慕容氏)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큰 타격을 받고, 346년에 다시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되면서 결국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부여의 본 중심지는 지금의 중국 길림성 길림시 일대이고, 후에 세력이 약화되면서 장춘, 농안 근처로 이주한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따라서 부여를 복속한 고구려의 북계는 과거 부여 영역의 북쪽 경계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3세기 중반 사정을 기록한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는 부여 북쪽에 약수(弱水)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 약수는 지금의 송화강으로 보기도 하고 흑룡강으로 보기도 하는데 전체 정황으로 보면 흑룡강이 타당해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가 부여의 영역을 모두 차지했다고 보면 북계는 흑룡강에 이르렀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흑룡강 전체를 하나의 경계선으로 그릴 필요는 없다. 부여가 농업에 기반을 둔 국가였기 때문에 부여의 영역 또한 농업이 가능한 환경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영역이라는 게 꼭 주요 산업 기반과 일치하는 땅만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교역이나 정치군사상 요충지나 전략적 거점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영역으로 편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근대 시대, 특히 고대사회의 경우 비효율적인 영역의 확보는 오히려 국력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굳이 영역으로 편제하지 않더라도 공납을 통한 간접 지배나 세력권 내에 거느리는 방식의 유연한 통제가 오히려 더 유리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 부여 복속지를 본다면 모든 부여 영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여의 중심 지역이 가장 중요하였을 것이다. 즉 부여의 수도였던 지금의 길림시 일대나 후기의 중심지인 장춘, 농안 지역이 우선이고, 다음에 길림의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교통로, 이른바 사출도의 지배 범위가 중시되었을 게다.

중국 길림시에 위치한 용담산성의 용담 : 용담산성은 부여의 수도에 축조한 고구려의 요충성이다. 현존하는 고구려 주요 성으로 가장 북방에 위치한다. /사진=바이두

전 회에서 영역이라는 게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질의 관점에서 보면 영역 전체가 균질적인 사례는 결코 없다. 중심과 변경은 꼭 정치사회적 관점에서만 따지는 게 아니다. 영역의 질이란 관점에서도 중심과 변경은 존재한다. 고구려의 북계를 따져볼 때 이런 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유목 지역이나 산림수렵 지역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여가 고구려에 복속된 이후 고구려의 북쪽에는 5세기 후반부터 물길(勿吉)이란 존재가 등장한다. 물길의 기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마 동만주 산림지대에 거주하였던 숙신, 읍루 계통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래 읍루는 부여에 복속되기도 하였는데, 부여 세력이 약화되면서 읍루의 일부가 성장하면서 후기 부여를 몰아내고 동류 송화강 혹은 흑룡강 일대로 세력이 확장된 것으로 본다.

5세기 후반 물길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 뒤 6세기 중반까지 20여 차례 북위에 조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나름 활동한 존재로서 북위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물길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물길의 존재는 고구려의 북계를 파악하는 데 주요 요소가 된다.

5세기 후반 고구려는 서방의 유목제국 유연과 손을 잡고 양국 사이에 위치한 지두우(地豆于)를 분할 점령하려고 했다. 지두우는 대흥안령 산맥에서 내몽골 지역에 걸쳐 위치했던 유목국가였다. 지두우 분할의 실행 여부와 결과는 기록상 나타나지 않지만, 지두우 옆에 위치한 실위에 고구려가 철을 수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보면, 고구려가 서북방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간 모습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물길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는 조공로를 100여 년 유지한 점을 고려하면 물길의 거주 지역과 물길에서 북위로 이어지는 교통로의 남쪽으로 고구려의 영역 범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구려의 서북방 진출에 따라 물길과 북위를 잇는 조공로가 차단되기도 하였고, 이 조공로가 북위와 우호관계를 고려한 고구려 측의 묵인 아래 유지된 것일 수도 있다. 물길이 고구려와 적대적이라는 점을 들어 북위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고 했던 점을 생각하면 고구려 북방의 물길이란 존재를 고구려에 복속된 존재로 볼 수는 없겠다.

고구려 북계와 관련하여 물길의 존재를 간략하게 언급하였는데, 물길의 본 거주지는 목단강 일대로 추정되기 때문에 고구려의 동계를 따질 때에도 고려 대상이다. 이 물길은 6세기 후반부터는 보이지 않고 그 대신에 말갈(靺鞨)이란 존재가 등장한다. 물길과 말갈은 음운에서도 서로 통하는 바 있기 때문에 어떤 계승관계에 있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말갈은 거주 공간 범위나 내부 구성이 훨씬 복잡하다. 말갈은 고구려와 수, 당 전쟁이 전개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하고, 양국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음 회에서 고구려의 동계를 짚어본 뒤에는 물길, 말갈에 대해 별도로 살펴볼 예정이니, 본회에서는 이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정리하자면 고구려의 북계는 지금 장춘, 농안 지역에서 길림으로 이어지는 선에서 북쪽으로 펼쳐지는 농경 지대 어느 범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북계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점이지대를 포함하는 면의 형태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

한 뼘 땅을 놓고도 영토 분쟁이 치열한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는 점이지대나 완충지대라는 넓은 면의 경계를 그대로 놔 둔 고대인들의 심성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입장이 가장 현명한 판단의 결과라는 점, 그래서 고대의 역사는 고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환기하게 된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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