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토크쇼J, "친일언론 다뤄달라" 요청에 답하다

김덕훈 2019. 3. 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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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이 된 이때 친일·반민족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방송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널리즘 토크쇼 J> 2019년 신년기획 공개방송에 참석한 시청자 정창윤 씨 제안이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정 씨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일보의 일왕 부부 '찬양 기사'까지 인쇄해 와 펼쳐 보였다.

때가 됐다.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국내 언론의 친일·반민족 행위를 짚어본다.

"내선일체의 구현으로서 사변 목적 달성에 어긋남이 없기를 바란다"

1939년 7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려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사변 목적 달성'이 전쟁 승리를 의미하니, 기사는 조선 민중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거나 최소한 일제가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동요 중인 학생 제군, 책상으로 돌아가라" (1930년 1월 12일, 조선일보)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학생 항일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은 해를 넘겨 확산하는데 이때 나온 게 조선일보의 위 기사다. 1면에 사설로 실었다. 참여 학생들이 '동요'해 휩쓸렸다는 식으로 평가절하 한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자칭 민족지로 출발한 조선·동아일보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더불어 3대 기관지가 돼 버렸다는 비아냥을 들었다"며 당시 두 신문에 비판적이었던 여론을 소개했다.

조선·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3.1운동 기세에 놀란 일제가 문화통치 목적으로 조선인들에게 신문업을 허가해 준 게 이 두 곳이다.

당시 민중의 기대를 받았던 만큼 두 신문에도 민족지, 항일지로서의 흔적이 있다.

1924년 7월 3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일제가) 문명을 다소 앞서 깨친 것을 유일한 무기로 하여 먼저 조선을 강압하고 만주·몽고에까지도 야욕을 품고 침략을 그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는 1926년 6월 28일 1면 기사에서 "광동의 조선혁명군인회가 만주와 시베리아 방면에서 학생 1,000명 모집 중"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력관계인 중국 국민혁명군 소속 "황포군관학교에 조선 청년들을 다수 입교시켰다"는 게 이 신문 주장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패널로 출연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1920년대 경쟁적으로 민족지적 성향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당시 동아일보는 '중립지를 내세운 조선일보가 비판 기사를 내는데 민족지를 표방한 우리가 이렇게 보도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일제 검열 당국에) 이야기를 했다. 회사를 지키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상업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제 탄압이 본격화된 1930년대부터는 친일 색채가 뚜렷해진다. 위 기사는 1940년 1월 1일 조선일보다. 시청자 정창윤 씨가 손에 펼쳐 보였던 바로 그 신문지면이다. 일왕 부부의 사진을 상단 중앙에 크게 배치해 놨다. 오른쪽에는 "천황폐하(天皇陛下)의 어위덕(御威德)", 풀어 말하면 "천황폐하의 위엄과 덕망"이라 써놨다. 황기(皇記), 즉 일본건국 2,600년이라 언급한 기사 제목도 눈에 띈다.

1940년 1월 1일 호가 특별했던 게 아니다. 1936년 1월 1일 호에서는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사설까지 냈다.

조선·동아 두 신문이 정간을 당한 시기를 보면 이 같은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창간 첫해인 1920년에 2차례, 1925년과 1928년 각각 1차례씩 모두 4차례 정간된다. 동아일보 역시 4번 정간되는데, 19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 때 정간된 것을 빼면 나머지는 일제의 문화통치 기간에 몰려있다.

조선·동아일보가 과거 친일행적에 대해 비판받을 때마다 내놨던 입장은 '공과론'이다. 과는 과대로 비판하되, 공도 공대로 인정해달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고정 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두 신문사가 "신문의 역사와 사주 가문의 역사와 동일시한다. 사실 일부(과오)는 과감히 폐기하고, 낯부끄러운 자랑만 더한다면 국민들로 하여금 의도하는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평가했다. 조선·동아일보가 먼저 과를 반성하지 않는 한 공 역시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10일(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34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론지' 조선·동아, 백년의 침묵'이라는 주제로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출연한다.

김덕훈 기자 (stand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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