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은밀해진 '경찰과 유흥업소' 커넥션

류인하 기자 2019. 3. 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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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골적인 상납은 줄어들고 전직 경찰관 연결고리로 친분 쌓으며 인맥 관리

‘룸살롱 황제’로 불렸던 이경백이 세상에 드러난 시점은 2011년이다. 이씨는 각종 단속정보를 제공받고,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씨가 집중적으로 상납한 대상으로 알려진 곳이 서울 강남경찰서다.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편지를 보내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이경백과 연락한 경찰관 69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러나 해당 경찰이 금품수수를 부인하고, 이를 뒤집을 증거를 찾지 못해 ‘유흥업소 업주와의 접촉금지’ 지시 위반으로 40명을 징계했다”고 했다. 당시 강남경찰서 과장급 이상 간부 14명 중 10명이 한꺼번에 교체됐다. 형사과 직원의 3분의 1이 강남서를 떠났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CJ 엔터테인먼트

다른 곳으로 인사이동 나면 ‘대물림’ 이경백은 그러나 각종 폭로와 연이은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세금탈루 및 성매매 알선혐의 일부만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억5000만원에 사회봉사 300시간의 확정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한때 이씨와 동업을 했던 관계자는 “이씨는 경찰, 검사, 판사, 심지어 정치인까지 연이 닿아 있다고 자랑하던 인물”이라며 “구속돼 있을 때도 ‘나는 곧 풀려나니 나가고 나서 다시 영업할 만한 장소를 알아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경백 사건을 통해 그간 암암리에 이뤄졌던 ‘경찰과 룸살롱 업계’의 커넥션이 확인됐지만 이를 근절하는 계기는 되지 못했다. 경찰청은 10년 이상 한곳에서 근무한 경찰을 무조건 다른 서로 보내는 ‘순환전보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경찰은 룸살롱, 클럽 관계자로부터 정기적으로 금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주간경향>이 확인했다.

강남 일대 다수의 유흥업소를 소유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이경백 사건 이후 10년 새 ‘투캅스’는 거의 없어졌지만 상납 형태가 좀 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투캅스’는 영화 <투캅스>에서 나온 말로, 불법현장을 적발한 뒤 무마 대가로 돈을 뜯어내는 비리경찰(안성기 역)은 사라졌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진짜 양아치XX(경찰)들은 아직도 그 짓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요즘은 현장에서 상납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했다. 경찰에 금품을 준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를 비롯한 다수의 룸살롱 및 클럽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이 경찰과 유착을 맺는 과정에는 ‘전직 경찰관’이 매번 등장한다. 또 강남이나 서초경찰서 풍속계 또는 강력계에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던 경찰이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을 받으면 강남·서초로 발령받은 경찰관과 업소 관계자들을 연결해주고 나가는 일종의 ‘대물림’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제는 거칠게 ‘형님!’ ‘아우!’ 하던 시대는 지났다. 만나더라도 어디 룸살롱 이런 데다 술판 벌여놓고 경찰한테 접대하며 아부하는 것도 없다. 물론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경찰들이야 ‘어디로 와라’고 하면 나가서 같이 술도 먹고 내가 2차(성매매)도 보내드리고 하지만 처음 만난 경찰한테 누가 그러겠느냐. 그냥 ‘어디 좋은 한정식집에 가셔서 식사하고 계시면 가볍게 인사만 드리겠다’고 하고 얼굴만 비추고 돈내고 나온다. 젊은 경찰관들은 아무리 상관이 데리고 왔다고 해도 우리 같은 사람이 공격적으로 술자리를 제공하거나 하면 정색하고 거부한다. 서서히 안면을 트면서 몇 번 인사를 하다가 관계를 시작한다.”(강남 일대 유흥업주)

가벼운 관계가 몇 차례 반복되면 여기서 ‘연결이 될 만한 경찰’과 ‘거래를 트면 절대로 안 되는’ 경찰이 갈린다. 밥자리나 술자리를 몇 번 갖다보면 어떤 타입인지 보인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매번 밥자리나 술자리에 따라나와 업주에게 흥미를 보이는 경찰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몇 번 얼굴을 비추다 이후 ‘따라나오지 않는’ 경찰은 건드리면 안 되는 대상이다.

강남경찰서 출신의 한 현직 경찰관은 “서울에서도 관할구역이 베드타운이거나 자잘한 사건만 많은 경찰서에서 3~4년 근무하다가 온 친구(경찰관)들이 강남서로 오면 그런 유혹에 잘 빠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상납은커녕 월급으로는 맛보기 어려운 고급 한정식집과 룸살롱에서 몇 번의 접대를 받다보면 거기에 현혹되는 경찰들이 있다는 얘기다.

관할 지구대 경찰들도 밀착 관리 해마다 2월은 경찰과 유흥업소 관계자들이 전화통화를 가장 많이 하는 시기다. 이때 경찰의 정기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과 논현동 일대 룸살롱 여러 곳을 소유한 한 업주의 말이다.

“내가 1년 동안 10명 정도를 밥도 먹이고 술도 먹여 놓으면, 그 중 반에 반만 내 전화를 받아줘도 된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인사이동을 한다고 해도 강남서 경찰이 전부 다 빠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적어도 한두 명은 남아있을 것 아닌가. 그러면 그 한두 명한테 새로 온 경찰들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 매년 그런 식의 작업을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업소에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유흥업소가 특히 신경 쓰는 곳이 강남 일대 지구대다. 또 다른 유흥업소 소유주는 이렇게 귀띔했다. “예를 들어 우리 클럽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봐라. 그러면 제일 먼저 어디다 신고하겠나. 112잖아. 그때 출동하는 경찰이 지구대 소속 경찰이다. 그 친구들을 잘 관리해놓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나. 돈 먹여서 봐달라고 한다는 말이 아니다. 막무가내로 우리만 나쁜X 만들어서 사건을 키우지만 않으면 되는 정도다.”

큰 사건의 해결이 필요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 ‘전직 경찰관’이다.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단속정보 제공이나 유흥업소 관련 특정 사건 무마 및 수사 진행사항 등의 기밀을 빼오는 역할은 전직 경찰관들을 통해 해결한다”고 했다. 전직 경찰관이 돈의 이동경로이자 업주와 현직 경찰관을 연결하는 아주 유용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뜻이다.

“전직 경찰관들은 정말 노골적이다. 우리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도 현직에 있을 때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접대를 받았던 사람들은 꼭 연락이 온다. ‘나 이번에 옷 벗었다. 한 번 보자’ 이렇게 연락이 온다. 끈 떨어졌어도 경찰은 경찰이니까 당연히 만난다. 그러면 이제는 빼는 것도 없다. ‘내가 단속정보는 확실하게 빼줄 수 있으니 나한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면 그 돈으로 후배들(현직 경찰관) 적당히 먹여주면서 잘 관리해주겠다’며 먼저 접근하는 전직(경찰관)도 있다. 지구대 관리도 우리가 직접 지구대장한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지구대장을 알지도 못하고), 전직한테 주면 그 사람들이 후배들 회식이나 하라면서 그 돈을 주는 식이다.”(강남 일대 클럽 등 소유주)

이들은 실제 현직 경찰관과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도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연결돼 있는 권력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할 뿐이다. 노골적인 상납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우아하고 내밀한’ 거래는 오히려 더 다양한 영역으로 촘촘히 엮여 있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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