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장병 '평일 외출' 한달, 그곳에 '군세권'이 만들어졌다

김우영 기자 2019. 3.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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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외출’ 한달째, 軍부대 주변 마을 가보니...
치킨집·PC방 매출 급상승에 부동산도 ‘꿈틀’
상인들 "대박났어요"... 홀 확장, 인테리어도
지자체, 바가지 없애고 군인들에 할인제도도

"군(軍)세권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요즘 우리 마을이 대박났어요. 대박!"

지난달 28일 오후 7시쯤 경기 양주시 신산리 육군 25사단 부근 치킨집은 만석(滿席)이었다. 3~4명씩 테이블을 채운 손님은 모두 군인들이다.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가게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2명이 전부였다. 주인 김미영(43)씨는 "모두들 일과를 마치고 외출 나온 군인들"이라며 "군에서 ‘평일 외출’이 시행된 이후 월매출이 40% 가까이 늘어서 최근 알바생 2명을 새로 뽑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아예 홀을 확장할 계획"이라며 "우리가게 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활력을 되찾았다"며 웃었다.

일러스트=정다운

◇장병들 부대밖으로 나오자 ‘군(軍)세권’ 형성
평일 군부대 장병 외출이 전면 허용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국방부는 지난달 1일 전국 군부대 장병들에게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전면 허용했다. 외출 시간은 오후 5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총 4시간이다.

이날 경기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서 만난 상인들은 "군 장병 외출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인근 육군 25사단 본부와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외출 나온 장병들로 가게들이 매일 북적이기 때문이다. 이들 부대에 있는 군 장병은 모두 3000명에 달한다.

양주시는 양주 안팎에 있는 군부대에서 매달 3만여명이 외출로 나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군부대 인근 마을인 신산리의 경우, 최근 군부대 덕에 매출도 오르고, 부동산 경기(景氣)도 좋아져 ‘군세권’이라고 불리고 있다.

28일 저녁 양주시 남면 신산리 25사단 인근 치킨집은 일과 후 외출 나온 장병들로 북적였다. /김우영 기자

신산리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민수(48)씨도 이날 저녁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군 평일 외출이 시행되기 전에는 휴가나 외박 나오는 군 장병들이 가끔 요기나 하는 정도였다. 요즘은 평소보다 2배 이상 재료를 준비해두지 않으면 저녁 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다. 김씨는 "가게 문을 연 지 4년이 넘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며 "외출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매출은 30%가량 늘었고, 가끔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있다"고 했다.

신산리 농협 남면지점 인근 한 PC방 입구. 중학생 2명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오며 "아이씨~. 또 군바리들이 다 차지했네" 하며 투덜댔다. 안으로 들어서니 48개 좌석이 꽉 차 있었다. 한 자리도 예외 없이 모두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었다. PC방 사장 마영민(40)씨는 "평일에는 방과 후 학생들 몇몇이 들르는 정도여서 파리를 날렸고, 주말에나 손님 구경 좀 했는데 요즘은 매일 저녁 시간이면 외출 나온 군인들로 북적인다"고 했다. 이 PC방 매출은 평일 외출 시행 이전보다 무려 70%가 올랐다.

PC방 건너편 카페도 덩달아 붐비고 있었다. 주인 장광수(33)씨는 "PC방 대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여유를 보내는 장병들도 많다"며 "사병들에게는 500원씩 할인을 해주고 있는데도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고 했다.

28일 저녁 신산리의 한 PC방은 외출 나온 장병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김우영 기자

◇부동산도 꿈틀…"가격 변화는 아직, 문의는 늘어"
부동산 시장도 꿈틀거리고 있다. 군부대 앞 신산리 시가지에는 최근 한식뷔페와 부대찌개 음식점 2곳이 문을 열었다. 신산리 전체 음식점 수가 30곳도 채 되지 않으니 식당 2곳이 새로 생기는 것은 시골 마을 입장에선 큰 변화다. 기존 PC방 주인 마씨는 인근에 PC방을 한 곳 더 차릴 준비를 하고 있고, 문구점 주인은 바로 옆 빈 점포에 카페를 내려고 준비 중이다. 치킨집처럼 홀 확장이나 내부 인테리어를 준비 중인 상점들도 여러 곳이다.

남면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들에는 최근 매물 문의를 하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 군 부대 부근 점포들의 경우 보통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40만원 정도 하는데, 최근 보증금 1000만원짜리도 나왔다고 한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군 외출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아 상가 임대료 등에 큰 변화는 없지만, 조만간 임대료나 보증금 등이 덩달아 오를 것 같다"면서 "마을 주민들 중에서도 가게를 새로 해볼까 하고 묻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자는 "기존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들이 가게를 확장하거나 분점을 내려고 빈 점포를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하루 1~2건 있을까말까 하는 문의 전화가 최근에는 하루 5~6통씩 걸려온다"고 했다.

◇"바가지 없는 착한 업소 늘려"...발맞추는 지자체
이 같은 변화에 양주시는 ‘군 장병 할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반 가격의 10~20%를 깎아주거나 덤을 더 주도록 하는 제도로, 현재 양주시 내 30개 음식점이 참여하고 있다. 양주시는 또 군 장병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점 리스트를 만들어 장병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외출 장병들로 상점들의 매출이 늘고 서서히 경쟁이 치열해지자 상권에 대한 이미지 관리에 나선 것이다. 양주시 관계자는 "현재 군 장병 할인 업소들을 늘리기 위해 여러 상점과 협의하고 있다"며 "군 장병 할인 업소 스티커도 별도로 제작해 나눠줄 예정"이라고 했다.

양주시 남면은 외출 나온 장병들을 위해 부대 인근 상점 리스트를 만들어 인근 부대에 4000부 배포했다. /양주시 남면 제공

양주시 상가번영회는 군 장병들의 상점 이용에 대한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있다. 최근엔 현금 결제밖에 안 되던 PC방에 신용카드 단말기를 도입하도록 권유했고, 음식물 반입도 허용하도록 했다. 전병우(59) 남면 상가번영회장은 "우리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장병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매일 내 차로 부대로 복귀하는 장병들을 부대 앞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주(59) 양주 남면장은 "그동안 군부대 주변 상인들은 군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안좋은 인식이 있어왔지만, 이제는 군인들이 제일 고마운 고객이고, 함께 상생해야 하는 대상인만큼 군 장병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군 장병 할인 업소 스티커. /파주시 제공

경기 파주시도 군 장병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점에 대해 할인 혜택을 주도록 하는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외출 나온 군 인원에 따른 경제효과가 인근 지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관내로 흡수하기 위해 ‘군 장병 할인 위생업소'를 늘리고 있다"며 "할인업소에는 ‘군 장병 할인 업소’ 스티커를 부착해줄 계획"이라고 했다. 파주시에 따르면 지난 2월 관내 87개 업소가 할인 업소로 지정됐다.

군 장병 1만6000여명이 주둔해 있는 강원도 양구군은 외출 장병들을 대상으로 읍면 사무소에 강의실을 마련해 어학·컴퓨터 프로그램 강좌를 개설하기로 했다. 올여름까지 시가지 일대에 스크린 야구장, 가상현실(VR) 체험장 등도 마련한다. 또 숙박업소와 음식점, 당구장, 노래방, PC방 등을 대상으로 군 장병이 뽑은 모범·친절업소를 선정해 감사패를 수여하고 현수막과 소식지 등을 통해 군부대와 주민들에게 홍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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