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인도양 '미군 기지' 세계 이목 집중

김재중 기자 2019. 3. 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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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국제사법재판소, ‘차고스제도’ 모리셔스에 반환 결정
ㆍ미국에 70년 대여…남중국해 항공작전 등 요충지

‘인도양에 떠 있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차고스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 미군 기지와 이 섬 원주민들의 역사가 새삼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최근 영국이 차고스제도를 모리셔스에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다. 디에고가르시아는 800여개로 추산되는 미군의 해외 주둔 기지 가운데 중동 및 인도·아시아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차고스제도는 몰디브 남쪽으로 1600㎞, 아프리카 동쪽으로 3200㎞ 떨어진 인도양에 있다. 영국은 1960년대 식민지배하던 모리셔스를 독립시키기 직전 차고스제도를 떼내 영국령으로 계속 지배하고 있다. ICJ는 지난달 25일 영국의 이 같은 조치가 식민지 독립 시 영토 분할을 금지한 1960년 유엔 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의 출발점은 차고스제도의 섬 가운데 가장 큰 디에고가르시아의 미군 기지다. 디에고가르시아의 전략적 가치에 눈독을 들인 미국은 영국에 접근해 임차를 추진했다. 영국은 1965년 모리셔스 자치정부로부터 차고스제도를 사들였고, 모리셔스는 1968년 공식 독립했다. 그사이 영국은 1966년 미국과 비밀 협정을 맺었다. 미국이 디에고가르시아를 50년(별도 사유 없을 시 20년 연장) 동안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은 협정의 대가로 훗날 미국으로부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살 때 할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디에고가르시아에 살던 원주민 2000여명을 모리셔스나 인근 아프리카 등으로 이주시켰다.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뺏기고 강제 이주 당한 원주민들은 고향으로의 복귀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1000여명이 주둔 중인 디에고가르시아 기지는 미 해군과 공군 외에 항공우주국(NASA)도 우주선 비상 착륙지로 사용한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친미 성향의 이란 팔레비왕조가 무너지자 중동에 대한 장악력 약화를 우려한 미국은 디에고가르시아 기지를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항구 수심을 깊게 해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있도록 했고, 활주로를 늘려 B-1, B-2, B-52 등 전략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케 했다. 2000~2010년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의 상당수는 디에고가르시아에서 발진했다. 이 기지는 아시아, 특히 최근 들어서는 남중국해 지역에 대한 미군 항공작전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ICJ의 이번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의견’이다. 영국 정부는 “영국령 인도양 지역의 군사시설들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테러 위협과 조직 범죄, 해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면서 사실상 수용 거부 입장이다. 다만 차고스제도의 모리셔스 반환을 주장하는 영국 내 의견이 상당하고, ICJ의 결정을 거스른다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은 영국 정부에 부담이다.

차고스제도가 모리셔스에 반환되더라도 디에고가르시아 기지가 당장 철수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많다. 자그디시 쿤줄 유엔 주재 모리셔스 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리셔스는 디에고가르시아에서 미국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다”면서 “우리는 해당 지역의 안보상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 입장에선 사실상 무상으로 사용해온 디에고가르시아의 주인이 바뀌면 불확실성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CNN의 군사분석가 세드릭 레이턴은 “인도양에 대한 접근권 확보를 위해 디에고가르시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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