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민아 칼럼]'투명인간' 임은정 검사

김민아 논설위원 입력 2019.03.1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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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현직 부장검사가 검찰총장과 검사장급 고위간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국민 고발’을 했다. 한국 검찰 사상 최초일 터다. 2월18일자 경향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쓴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이야기다. 임 부장검사는 검사장 3인이 2015년 서울남부지검의 성폭력 사건을 덮었고, 문무일 총장은 이들을 징계·처벌하지 않았다며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 검사들을 고발합니다. 주권자 국민 여러분이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시민 반응은 뜨거웠으나, 검찰은 조용하다. 어떠한 공식 반응도 없다. 검찰 내부망에도 수사관 2인이 글을 올렸을 뿐, 검사의 글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임 부장검사는 전화 통화에서 “반응이 전혀 없어 당혹스럽다. 검찰 조직의 불건강성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담하다”고 말했다. 지금 임은정은 ‘투명인간’이다.

2015년의 서울남부지검으로 가본다. ㄱ부장검사가 여성 검사를 아이스크림에 빗대 성희롱했다가 사표를 냈다. 감찰이나 징계 없이 ‘명예퇴직’ 처리됐다. 2억원 가까운 명퇴수당까지 챙겼다. 곧이어 같은 검찰청의 ㄴ검사가 퇴직했다. 전직 검사장의 아들이자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귀족 검사였다.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역시 징계를 받지 않고 옷을 벗었다. 미스터리는 지난해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계기로 풀렸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조사단이 재조사에 나서 두 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것이다. 하지만 대검 감찰라인의 은폐 의혹은 규명되지 못했다. ㄱ부장검사는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고, ㄴ검사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 중이다.

검찰 수뇌부는 뒤늦게나마 이들을 기소했다며 안도했을까. 그랬다면 성급했다.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온 임 부장검사는 사건 당시 은폐 의혹에 연루된 간부들에 대한 감찰을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비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임 부장검사는 김진태 전 총장 등 전·현직 간부들을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임 부장검사가 칼럼을 쓴 이유다.

1999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한 검사가 여성 기자를 성추행해 물의를 빚었다. 법무부는 ‘경근신’ 25일의 징계를 내렸다. “견책보다 무겁고 중근신보다 가벼운 것으로 매일 반성문을 쓰며 과오를 뉘우쳐야 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미 전주지검으로 ‘좌천성 전보’된 점을 감안했다고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솜방망이 징계였다.

스무 해가 흘렀다. 대통령이 네 번 바뀌었다. 국민소득은 1만282달러에서 3만1000달러(2018년 추정치)로 늘었다.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SBS에 따르면, 임 부장검사가 실명을 언급했던 한 간부는 “(해당 칼럼이) 사건이 잊히길 원하는 피해자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그토록 염려했다면, 사건 발생 직후 신속히 감찰·수사했어야 옳다. 그때는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서 이제 와 피해자 뒤에 숨으려 하나.

검찰이 제자리걸음인 건 젠더감수성뿐이 아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 사건에 관여했던 일부 전·현직 검사들은 조사를 거부하거나 민형사 불복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발해왔다. 용산참사나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폭력’ 사건의 진상조사 지연은 이와 무관치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검찰의 자치경찰제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소·영장청구권은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인데, 검사 개인이 누리는 천부인권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만의 성채는 여전하다.

<PD수첩> 관련자 기소 지시를 거부하고 검찰을 떠난 임수빈 전 부장검사는 <검사는 문관이다>라는 책에서 고백했다. “검찰은 ‘무오류’ 신화 속에 산다. 검찰에 몸을 담았을 때는 전체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의 처리에만 문제가 있어 비판받는다고 치부했다. 떠난 뒤 깨달았다. 검찰권은 업무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었다. 검사들이 ‘버티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은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대선자금 수사로 지지를 받았다. 검찰은 ‘국민검사’를 향한 갈채를 등에 업고 ‘개혁당할’ 위기를 돌파했다. 그 결과는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였다. “세계 최대 검찰청”(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이끄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으로 유명하다. 차용하면 “시민은 더 이상 ‘국민검사’를 믿지 않는다”. 믿을 건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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