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베트남 주석도 축구 선수도 왜 이름 앞엔 다 '응우옌'?

황수연 입력 2019.03.12. 01:30 수정 2019.03.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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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베트남 10명 중 4명꼴 같은 성
중국서 전래된 듯..왕조 교체도 영향

응우옌 푸 쫑, 응우옌 쑤언 푹, 응우옌 티 낌 응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잇따라 만났던 베트남 정부 관료들입니다. 권력서열 1~3위에 해당하는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총리, 국회의장이지요. 모두 ‘응우옌’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이 지난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베트남 축구대표팀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23명의 엔트리 가운데 9명의 이름이 ‘응우옌’으로 시작합니다. 아시안컵 최고의 골 주인공인 응우옌 꽝 하이가 있겠고, 베트남 선수로선 사상 두 번째로 K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응우옌 꽁 프엉(인천 유나이티드FC)도 빠뜨릴 수 없겠지요. 이뿐인가요.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본명도 응우옌 신 꿍 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응우옌’(Nguyễnㆍ阮ㆍ완)은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성(姓)입니다. 한국의 ‘김(金)’이나 ‘이(李)’보다 많다고 하지요. 그렇다보니 베트남에선 응우옌을 응우옌으로 부르지 않는 현상까지 있는데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어떤 사연인지 들려드립니다.
호찌민의 청년 시절 모습. 본명이 응우옌 신 꿍 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10명 중 4명은 응우옌

‘우린 친척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프리젠테이션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등장해 화제가 된 문구입니다. 8명이 졸업앨범 사진 밑에 하고 싶은 말 대신 각자 ‘we know’ ‘you're’ 등의 단어를 새겨 넣은 건데요. 이어보니 ‘we know what you're thinking and no. we're nor related’(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우리는 친척이 아니다)란 문장이 완성됐습니다.

사연인즉슨 해당 졸업생 모두 응우옌 성을 가진 베트남계 미국인이었던 겁니다. 성이 같다는 이유로 종종 서양인으로부터 친척 관계로 오해를 받았던 이들은 이 사연을 앨범에 재치있게 담아냈습니다. 이 앨범 페이지가 소셜미디어(SNS)인 페이스북에 올라오자 “웃겨 죽겠다” “역대 최고의 문구에 박수를 보낸다” 등 열띤 호응이 뒤따랐지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프리젠테이션 고등학교에서 화제가 된 졸업앨범 페이지. [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베트남 투이트레뉴스에 따르면 베트남 인구 10명 중 4명(39%)이 응우옌이란 성을 씁니다. 한국에서 김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라고 하는데, 두 배 수준이지요. 해외에 거주하는 베트남인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38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베트남에는 총 100개의 성이 존재하는 거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14개를 인구의 90%가 쓰고 있고, 특히 응우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겁니다.

이민자의 절반이 베트남 등 아시아 출신인 호주에서조차 응우옌은 흔한 성 7위에 올라있습니다. 언론들은 5년 안에 응우옌이란 성이 ‘스미스(Smith)’와 ‘존스(Jones)’를 넘어서며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이 될 것이라 내다봅니다.

영어권의 성은 조상의 직업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미스는 대장장이, ‘테일러(Tailor)’는 재단사처럼요. 출신지의 이름을 따기도 하지요. 여행 매거진 아틀라스 옵스큐라의 댄 노소위츠는 “이민국 미국에서의 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종교, 사회적 지위까지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신들을 종합해보면 베트남에서 성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필요에 따라 성과 이름을 수시로 바꿨다는 설도 있지요.


왕조 성쇠와 함께 한 응우옌 역사

그렇다면 어쩌다 두 명 중 한 명꼴로 같은 성을 갖게 된 걸까요.

성의 기원부터 보면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학계에선 중국의 지배에 들기 전까진 베트남에 성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기원전 111년 중국 황제인 한무제가 베트남을 정복한 이후 세금을 부과하고 관리하기 위해 성을 지정했을 거란 설명이지요. 이마저도 상류층에만 해당했고, 하류층의 경우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대규모 인구조사 이후에야 보급됐을 거라고 외신들은 전합니다.

유난히 응우옌이란 성이 확산한 건 왜일까요.
베트남에서 ‘응우옌’이란 성은 전 인구의 39%를 차지한다.[위키피디아]
우선 서기 420년에서 589년, 혼란스러웠던 남북조 시대에 중국 안후이(安徽), 저장(浙江) 등에 사는 응우옌 씨들이 안전을 목적으로 베트남으로 대거 옮겨왔는데, 이들이 베트남에 정착하며 응우옌 성을 가진 이들이 늘어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부 고위층을 빼곤 베트남엔 성이란 게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응우옌이 확산할 수밖에 없었단 얘기죠.

나아가 왕조의 흥망성쇠와도 관련이 깊은데요.

1200년대 리(Lý) 왕조가 무너지고 쩐(Trần) 왕조가 들어선 기점으로 응우옌 씨가 눈에 띄게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리 왕조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다는 취지에서 리의 후예들은 성을 모두 응우옌으로 바꿀 것을 강요당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인데요. 왜 하필 응우옌을 채택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당시 가장 흔한 성이어서 흔적을 없애기엔 쉬웠을 걸로 보입니다. 이후 새로운 왕조가 설립될 때마다 이전 왕조의 후예들이 성을 모두 응우옌으로 바꿔야 하는 게 불문율과도 같았다는 게 외신들의 설명입니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리타이또(리 왕조 태조) 황제 동상. [위키피디아]
1400년대 호(Hồ) 왕조의 건국자 호뀌리가 많은 이를 처참히 살해한 뒤 1407년 호 왕조가 몰락하자 보복이 두려운 그의 후예들이 성을 응우옌으로 교체했다는 얘기도 내려옵니다. 이후 막(Mạc) 왕조가 무너졌을 때도 일가가 마찬가지 이유로 응우옌 성을 택했다고 하지요. 꾸앙 푸 반 예일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왕족과 충성파들이 새로운 통치자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성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고, 정치·개인적 이유로 응우옌이라는 성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다 응우옌 왕조까지 들어섰습니다. 1802~1945년까지 약 140년간 통치한 마지막 왕조였는데 특히 이때는 왕이 성을 하사하기도 했고, 왕족과 같은 성을 가지면 많은 혜택이 주어져 죄수 등 일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응우옌 씨를 따랐다고 합니다. 하와이대학교 인도양-서태평양 학부장이자 베트남어 학과장인 스테펜 오해로우는 “베트남에선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의 성을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응우옌 왕조 통치 기간 확실히 응우옌 씨의 비율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이후로도 앞서 언급했듯 하류층에 성을 보급할 때를 기점으로 또 한 번 응우옌들이 대규모로 확산했다고 외신들은 전하지요.


성 대신 이름으로 호칭…중간이름 보면 성별 알 수 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베트남에선 서구권과 달리 상대방을 성보다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미스터 김’이라기보다 ‘미스터 철수’ 식으로 이해하면 쉽겠지요. 베트남의 성명은 성, 중간이름, 이름의 구조로 통상 3~4개 음절로 이루어지는데 성이 겹치는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마지막 한두 글자만 칭한다는 겁니다. 외신들에서 주석과 총리를 각각 쫑 주석, 푹 총리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러니 인천 유나이티드FC 서포터즈 분들은 응우옌 꽁 프엉 선수를 응원할 때 “꽁 프엉”이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유럽 국가 중에선 아이슬란드와 폴란드가 호칭 시 이름만 사용하고 성은 쓰지 않습니다.

다만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지에서 고위층을 상대로 높은 경의를 표할 때는 길더라도 직책 앞에 반드시 성과 이름을 전부 다 부르는 게 맞다고 하니 유의해야겠습니다. 호찌민 주석은 ‘박호(Bác Hồ, ‘호아저씨’란 뜻의 베트남 말)로 친근하게 불리기도 합니다.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플리커]
예전엔 중간이름에서 성별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데요. 거의 모든 여성과 남성이 중간이름으로 각각 ‘Thị(티)’와 ‘Văn(반)’을 썼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이에 구애받지 않고 개성 있는 중간이름을 많이 쓴다고 하네요. 앞으로 베트남·아이슬란드·폴란드에 온 친구들, 거래인을 만날 때 이런 점을 알고 재치 있게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지 않을까요.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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