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사협으로 모두 이동해 박힌 돌 빼내자" 한유총, 사실상 반격 준비

송진식 기자 입력 2019. 3. 12. 06:01 수정 2019. 3. 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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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부가 강탈” “사립유치원 씨 말릴 것” 가짜뉴스 유포
ㆍ반대 원장들에게 “개XX를 떨어주겠다” 신변 위협에
ㆍ특정 야당 정치인 계좌 등장 ‘불법 정치 후원금’ 정황도
ㆍ대화 10만건엔 아이들보다 돈 …교육자 본분도 저버려

“스스로를 ‘교육자’로 포장하는 탐욕스러운 소수가 주도하는 3000톡의 민낯을 밝히고 싶었다.”

11일 경향신문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단체대화방인 ‘3000톡’의 대화 내역을 보내온 사립유치원장 ㄱ씨는 “부디 한유총이 올바른 대화의 길로 나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ㄱ씨는 지금도 한유총 회원이다. 경향신문은 ㄱ씨를 통해 2017년 9월 중순부터 3000톡이 실질적으로 활동 정지 상태에 들어간 지난 6일까지, 총 9만8615건(삭제된 메시지 포함)의 대화방 내 메시지 내역을 입수해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한유총이 최근 2년가량 어떻게 내부 여론을 조성해 실행했는지,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는지 등을 회원 간 대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한유총이 정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에 반발해 투쟁을 벌이는 동안 이 10만건에 달하는 대화 중에 진정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개학연기 투쟁은 왜 나왔나

한유총은 지난 4일 개학연기 투쟁에 나서면서 “1533곳의 사립유치원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가 당일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전국 239곳의 유치원만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유총 회원수로 알려진 3400여 사립유치원을 감안하면 전체의 7% 수준이다.

3000톡을 보면 한유총 지도부도 개학연기를 놓고 상당한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 초부터 3000톡에서는 “마지막 남은 건 휴원·폐원 카드뿐”이라는 주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3000톡에서 ‘휴원 카드’가 급물살을 탄 건 지난달 24일 한유총이 국회 앞에서 진행한 ‘유아교육 사망선고’ 집회 직후로 보인다. 집회를 앞두고 한유총은 나름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집회 직전 한 회원은 “학부모 지지를 받으려면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은 도입하겠다고 일단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실제 한유총이 “사립유치원에 맞는 에듀파인 개발 등을 전제로 받아들인다”고 밝힌 것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당일 집회 현장에선 “회원들 중 ‘에듀파인 거부’를 든 사람을 저지하라”는 긴박한 메시지가 3000톡에서 오간다. “집회 중 웃지 말라, 카메라에 찍힌다” 등 집회 표정에 신경쓰는 메시지들도 보인다. 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여론은 냉담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의 “공산주의” 발언 등 ‘색깔론’이 집중 조명됐지만 3000톡에는 “더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의견들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결국 한유총은 집회 나흘 만인 28일 긴급 회견을 열어 “개학연기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개학연기 투쟁에 나선 유치원들이 ‘자체 돌봄’을 제공한 이유도 ‘집단 휴업’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한 회원은 “돌봄도 안 해야 파급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회원은 “정부의 긴급 돌봄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려면 자체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며 “낯선 곳(긴급 돌봄기관)에서 아이들이 힘든 걸 보면 정부가 정신차릴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후 한유총은 개학연기를 선언하면서 “자체 돌봄은 유치원 개별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들이 해석한 “학부모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차원”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 이덕선 ‘위인급’ 추앙, 반성 없다

한유총은 2017년 9월에도 집단 휴원 카드를 꺼냈다가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철회한 바 있다. 당시 한유총 지도부는 교육부와 대화를 마친 뒤 철회를 선언했지만 내부 강성파들은 이를 ‘9월의 치욕’으로 규정하고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지도부를 몰아세운다. 3000톡을 보면 휴원 철회 이후 무능한 지도부를 대신해 이덕선 이사장과 주변 강성파들이 ‘대안’으로 떠오르며 지도부로 추대되는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이덕선 위원장은 한유총에서 ‘위대한 영도자’로 여전히 통했다. “태양이고 영도자이신 유치원의 이덕선님 의향대로면 승리는 코앞이죠” 등 찬양일색이다. 개학연기 사태 이후에도 이 이사장을 탓하는 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나라를 상대로 이만큼 온 것만 해도 기적” 등 성과를 냈다는 평이 많았다. 한 회원은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로 모두 이동해 박힌 돌을 빼내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3000톡에서 이 이사장의 입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이사장에 오르기 전 ‘한국유아정책포럼’을 이끌었던 이 이사장은 한유총에 이른바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명확한 이론을 제시한 연구자이자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자로 통했다. 이 이사장이 주도한 개학연기 투쟁이 한유총의 ‘참패’로 끝났음에도 여전히 한유총에서는 그를 선구자 내지는 구원자로 추앙하는 회원들이 상당수 있다.

이 때문인지 개학연기 철회를 선언하기 전까지 3000톡에는 ‘패배’를 상정한 대화는 없었다.

정부가 참여 유치원이 239곳이라고 밝혔음에도 “가짜뉴스” “협박으로 선동한다” “더 동참하라” 등의 대화들이 주를 이뤘다. 개학연기 철회 직후에 회원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은 “배신자들이 투쟁을 망쳤다”였다. 참여하지 않은 유치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대화도 많았다. 언론이 표현하는 ‘백기 투항’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회원들도 있었다. 한 회원은 “과거 2017년 9월의 굴욕을 감안하면 승리한 투쟁”이라며 “이대로 물러서지 말자”고 제안했다.

■ 후원금 등 불법행위 정황도

서울시교육청은 1월 말 한유총에 대한 중간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불법적인 특별기부금 모금, 국회의원 불법 후원 의혹 등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3000톡에는 실제 시교육청이 지적한 사안과 관련된 대화들이 여럿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립유치원 비리 공개’ 직후 한유총 내부에서 크게 부각된 게 바로 “정치적인 행동”이다. 한 회원은 3000톡에 “그냥 있으면 당한다. 정치권에 힘을 써야 한다”며 한유총 차원에서 우호적인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회원은 야당의 주요 국회의원 명단을 공개하며 “이들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이어 3000톡에는 특정 야당 국회의원의 이름과 계좌가 등장한다. 글을 올린 한 회원은 “연말에 10만원까지는 정산되는 거 아시죠”라며 후원금 내기를 독려한다.

하지만 3000톡 내 후원금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내부 단속에 나선다. 한 회원은 “사립유치원장이 직접 후원금 내는 건 불법. 내려면 친척 등 차명으로 해달라”고 당부했고, 급기야 다른 한 회원이 “나중에 문제시될 수 있으니 후원금 얘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한유총 지도부가 유력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등을 다니며 활동한 흔적도 3000톡에 나와 있다. 행사에 다녀온 회원이나 한유총 지도부 관계자는 “오늘은 ○○를 다녀왔다”며 글을 올렸고, 다수의 회원들이 노고를 치하했다.

같은 달 열린 박용진 의원 주최 사립유치원 토론회가 무산될 당시 한유총이 행사 무산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실도 확인된다. 3000톡을 보면 당시 토론회를 하루 앞둔 뒤 “이 정도 참여 인원이면 우리가 모여서 뭉갤 수 있다”는 제안과 함께 “국회로 모여달라”는 글이 다수 올라온다. 행사 당일 한유총 난입이 예고되면서 토론회 장소 변경 등이 이뤄지자 3000톡에는 실시간으로 “지금 ○○호로 이동 중” “여기로 빨리 오세요” “앞으로 나오세요” 등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이 벌어진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한유총 회원들의 점거행위로 발제자들이 발제문만 겨우 읽은 뒤 무산됐다.

■ ‘반대’ 없는 ‘단절된’ 대화방

3000톡을 보면 자신들의 발언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회원이나 평소 뜻이 맞지 않는 회원을 비판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 회원은 “○○○ 원장 전화번호를 달라. 내가 개XX를 떨어주겠다”며 공개적으로 특정인의 신변을 위협했다. 이는 회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특정 정치인, 특정 공무원 등의 이름과 개인 전화번호, 혹은 사무실 전화번호를 공공연하게 올리며 “항의 전화를 하자” “전화해서 본때를 보여주자”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하라고 시켰다”는 등 비판 세력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성향이 여러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3000톡 내 ‘첩자’나 ‘간첩’을 색출해야 한다”며 특정 회원의 신분 공개를 요구하는 글도 자주 눈에 띄었다. ㄱ씨는 “지인 원장 중엔 실제로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온갖 욕설과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3000톡에는 한유총에 비판적인 언론과 여론에 대한 반감도 팽배했다. 회원들은 한유총 보도에 시시각각 관심을 갖고 내용을 공유하면서도 자신들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선 “쓰레기 언론”이라고 매도했다. 우호적이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선 “후원을 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내용을 전파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특정 언론을 내보내야 한다”는 제안도 3000톡에서 나왔고, 이는 실제 한유총의 최근 기자회견장에서 실현됐다.

개학연기 철회에도 기세등등했던 한유총의 3000톡은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활동 중단 상태에 이르게 된다. 3월6일 오후가 되자 3000톡에는 대화방을 나가는 회원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늘어났다. 한 회원은 “대체 왜들 그러시나”라고 말한다. 이미 며칠 전부터 간간이 3000톡의 대화 메시지 삭제법을 묻는 회원들도 등장한 터였다. 이윽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개학연기 강요 혐의 등으로 부산의 유치원들을 조사했다’는 보도가 3000톡에 공유됐다. “묵비권 행사하면 된다. 네이버에 찾아보면 나온다” 등 탈퇴를 막아보려는 회원도 있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ㄱ씨는 “3000톡은 현재 수백명만 남아 활동이 정지된 것과 다름없다”며 “아마 다른 새로운 한유총 대화방을 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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