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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 설립 막으려 비상상황실 '워룸' 통해 조직적 대응"

유설희·이혜리 기자 입력 2019. 03. 1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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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검찰, ‘노조 와해’ 문건 공개
ㆍ계열사서 10여명 파견…임원 평가 항목엔 ‘비노조 실천’
ㆍ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요주의 인물 ‘백과사전’도 제작
ㆍ이건희 회장에 보고…삼성전자서비스 등 협력사에 전파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노동조합 설립 주동자를 ‘문제인력’으로 관리하고 퇴직을 유도하는 등 노조 활동을 조직적·체계적으로 방해하려고 만든 문건을 검찰이 12일 공개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32명의 공판에서 지난해 삼성전자 본사 경영지원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확보한 문건들을 공개했다. 앞서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했지만 삼성 측은 “삼성에서 만든 문서가 아니다”라면서 문건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검찰이 공개한 2003~2013년 ‘삼성그룹 노사전략’ 문건들에는 미래전략실이 노골적으로 노조 설립 및 활동을 저지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2011년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삼성은 각 계열사로부터 파견된 직원 10여명으로 구성된 ‘비상상황실 워룸(War-room)’을 가동했다. 워룸은 노조 설립 시도가 있을 경우 조기 와해를 원칙으로 하고, 와해에 실패하더라도 장기 고사화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만약 누군가 노조 설립 신고서를 노동청에 제출할 경우 신속히 하자를 발견해 반려하게 만들고, 노조 관련 문제를 일으키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정보를 공유해 비공식적으로 협력사 취업을 금지시킨다는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삼성은 노조 설립을 “행동감염 발생”이라고 표현하는 등 노조 문제를 마치 전염병 감염 같은 비상상황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2007년 김성환(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노동계 지원하에 노조 설립을 기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룹에서 법무실, 인사지원팀, 전자, SDI 등으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적극 대응할 방침도 세웠다”고 했다.

임원 평가 때 100점 중 ‘비노조 실천 노력’에 15점을 배정한 대목도 있다. 노조 설립을 ‘사고’로 표현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감점을 하도록 문건에 기재돼 있다.

삼성이 노조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직원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2년 복수노조 시행 이후 문제인력 조치현황’ 등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문제인력을 A·B·C급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동향을 수시로 점검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경우 ‘문제인력’에 대해서 “개인별 백과사전을 제작해 주량·자산 등을 꼼꼼히 파일링해 관리하고 있다”며 우수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핵심적인 동향 관리 대상자를 지정해 각 계열사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았다”며 “사업별 복수노조 대응태세 점검, 노동법 개정 추진 등 노조 와해 방안은 이건희 회장에게까지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그룹 차원의 방안은 삼성전자서비스는 물론 협력사들에도 전파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삼성전자서비스가 만든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문건을 보면 노조 설립 의도가 담긴 e메일을 누군가 보낼 경우 본사와 지사, 협력사 등이 긴급보고체계를 가동하고 e메일을 보낸 사람은 징계사유를 추출해 퇴직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 측은 미래전략실에서 이 같은 문건들을 만들었더라도 삼성전자서비스에 시행하도록 전달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또 이 문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 사건을 수사하던 중 찾아낸 것들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고 삼성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 의장을 비롯한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원 등 32명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고 일부 협력사를 폐업하게 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유설희·이혜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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