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어, 인공혈관 재공급 조건 '가격 2배' 요구

입력 2019. 3. 14. 05:06 수정 2019. 3. 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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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식약처에 보낸 공식서한 입수
"품질관리 기준 심사·서류 면제..미국 수준 판매가" 요구
여야 의원들 "식약처 2년동안 허송세월" 질타

소아 심장병 수술(폰탄 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의 국내 공급 재개와 관련해, 미국 고어사가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심사 및 규제 서류 면제’와 ‘미국 정가’ 수준의 판매가격 보장을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 고어사는 지난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등에 보낸 공식서한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근 국내 인공혈관 재고가 떨어져 폰탄 수술이 미뤄지는 사태가 잇따르자 고어사가 ‘(인공혈관) 재공급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긴 했으나, 2017년 10월 고어사가 한국에서 의료사업부를 철수한 배경과 인공혈관을 공급하지 않는 이유 등이 공식 문서로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13일 <한겨레>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을 통해 식약처와 보건복지부, 고어사 등이 작성한 인공혈관 관련 문서를 입수했다. 고어사는 한국 정부가 보낸 인공혈관 공급 협조요청 서한에 대한 회신에서 “한국 시장에서 우리가 철수한 것을 둘러싼 인도주의적 관심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조건을 명확히 못 박았다. “지엠피 심사 및 규제 서류를 면제하고 미국 정가에 판매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더 양보하여 인공혈관 등의 재공급을 고려해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재고가 바닥난 인공혈관의 미국 판매가는 약 82만원으로 한국 판매가 약 46만원의 갑절가량이다. 이 인공혈관은 국내에서 1년에 50여개 사용된다. 앞서 2016년 정부는 치료재료에 대한 수가 상한금액을 일괄 인하하면서 이 제품 가격을 19%가량 삭감했다. 고어사는 재공급하려면 관세, 배송비 등도 판매가에 포함되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희소·필수 치료재료인 인공혈관의 판매가 인상은 가능하다. 고어사가 철수한 뒤인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희소·필수 치료재료의 상한금액 산정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고어사의 인공혈관 같은 경우, 수입국에서의 유통가, 제조·수입 원가 등을 참고해 건강보험 수가를 정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고어사가 2017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배경도 문서를 통해 일부 확인됐다. 2017년 6월 식약처가 ㈜고어코리아 관계자와 ‘인조혈관(인공혈관) 국내 공급 관련 면담’을 진행한 뒤 작성한 자료를 보면, 복지부가 ‘건강보험 수가를 조정 검토하겠다’며 국내 철수를 만류했으나 고어사는 “2019년 8월22일 만료되는 지엠피 적합인정서 재심사 등 별도 투자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미국 본사에서는 지엠피 적합인정서 만료 이후에도 국내 공급 의사가 있으나 (국내 사용 환자가 적어) 영리 목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지엠피 심사 등 일체 비용 부담을 꺼린다”고 해석했다.

고어사가 지난 8일 식약처에 보낸 서한에서 ‘지엠피 심사 및 규제 서류 면제’를 요구한 까닭도 2017년 철수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고어사가 한국에 견줘 비용, 심사 횟수 등 규제가 강한 유럽에는 계속 제품을 공급하면서 한국에서만 철수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3년 주기로 갱신 심사를 하는 한국의 지엠피 심사비는 250만원, 매년 심사하는 유럽은 1500만원이 든다고 식약처는 설명한다.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3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다국적기업 고어사가 인공혈관 공급을 중단한 문제에 대한 의원들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여야 의원들은 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식약처를 질타했다. 김상희 의원은 “식약처가 고어사 철수 이후에 무려 2년 동안 허송세월했던 것 아니냐”며 “고어사가 우선 인공혈관 20개를 공급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속적인 공급 재개라는 숙제를 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성락 식약처 차장은 “(고어사가 허가를 자진 취하한 제품에 대한) 수입허가 복원, 관련 법 개정 등을 일부 하긴 했지만 (이런 사태가 생긴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이번주에 고어사와 화상회의를 열 예정이며,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조속히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황예랑 김양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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