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이중장부 알고도 인수한 KT&G, 취득원가 10배 주고 산 국민연금..'수상한 투자'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2019. 3. 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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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인니 담배회사 주식 매입

이명박 정부 시절 KT&G에 이어 국민연금까지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주식을 취득원가의 5~10배를 주고 샀다가 2년 만에 투자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KT&G는 인도네시아 담배시장의 빠른 성장세와 미래가치를 염두에 둔 투자결정이었다고 해명하지만 주식 취득 당시 기업 평가자료는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뭘 믿고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투자에 휘말려 들어갔는지 아무런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13일 KT&G는 해명자료를 통해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 인수는 외부자문기관의 평가와 자문 등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KT&G는 2011년 인수 당시 기업 평가자료는 물론 트리삭티의 재무제표도 매출액과 영업이익 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KT&G에 따르면 2011년 당시 트리삭티는 매출액 606억원에 영업이익은 59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KT&G가 공개한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은 2011년 당시에는 공시하지 않은 자료라 신뢰하기 어렵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KT&G는 2011년 트리삭티 인수를 위한 실사과정에서 재고자산 120억원이 허위계상돼 있는 이중장부를 발견했다. 회계전문가들은 “KT&G가 실사과정에서 이중장부를 발견했다면 인수를 포기하거나 이중장부를 정리한 후에 인수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KT&G는 트리삭티 주식 51%를 보유한 페이퍼컴퍼니 렌졸룩을 897억원에 인수했다. 897억원은 렌졸룩이 트리삭티 주식 51%를 확보하면서 지급한 취득원가(180억원)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중장부를 발견하고도 주식가치를 평가절하하기는커녕 오히려 5배나 높게 쳐서 인수한 것이다.

KT&G 측은 “180억원은 트리삭티의 원 소유주가 매각 대상 주식 51%를 렌졸룩으로 이전하기 위해 장부에 기록한 자기거래 금액에 불과하다”며 “인수과정에서 장부상 취득가액이 180억원인 사실도 몰랐고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트리삭티 인수대금 중 590억원이 렌졸룩 모회사인 바트라를 거쳐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코룬으로 빠져나간 사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KT&G 측은 “바트라 주식 100%를 가진 페이퍼컴퍼니 코룬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으로 매각 후 자금 이동은 매도인만이 사정을 알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계전문가들은 “통상 기업을 인수할 때는 과거 5년치 회계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기 마련인데 기초장부나 법인등기부만 봐도 알 수 있는 장부상 주식 취득가액이나 지배회사 이름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문제는 KT&G의 비정상적인 주식 취득이 국민연금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이 출자한 큐캐피털파트너의 QCP펀드는 2012년 9월 359억원에 렌졸룩의 우선주를 사들였고 렌졸룩은 유상증자를 통해 트리삭티 주식 9%를 추가로 확보했다. KT&G 측은 “QCP펀드는 자체 판단에 의해 우리와 동일한 취득 단가로 트리삭티 주식 9%를 취득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일한 기준으로 투자가 이뤄졌다는 KT&G 해명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KT&G는 897억원에 주식 51%를 취득한 반면 국민연금은 359억원에 주식 9%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주당 투자금액을 감안하면 KT&G는 2011년 트리삭티의 기업가치(주식 100%)를 1600억여원 정도로 본 반면 국민연금은 2배(취득원가 10배)가 넘는 3900억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KT&G가 트리삭티 경영권을 확보한 후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가 2배 이상 상승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KT&G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트리삭티는 적자가 누적돼 KT&G가 보유한 렌졸룩 투자 주식 가치는 2015년에 0원이 됐다. KT&G가 897억원, 국민연금이 359억원을 투입해 취득한 트리삭티 투자 주식이 2015년에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렌졸룩의 감사보고서에는 이미 2013년 말 기준으로 트리삭티 투자 주식이 0원으로 평가됐다.

결국 KT&G가 이중장부까지 감수하며 미래가치를 보고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에 투자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KT&G 투자 후 적자가 늘어났음에도 오히려 기업가치를 2배 이상 높게 보고 359억원을 투입한 국민연금 투자 결정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측은 “투자결정은 전적으로 위탁사(큐캐피털파트너)의 판단에 따라 이뤄질 뿐 우리는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큐캐피털파트너 측은 어떤 판단근거로 투자에 참여했는지 밝혀달라는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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