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선진국은 상속세 폐지하는데..한국은 눈치만'

최일권 2019. 3. 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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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후 10년간 대표 유지' 공제요건은 내달 수정
OECD 30개국 가업 승계시 상속세 부담 없애
우리나라는 국민정서·국정철학이 걸림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선진국들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공제율을 확대는 등 기업 부담을 낮추고 있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제요건 가운데 상속후 10년간 대표직 유지에 대해 "지나친 측면이 있다"며 축소 방침을 시사했을 뿐 세율 인하 등 재계 요구에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4일 "상속 후 10년간 업종과 지분ㆍ자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행 요건은 너무 엄격하다는 기업계의 문제제기에 공감한다"면서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등 제도를 개선하는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내달 개선안 발표…상속세율 인하는 "글쎄"=기재부는 우선 10년간 동일업종을 유지해야 하는 현행 요건에 대해서는 다음달 중 개편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산업이 급변하는 시대에 사후관리 요건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재계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다. 국회에서도 지난해말 상속ㆍ증여세법을 개정하면서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의무가 너무 엄격하므로, 국제적인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가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부대의견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발표될 방안에서는 상속공제요건인 동일업종 유지 기간이 10년에서 줄어들고 동일업종의 범위와 개념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속세율 인하 등 과세체계 개편에 대해 정부는 입을 닫고 있다.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상속ㆍ증여세의 명목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상증세 명목세율은 과세표준 구간 1억원 이하일 경우 10%, 5억원 이하는 20%다. 이후 점차 높아져 30억원을 초과하면 세율은 50%로 오른다. 기업을 물려받는 경우에는 상속규모가 30억원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세율 50%가 버겁다고 호소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업승계 실태조사' 결과, 전체 응답기업의 69.8%가 '상속세 등 조세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상속을 불로소득이란 부정적 시각이 아닌 일자리 창출, 노하우 계승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에 OECD 35개 국가 중 11개국은 상속세 운영하다 폐지했다. 벨기에(80%), 프랑스(60%) 등은 최고 명목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아 단순히 부를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만, 기업을 이어가는 목적에 대해선 큰 폭의 공제혜택을 주고 있다. OECD 35개 중 30개국 직계비속 승계시 상속세 부담 없거나(17개국), 공제 혜택(13개국)을 줘 백년기업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가업상속에 대한 공제 요건도 기업 규모의 제한 없거나(영국, 스페인) 요건을 간소화(독일, 프랑스)했다. 상속 후 기업 경영 기간 프랑스의 경우 3년, 독일은 5년이고, 지분보유 의무기간도 프랑스는 4년, 독일ㆍ일본ㆍ네덜란드는 5년에 그친다. 독일의 경우 상속세 명목 최고 세율 50%이지만, 직계비속 상속시 실제 상속세 최고 세율 30%이며, 가업 상속 공제 혜택을 적용하면 실부담은 4.5%로 크게 줄어든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 스위스나 핀란드의 4~5대 가업들과 단순히 부가 자식에게 내려가는 것을 넘어 기술력, 회사의 연속성 등의 차원에서 기업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반면 우리나라의 기업가들은 비현실적인 제도 아래 불편법적으로 상속하고 있다고 오해를 받다보니 사회적으로 기업가에 대한 존경이 없을 뿐 아니라 기업의 연속성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정서ㆍ'국정철학'이 상속세 개편 가로막아=정부가 재계의 요구를 선뜻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실효세율과 국민정서, 현 정부의 국정철학 등이 배경으로 지적된다. 상증법에 따르면 상속규모가 5억원까지는 일괄공제, 배우자공제도 5억~30억원까지 적용된다. 상속규모가 10억원 이하일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상속세 실효세율은 18.3%로, 2007년 21.3%에서 오히려 낮아졌다. 2015년에는 18.0%였다. 증여세 실효세율도 2015년 26.8%에서 2016년에는 22.3%로 하락했다.


국민 정서와 국정철학도 정부로서는 무시할 수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율은 국민 인식과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정서상 상속세 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만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유산취득세 방식 도입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유산취득세는 총액이 아닌 재산 분할 후 각자의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상속인 입장에서는 세부담이 줄어든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러 나라들이 유산취득세를 도입하고 있는데, 장단점은 있다"면서 "형평성과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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