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트럼프의 'B737 굴욕'..세계는 시진핑을 따랐다

강혜란 2019. 3. 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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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항공 참사 나흘만에 운항중단 '뒷북'
첫날 중국 독자결정에 아시아·유럽 잇따라 동참
FAA 청장 공석..블랙박스도 유럽서 분석키로
각국 '反화웨이' 이탈 등 트럼프 으름장 안먹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13일(현지시간) 중국이 테이프를 끊은 ‘보잉737맥스 보이콧’에 합류했다. “시기상조”라던 이웃국가 캐나다 항공 당국이 같은 기종 항공기의 이착륙과 캐나다 영공 통과를 금지한다고 밝힌 데 이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민과 모든 사람의 안전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사고 기종인 737맥스8과 유사 기종 737맥스9에 대한 운항 중단 지시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국경 마약밀매와 관련된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그는 5개월새 두번의 참사를 빚은 보잉사의 737맥스8 및 737맥스9에 대해 즉각 운항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은 보잉737맥스 운항 중단에 동참한 거의 마지막 국가다. 항공 선진국 중에서 미국보다 늦게 합류한 국가는 일본 정도다. 지난 10일 에티오피아 항공 사고 당일 중국이 맨 처음 자체적으로 해당 기종 운항 중단을 선언했다. 이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 움직였고 영국·노르웨이 등 유럽권이 합세하면서 직간접적인 보이콧 국가가 50여개국에 이르렀다. 보잉사의 데니스 뮐렌버그 최고경영자(CEO)가 1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안전을 자신하고 미 연방항공청(FAA)도 “어떠한 시스템적 결함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를 뒷받침했지만 확산되는 ‘보잉 포비아’를 막지 못했다.

FAA 측은 이날 “현장에서 수집·분석된 새로운 증거물”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블랙박스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세계적인 보이콧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에티오피아 항공 측은 수거된 사고기 블랙박스를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보내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미국 감독기구의 진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대응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고 전했다.

특히 사태 수습을 지휘해야 할 FAA 청장이 1년 2개월째 공석이란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 자신의 개인 전용기 조종사를 FAA 청장 후보로 추천했다가 '자격 미달'이라는 비판 속에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에티오피아 항공 사고 후 보잉 737맥스 기종의 운항 현황을 비교한 그래픽. 중국이 맨 먼저 운항중단을 결정한 후 11일(현지시간) 오전 8600대에 이르렀던 운항 대수(파란색)가 13일 오후 0으로 줄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무엇보다 중국이 사태 초기에 독자노선을 걸은 게 타격이 컸다. 1990년대에만 해도 여객기 추락 사고가 빈번했던 중국은 앞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면 FAA 결정을 따랐다. 하지만 이번 사태 땐 과감하게 독자적인 운항 중단 결정을 내렸고 이는 연쇄 효과를 불렀다. 해당 기종 14대를 보유한 류샤오용(劉紹勇) 중국동방항공 회장은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은 승객의 생명이며, 이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중국의 위상 강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진단했다. NYT는 "과거 중국은 위험한 하늘로 악명이 높았지만, 현재는 경제력과 국력이 성장하면서 항공 안전을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2010년 이후 이렇다 할 대형사고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수장도 중국 출신이다. 2005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신규 상업용 여객기 구매국으로 등극한 중국은 차제에 독자적인 여객기 개발까지 서두르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4일 논평에서 "보잉의 이번 사고는 중국 항공기 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서 "안전을 가장 중시하고, 해외의 선진 경험을 참고하되 안정적인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썼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운항 중인 보잉 737 맥스8 기종이 13일(현지시간) 휴스턴 하비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이날 미국도 전세계적인 보잉 737 맥스 운항 중단에 합류했다. [AP=연합뉴스]
이번 사태가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인 ‘화웨이 싸움’에 영향을 미칠 지도 주목된다. 미국은 5세대(5G) 통신망 구축 사업과 관련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배제하라고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화웨이를 채택할 경우 정보 당국 간 정보협력을 제한하겠다는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2일 이같은 미국 측 요구에 대해 "우리 스스로 기준을 정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영국과 이탈리아도 미국의 반(反)화웨이 진영에서 이탈한 상태다. 통신·항공 등 첨단기술이 세계표준이 되는 분야에서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과 유럽이 연합한다면 미국이 ‘마이 웨이’를 고수할 수 없는 형편이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있어 "국제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오리아나 마스트로 조지타운대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FT는 “보잉 737 논쟁에서 가장 교훈적인 점은 중국과 유럽연합(EU)이 같은 규제기준에 동의하면 미국이 따를 수밖에 없는 글로벌 경제의 현실”이라며 이번 사태가 미국 일방주의를 강제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성의 기회(teachable moment)”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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