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국부라고? 반민특위 방해, 양민학살, 전쟁중 도망"

시사포커스팀 2019. 3. 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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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15의거 59주년- 3.15의거 기념사업회 남기문 사무국장
이승만, 사후 대비 이기붕 부통령 위한 부정선거
노골적인 부정선거..투표권자보다 표가 많아 덜어내기도
민주당 마산시당 선거무효 선언 방송..시민들 결집
경찰 시위대 향해 발포..이기붕 '총은 쏘라고 준 것' 망언
김주열 시신 마산앞바다에서 발견..전국적인 시위로 확대
4월 26일 이승만 하야성명 발표..3.15가 혁명이었다는 견해도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 전쟁중에 국민들 버리고 도망간 사람

■ 방송 : 경남CBS<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남기문 3.15의거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김효영> 내일은 경남 마산에서 3.15 의거가 일어난 지 59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3.15 의거. 4.19에 비해 저평가 됐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오늘은 3.15의거 당시 마산으로 가보겠습니다.
'3.15 의거 기념사업회' 남기문 사무국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네 안녕하세요?

◇김효영> 내일 기념식 준비하시느라 바쁘시죠?

◆남기문 사무국장> 네. 오늘 오늘 오전에 국립묘지에서 추모제가 열렸고, 내일 오전에 9시 30분부터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보훈처장, 도지사 권한 대행, 창원 시장, 국회의원, 유족분들이 국립 3.15 민주 묘지를 참배하고 분향을 하고 다시 3.15 아트센터로 이동 하셔서 10시부터 기념식이 열리게 됩니다.

◇김효영> 지금까지 대통령이 3.15기념식에 온 적은 있습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40주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한 번 방문을 하셨죠.

◇김효영> 많은 사람들이 3.15 보다는 4.19를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항쟁으로 기억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로 시작 된 투쟁이 4.19로 옮겨가면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이후에 모든 것을 서울 중심으로 사고를 하다보니까요. 시작점이 되었던 3.15가 그야말로 혁명이 아니냐는 주장이 많습니다.

◇김효영> 그렇다면, 1960년 3.15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남기문 사무국장> 3.15의거를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했다고만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잘못된 거구요. 그 이전에 이승만 정권에서 이루어졌던 아주 많은 잘못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국민들 가슴속에 맺혀 있다가 3.15 부정선거라는 것을 통해서 폭발했다라고 보는 것이 맞죠.

◇김효영>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다가 폭발한 것?

◆남기문 사무국장> 그렇죠. 부정선거는 그 당시에 마산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다 똑같은 행태의 부정선거가 진행이 되었거든요.
그 전에 마산에서는 좀 다른 것들이 좀 있었죠.

◇김효영> 예를 든다면요?

◆남기문 사무국장> 민주당 의원으로 아주 압도적인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던 허윤수라는 사람이 다음 해에 자유당 공천 보장과 동양주정이라는 회사의 경영권을 받고 당적을 옮기게 됩니다.

◇김효영> 네.

◆남기문 사무국장> 그리고 마산에서는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징용이든, 유학이든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가있던 동포들이 귀향을 하게 됩니다. 그 귀향을 한 곳이 부산과 마산 이 두 곳의 항구에 들어오게 되죠. 그러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김효영> 해방 직후에.

◆남기문 사무국장> 그리고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민들이 몰려오면서 또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죠. 그러면서 일제시대 이전의 배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니 물가가 높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다른 어떤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정권에 대한 불만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기반 위에서 부정선거가 기름을 갖다 붙게 되죠.

◇김효영> 당시 부정선거는 어떤 선거였습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정·부통령 선거라고 해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함께 뽑는 선거였습니다.

◇김효영> 선거부정은 어떤 식으로 일어난 겁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그 당시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조병옥 씨가 선거기간 중에 미국에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승만이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정이죠. 하지만 부통령에 이기붕 씨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꼭 그렇게 까지 부정선거를 하면서 이기붕을 당선시켜야 되는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보면 대통령이 유고시에는 부통령이 바로 그 대통령 직을 승계를 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장면 부통령이 당선 될 확률도 좀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80대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사후를 고려해서 이기붕을 반드시 당선시켜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김효영> 그랬군요 그래서 부정선거를 했다. 부정선거의 방식은 어떤 방식이었습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가장 강한게 공포 분위기 조성이죠.
빨간 완장, 자유당, 반공청년단 들이 투표소 주변을 두르고, 경찰이 수시로 왔다갔다 하고, 그리고 민주당 당원으로 확인 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방법. 또 야당계 참관인들을 쫒아내는 거죠.

◇김효영> 노골적이었네요?

◆남기문 사무국장> 그리고 심지어 동네에서부터 3인조, 5인조, 9인조 라던지 조를 짜서 조장의 책임 하에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투표 찍는 것 까지 확인하고.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죠.

그리고 사전에 투표를 40% 정도를 미리 해두는 것이죠. 그래서 4할 사전투표라고, 심지어 어떤 투표소에는 투표권자 보다 표가 더 많아서 덜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효영> 방송 들으시는 젊은 층에서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마산 시민들이 어떻게 거리에 나오게 된겁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처음에 민주당 마산시당에서 이건 도저히 선거가 아니다. 그래서 오전 10시 30분 경에 '선거무효 선언'을 합니다.
무효선언을 공고를 붙이고 당사에서 방송을 하죠. '이 선거는 명백한 부정선거이므로 우리는 더 이상 투표를 진행하지 않겠다'.

◇김효영> 당사에 설치 된 마이크를 통해서 마산 시민들에게 알린 거군요?

◆남기문 사무국장> 그래서 시민들이 한 두 명씩 모이죠. 거기서 점차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선전전을 하고 농성을 이어가다가 거리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거리로 나서자마자 경찰들이 민주당 간부들을 다 연행해서 가버리죠. 민주당 간부들이 다 연행되고 나니까 시민들은 어쩔 줄 모르는거죠.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으니까.
또 민주당 당직자들이 잡혀갔다는 소문이 퍼지죠. 그러니 또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다보니 점차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 사람들이 부정선거를 통해서 개표장인 그 당시 마산시청으로 가자, 가서 개표를 막기 위해서 시민들이 나가죠.
나가는 중에 가는 길에 남성동 파출소가 있어서 거기서부터 경철에 막히는 거죠. 경찰에 막히니 북마산 쪽으로 우회해서 내려갑니다.

◇김효영> 시청까지 내려간 겁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시청까지는 가지 못하고, 지금의 3.15의거 기념탑이 있는 서성동 일대의 무학초등학교 주변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부딪히게 되죠.

◇김효영> 물리적인 충돌?

◆남기문 사무국장> 네, 처음에는 경찰이 소방차를 보내서 물로 진압을 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돌멩이를 던지니까 소방차 운전사가 겁이나니 뛰어내려 버립니다. 뛰어내리니까 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아서 마산 시내가 전체가 정전이 되는 사태도 벌어지게 되죠.

◇김효영> 마산 시내 전체가 정전.

◆남기문 사무국장> 그런데, 경찰이 어느 순간 발포를 합니다.

◇김효영> 총을 쐈다?

◆남기문 사무국장> 네, 그 발포가 되는 순간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포탄을 쐈겠지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포탄이니 다시 가자, 괜찮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바로 다시 총 소리가 나면서 사람이 쓰러지기 시작 합니다.
그래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 때부터는 도망을 가는 거죠. 도망을 치다 넘어지기도 하고, 그 때부터 경찰은 마구잡이 연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경찰이 자기들이 어쩔 수 없이 발포 한거다 그랬는데, 그게 남성동 파출소, 북마산 파출소 세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각에 총성이 울렸거든요.

◇김효영> 어디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봐야 된다는 말씀. 발포 책임자는 나왔습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모든 책임은 최인규 내무부장관이 맡아진거라고 보죠. 그 분은 특히 발포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처음에는 '공포탄을 쐈는데 군중들이 돌멩이를 던지니까 총알과 돌이 맞아서 튕겨서 사람에게 맞았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효영> 그게 가능한 이야기 입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더 황당한 말을 한 사람도 있죠. 부정선거로 당선 된 이기붕씨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총은 쏘라고 준 게 맞죠, 적을 향해서 쏘라고 준 것이지

◇김효영>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쓰라고 쥐어 준 총이지 누가 시민을 향해서 쏘라고 준 총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때 희생자가 몇 분이나 되는 겁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지금 우리가 12명이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 때 당시 돌아가신 분들이 부상을 입고 돌아가신 분, 투병 중에 그 다음해에 돌아가신 분도 있고, 그 해에만 돌아가신 분들이 열 두 분 있고.

◇김효영> 그렇군요. 그 분들이 지금 3.15 국립 묘지에 안장이 되어 계신 겁니다.
말씀 듣다보니 시간이 3분여 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그럼 마산 3.15가 어떻게 전국적으로 4.19 까지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남기문 사무국장> 3.15일 저녁에 시위에 참여했던 김주열이라는 학생이 실종이 되었습니다. 마산 시내에서 실종이 된 상태에서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 들을 썼는데도 찾지 못하다가 4월 11일 날 마산 앞바다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로 떠오르게 됩니다.

◇김효영> 그게 부산일보 사진기자가 찍어서 보도됐죠.

◆남기문 사무국장> 그것이 기회로 마산에서 고등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일으키게 됩니다. 4월 12, 13일 이렇게 시위가 일어나면서 이 시위들이 전국으로 번져나가게 되죠. 4월 18일 날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에 참석 했다가 평화적인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정치 깡패들이 와서 무자비하게 각목, 쇠파이프, 맷돌 등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게 됩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4.18일 날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고등학생 들이 계속 시위에 나오게 되죠.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 날 하야 성명을 발표하면서..

◇김효영> 그런데 왜 4월 19일을 기념일로 했을까요?

◆남기문 사무국장> 그때가 아마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나왔을때고.

◇김효영> 알겠습니다. 지금 1분정도 남았는데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일부세력에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부르기도 하고. 건국절 논란도 여전히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남기문 사무국장> 그걸 보면 정말 역사공부가 중요하다는걸 느끼거든요. 그분들이 이야기하시는걸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그것도 주변의 사람들이 부추겨서 한 잘못말고는 없다고 하는데. 실제 그 이전에 해방이후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반민특위)를 방해하고, 보도연맹 사건이라던지 양민학살 사건,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쟁중에 국민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갔잖아요.

◇김효영> 알겠습니다. 제대로 역사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이라는 말씀. 오늘 시간이 부족했네요. 다시 한번 더 모시고 싶은데, 다음 달에 괜찮으세요?

◆남기문 사무국장>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지금까지 3.15의거 기념사업회 남기문 사무국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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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팀] hy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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