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수사' 검찰 넘긴 권익위, 검·경 수사권조정 돌발변수로

박태인 입력 2019. 3. 15. 05:00 수정 2019. 3. 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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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검찰 넘긴 건 경찰 유착 의혹 때문"
검·경 수사권 조정 앞두고 경찰에 '대형 악재'
민갑룡 경찰청장 "경찰 명운걸고 수사하겠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낙연 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 11일 버닝선 경찰 유착 의혹이 담긴 카톡 메시지를 대검찰청에 넘겼다. [뉴스1]
국민권익위원회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돌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권익위가 지난 11일 저녁 공익신고자를 통해 확보한 가수 승리와 정준영씨의 성접대 의혹과 몰카, 경찰 유착 의혹이 담긴 카톡 메시지 전부를 경찰이 아닌 대검찰청에 이첩했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경찰의 협조 요청을 거절한 뒤 압수수색 가능성이 제기되자 11일 지방에 있던 비상임위원을 직접 방문해 서면으로 서명을 받은 뒤 해당 카톡을 밤 11시에 대검찰청에 넘겼다.

박은정 권익위 위원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건은 신고 내용에 경찰의 유착을 의심할 만한 것은 물론 부실 수사와 관련된 부분도 포함돼 있어 검찰을 수사기관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선 권익위의 이런 행보에 내부적으로 매우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가 기관인 권익위가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경찰의 압박을 피해 검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서다.

박 위원장은 "신고자가 제출한 증거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건은 검찰로 수사를 의뢰하는게 타당하다는 분과위원회의 결정이 있었고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유포 논란을 빚은 가수 정준영씨(왼쪽)와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빅뱅 멤버 승리(오른쪽)가 14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국민 입장에선 권익위가 경찰 몰래 검찰에 카톡을 넘긴 것처럼 보여 경찰이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됐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는 압수수색에 대한 내부 우려가 가장 컸다"며 "경찰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이번 사건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할 계획이다. 다만 현재 경찰 광역수사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 검찰이 사건을 직접 수사할지,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수사 상황만 보고받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찰에선 권익위의 이번 결정이 최근 여야가 국회에서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 대상으론 논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과 자유한국당은 현재 정부 법안에 포함된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 부여'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으로 검찰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민갑룡 경찰청장은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경찰은 국민 요구와 바람을 명심하고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해 범죄와 불법을 조장하는 풍토를 철저히 뿌리뽑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 경찰 정예 인력 162명을 투입했다.

청와대와 법무부, 여당은 검찰의 기소권과 영장청구권 및 특수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은 남겨두고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은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직접 수사는 폐지하더라도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은 남겨둬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는데 검찰이 한번 더 체크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이득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와 같이 검찰에게 일방적인 권한이 부여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손해보는 것은 국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형사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는 "버닝썬 사건과 같이 경찰 유착 의혹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현재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버닝썬 유착을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출신의 변호사는 "버닝썬 사례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며 지금과 같이 견제 수단이 없는 검찰의 권력은 개혁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경찰 일각에선 버닝썬 사건 자체가 아니라 경찰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수사하고 '환부'를 도려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사권 조정은 겸찰과 검찰 중 누가 더 부패하고 덜 부패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에 굉장히 유감이고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사법 제도 개혁 문제는 특정 조직의 비리가 더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서 드러나듯 "검찰 역시도 권한을 남용했던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버닝썬 사건, 혹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 등은 모두 수사권 조정의 본질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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