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임정 百주년](47) 역사상 첫 한미동맹 '독수리작전'

2019. 3.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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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산하 광복군, 美 첩보부대 OSS와 中시안서 국내 진공작전 준비
장준하·김준엽도 50명 대원에 포함..일제패망으로 '회심의 일격' 불발되자 분루
"첫번째 한미 동맹을 기념하여" 광복군 '독수리 작전'의 한미 연합 지휘부. 아랫줄 가운데가 한국광복군 2지대장 이범석 장군. 상단에 "첫번째 한미동맹을 기념하여"라는 영어 문구와 "우리 두 나라의 힘 있는 합작이 실현되는 날, 이 사진의 역사적 가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한글 문구가 적혀 있다. [독립기념관]

(시안[중국 산시성]=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천년고도인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중심에서 남쪽으로 40㎞가량 떨어진 중난산(終南山).

자동찻길이 끊긴 곳에서부터 인적 없는 골짜기를 따라 산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자 수십 미터 높이의 암석 절벽이 둘러싼 험준한 산세가 펼쳐졌다.

산시성 남쪽을 에워싼 험준한 친링(秦嶺)산맥이 시작되는 이곳이 바로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 대원들이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으로 명명된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특수전 훈련을 받던 역사의 현장이다.

'독수리 작전' 광복군 야전 훈련장 (시안=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국 첩보부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 김구 주석이 이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동으로 준비하던 '독수리 작전' 야외 훈련장인 시안 중난산 골짜기. 2019.3.15 cha@yna.co.kr

김구가 남긴 백범일지 등을 보면, 한인 청년들은 여기서 국내 진공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한 줄 밧줄에 의지해 위태롭게 수십 미터 높이 절벽을 오르내리고 폭발물을 설치하고 터뜨리는 등의 고강도 훈련을 받았다.

산골짜기에 난 좁을 길을 따라 들어가 중난산 한복판에 서니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훈련에 나섰던 광복군 대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독수리 작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5년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미국 첩보부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 김구 주석이 이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비밀 연합 작전이었다.

고도의 특수 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들을 한반도에 비밀리에 들여보내 동시다발적인 후방 교란 작전을 전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45년 광복군 사령부는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에,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광복군 주력 부대인 2지대는 중일전쟁의 최전선인 시안 외곽의 두취(杜曲)진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국광복군 2지대 주둔지 (시안=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시안시 외곽 두취진의 옛 한국광복군 2지대 주둔지. 2014년 2지대 기념비와 함께 공원이 들어섰다. 2019.3.15 cha@yna.co.kr

동쪽 100㎞ 지점까지 일본군 최전방 부대가 들어와 있고, 일본군 항공기의 폭격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시안은 중일전쟁의 최전선 도시였다.

그해 4월 OSS 측 훈련 책임자인 클라이드 사전트 대위와 미군 교관들이 두취진의 2지대 주둔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독수리 양성'이 시작됐다.

광복군 대원 중에서도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 실력이 능동하고 체력 등 특수 임무 수행의 자질이 뛰어난 이들 50명이 특별히 선발됐다.

이 중에는 일본군에 학병으로 징집당했다가 탈출하는 데 성공해 광복군에 합류한 고 장준하 선생과 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도 있었다.

한국광복군 활동 시절의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왼쪽부터) [나남출판 제공]

1기생 훈련은 그해 8월 4일까지 4개월간 두취진 본부와 '평가 단지'라고 불린 중난산 야전 훈련장을 오가며 진행됐다.

학과 훈련은 주로 두취진 본부에서, 폭파·사격·비밀 무전·도강술·절벽 오르내리기 등 게릴라전을 위한 훈련은 야전 훈련장인 중난산에서 이뤄졌다.

1기생 중 훈련 과정을 모두 이수한 이는 38명이었다. 중도에 12명이 탈락한 것은 극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독수리 훈련'의 강도가 그만큼 높았음을 보여준다.

평가 단지 내 본부는 중난산 입구에 있는 미타고사(彌陀古寺)라는 고찰이었다.

당시 '버려진 절'로 기록된 미타고사 부지는 1980년대에 중건된 전각들로 채워져 있다. 대웅전 앞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측백나무만이 당시 광복군 대원들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을 터이다.

광복군 '독수리훈련' 야전훈련 캠프였던 미타고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시안시 외곽 중난산에 자리잡은 사찰 미타고사. 이곳은 '독수리 작전' 야외 훈련장의 캠프 역할을 했다. 2019.3.15 cha@yna.co.kr

1기 양성 교육이 끝난 직후인 1945년 8월 7일 김구 주석은 OSS의 수장인 윌리엄 도너번 소장과 함께 훈련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자 두취진 2지대 본부와 중난산을 직접 찾았다.

김구 주석은 백범일지에 중난산 야외 훈련 참관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청년 일곱명을 인솔해 중난산 봉우리로 올라갔다가 몇백길 절벽 아래로 내려가 적정을 탐지하고 올라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소지품은 밧줄 뿐이었다. 줄을 타고 내려가서 나뭇가지 하나씩 입에 물고 올라오니 목표는 달성된 것이었다. 그런 다음 폭파술과 사격술, 비밀리에 강을 건너는 기술 등을 시찰했다"

임시정부와 OSS 측은 1기 교육생 성과를 바탕으로 수천명 규모의 한인 특수부대를 육성해 한반도에 들여보낼 계획을 세워 두었다. 시안에서 양성된 부대원들을 산둥반도에서 미군 잠수함에 태워 국내로 진입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전국 각지에서 공작을 개시해 일본의 후방을 대대적으로 교란하려는 것이었다.

'독수리 작전' 광복군 야전 훈련장의 절벽 (시안=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미국 첩보부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 김구 주석이 이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동으로 준비하던 '독수리 작전' 야외 훈련장인 시안 중난산의 절벽. 2019.3.15 cha@yna.co.kr

국내 진공 작전을 꿈꾸던 김구 주석과 광복군 대원들에게 8월 10일 갑작스럽게 전해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은 마냥 기쁜 일일 수만은 없었다.

일본은 8월 10일 국제연맹(유엔의 전신)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타진했고 이는 즉각 각국 수뇌부에 알려졌는데 이 소식이 다시 중국 국민당 요인들을 통해 김구 주석에게도 전해진 것이었다.

김구 주석은 백범일지에서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훈련장에 있던 광복군 대원들 역시 낙담한 분위기였다고 김구 주석은 당시 분위기를 기록해 놓았다.

이처럼 예상보다 빨랐던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군이 계획한 일본에 대한 '회심의 일격'은 비록 불발에 그쳤다.

하지만 1940년 창설돼 6년간 활동한 임시정부의 국군, 광복군의 일련의 활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고 우리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특히 광복군이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긴밀한 연대 속에서 최전선을 넘나들며 대일 선전전 등을 통해 중일전쟁에 공식적으로 동참했고, '독수리 작전'으로 미국과 연합 작전에 나서면서 전후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참전 승전국'으로서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명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미국, 중국처럼 일본과 싸우는 나라와 연합해 싸움으로써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 것"이라며 "끝내 실행되지 못했다고, 혹은 실패했다고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의미를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의 중국 언론들도 한국광복군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 점을 보면 광복군의 활동이 세계에 한국의 독립 쟁취 의지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943년 4월 충칭에서 발행되던 중국의 유력 뉴스 주간지 연합화보(聯合畵報)는 1943년 '서북(西北)의 단군의 자손들'이라는 제목으로 시안에 주둔하던 광복군 2지대와 부대장 이범석 장군의 면면을 조명하는 기사를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싣기도 했다.

이 중 한 사진은 소총을 든 한 광복군 병사가 국기 게양대에 높게 걸린 태극기를 곁에서 지키고 있는 강인한 모습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북의 단군의 자손" (시안=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한국광복군 2지대의 활동을 집중 조명한 1943년 중국 주간지 연합화보(聯合畵報)의 기사. 소총을 든 한 광복군 병사가 국기 게양대에 높게 걸린 태극기를 곁에서 지키고 있는 강인한 모습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19.3.15 cha@yna.co.kr

시안 서북대학 역사학과의 자오빈(趙斌) 교수는 "중일전쟁 시기 중국이 어렵게 일본과 항전하고 있을 때 국제연맹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누구도 중국을 돕지 않았다"며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을 때 한국광복군을 비롯한 당시 한인들이 중국과 같이 항일 투쟁에 나섰던 것은 중한 양국 역사에 모두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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