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당해고' MBC 아나운서들 "저희는 적폐가 아닙니다"

2019. 3. 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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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 인정한 2차례 판정에도 회사는 소송 제기
"한창 일할 나이에 갈 곳도 없고 막막해요"
지난 1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문화방송>(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이야기 나누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휘준(27), 박지민(27), 이선영(30), 김민호(30)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휘준(27), 박지민(27), 김민호(30), 이선영(30)씨는 2년 전 꽃다운 20대에 그토록 꿈꿨던 <문화방송>(MBC) 아나운서가 됐다. 비록 지금 당장은 계약직 신분이지만, ‘국장님’은 곧 정규직 전환을 해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선배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입사 4개월 차 비정규직 신분의 ‘막내’들은 노조에 들어갈 수 없었다. 파업은 승리했고, 사장도 바뀌었다. 바뀐 사장은 ‘거악’에 맞서 싸웠던 언론탄압 피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선배들을 대신해 방송을 한 건 딱 한 달뿐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저희더러 ‘적폐’래요.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 밑에서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분들은 정규직이라서 괜찮고, 저희는 비정규직이라서 해고된 걸까요?”

지난 1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엠비시 계약직 아나운서 9명이 15일 법원에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번 신청은 지난 7일 엠비시가 중노위 판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 당국 위에 엠비시, 복직명령 무시하는 문화방송, 무의미한 소송을 멈추고 엠비시 아나운서 복직 즉각 이행하라”라고 밝혔다.

엠비시 계약직 아나운서 부당해고 사건의 쟁점은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이다. 앞서 지난해 9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역시 2016년~2017년 엠비시에 ‘전문계약직’ 신분으로 입사했던 아나운서 9명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을 인정하고, 이들을 원직에 복직시킬 것을 엠비시에 명령했다. 다시 말해, 엠비시가 지난해 4월(2016년 입사자)과 5월(2017년 입사자) 계약만료를 이유로 이들을 회사에서 내보낸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중노위는 △채용공고문에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기재한 점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채용시험을 치르고 급여를 준 점 △지상파 3사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전례가 없었던 점 △아나운서 국장 등이 수차례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점 등을 근거로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근로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고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실제 2016년 엠비시 경영평가보고서를 보면, 당시 계약직 인원이 증가한 것에 관해 “정규직 임용 전 검증을 위하여 아나운서 등 일부 직무를 계약직으로 고용했기 때문”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듬해 7월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임시이사회 회의록에서도 정부의 노동정책에 따른 사내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에 대해 “아나운서 같은 경우 2년 계약으로 뽑은 다음에 실적을 봐서 다시 사원화(정규직)시키는 방법이 있다”는 당시 백종문 부사장의 답변이 등장한다.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MBC 아나운서 해고무효확인 소송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엠비시 쪽은 이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4월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채용 전형을 실시했던 만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노위는 엠비시의 특별채용 절차는 회사 인사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근무성적이 우수한 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채용 전형을 앞두고 실제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근무성적을 평가하지 않았던 점, 2018년 4월3일 특별채용 계획이 최종 확정되기 전인 3월 중순부터 전형을 진행한 점 등을 봤을 때 엠비시가 이 아나운서들과의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때문에 아나운서들은 지노위와 중노위의 판정 결과에 복직을 기대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잃은 아나운서들은 지난 8일에서야 ‘회사가 행정소송으로 다툼을 이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것도 한 매체 기자를 통해 전해 들었다.

벌써 일을 하지 못한 지 10개월. ‘꽃길’이 될 줄 알았던 아나운서 경력은 지금 이들의 재취업마저 가로막고 있다. 지노위 결정 이후 다른 방송사들은 물론 일반 기업들도 ‘어차피 엠비시로 돌아갈 것 아니냐’며 이들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대형 컨설팅 회사를 퇴사한 이선영씨는 “저희는 지금 당장 한 달에 100만원이 없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행정소송 제기와 관련해 엠비시 관계자는 “중노위 판정서에서 부당해고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발견됐고, 계약직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의 합리성을 따지는 내용 가운데 기존 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 행정소송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며 “특별채용 절차에 합리성이 결여됐다는 중노위의 판정에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엠비시 노조는 “노조 집행부가 새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단계에선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저희가 최승호 사장님이랑 <공범자들> 시사회도 같이 갔었거든요. 그 다큐멘터리처럼 선배들은 ‘거악’에 맞섰던 분들이니까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아직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한 ‘계약직’ 청춘들의 봄은 그렇게 가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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