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총격범 막아선 노인의 마지막 말 "안녕 형제여"

박수현 기자 2019. 3. 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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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가 날 살렸어. 네 아버지가 날 살렸어."

야마 나비는 15일(현지 시각)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알 누르 이슬람 사원 총격에서 아버지 다우드 나비(71)를 잃었다. 총격범 브렌턴 태런트(28)를 막아선 다우드 나비의 마지막 말은 "안녕 형제여(Hello brother)"였다.

2019년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범 브렌턴 태런트(28)를 막아서다 숨진 다우드 나비(71).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난민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한 그는 생전 뉴질랜드를 ‘낙원’이라고 불렀다. /시드니모닝헤럴드

야마 나비는 그날따라 예배에 늦었다고 했다. 딸 자할(6)의 준비가 늦어진 탓이었다. 평소보다 10분쯤 늦었을까. 서둘러 도착한 사원은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어서 근처에 차를 세우고 딸에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죠."

사원 입구로 향하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한 남성은 한 여성을 붙들고 울부짖고 있었다. 여성의 머리에는 끔찍한 총상이 보였다. 주변에는 시신으로부터 남성을 떼어내려는 무리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입구에서 낯익은 소말리아 출신 남성과도 마주쳤다. 기도 시간 때마다 장난을 치는 아들을 혼내던 이였다. 바닥에는 그의 아들이 누워 있었다. 얼굴을 자켓으로 덮은 채였다. 벽에 기댄 남성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의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이 더이상은 들어갈 수 없다며 앞을 막아섰다. 한쪽에서 친구 라마잔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아버지가 날 살렸어." 라마잔은 그 말을 두번, 세번 반복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생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망자 수가 늘고 있다는 말만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2019년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아버지 다우드 나비(71)를 잃은 야마 나비가 언론과의 인터뷰 중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스터프

야마 나비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경찰의 안내에 따라 인근 크라이스트처치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가는 길에는 총격범이 생중계한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영상에는 아버지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부분만 몇 번을 반복해서 봤습니다.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야마 나비는 친구가 아버지의 죽음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최근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했다는 사실을 알아서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2~3주 동안 얼굴도 안 봤죠. 그래도 좋아하시는 손주 얼굴은 보여드리려고 딸아이를 데려왔는데…"

다우드 나비는 은퇴한 자동차 수리공이었다.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뿌리를 내려 수십년을 살며 아프가니스탄 출신 주민들로 이뤄진 공동체도 이끌었다. 생전에는 "뉴질랜드는 낙원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우드 나비의 장남 오마르 나비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고 했다. "남을 돕는 게 아버지가 주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보통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부터 챙기셨거든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 말씀은 거칠게 하셨지만 항상 일이 커지기 전에 나서서 마무리를 도맡아 하셨습니다."

오마르와 야마 나비는 경찰로부터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는대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를 생각이라고 했다.

2019년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의 린우드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이 발생하자 사람들을 모아 범인을 제압한 아흐메드 칸. /CNN

생존자 중에 총격범을 저지하기 위해 몸을 던진 남성들도 있었다. 브렌턴 태런트가 알 누르 사원에서 5마일(약 8km) 정도 떨어진 린우드 사원으로 옮겨 범행을 이어갈 때, 아흐메드 칸은 사람들을 모아 역으로 공격할 계획을 짰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그 자를 붙잡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우리 모두를 쏠 거라고요. 범인은 총알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알라비 라티프와 압둘 아지즈(48)라는 남성 2명이 동참했다.

압둘 아지즈는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집어 총격범에게 던졌다. 주차된 차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범인의 총알을 피했다. 태런트가 탄약을 가지러 차로 돌아가자 그의 뒤를 쫓아 차를 향해 빈총도 던졌다. 경찰은 나중에 뒷 유리창이 깨진 차량이 쉽게 눈에 띈 덕에 도주하는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압둘 아지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줄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아흐메드 칸은 범인이 자신의 차로 돌아간 틈을 타서 다친 어린이 한 명을 사원 안쪽으로 옮겼다. 팔을 다쳐 쓰러진 한 남성도 끌고 들어와 숨겼지만 범인이 이미 본 뒤였다. "(다친 남성이) 물을 좀 달라고 하길래 경찰이 왔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창문 쪽으로 와서 그의 머리에 총을 쐈죠."

최소 50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친 이번 총격은 15일 오후 1시 42분 알 누르 사원에서 시작됐다. 당시 금요 예배가 진행 중이던 사원 안에는 300여명의 사람이 있었다. 범인은 이후 린우드 사원으로 이동해 총기를 난사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태런트를 체포하기까지는 총 36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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