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소송 vs 포항 시민 반발'.. 20일 발표 앞둔 포항지진 조사단의 딜레마

최준호 2019. 3.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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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퐇아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출입구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곳은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지진 때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고 주민들이 모두 이주해 흉물로 변해 있다.[뉴스1]
‘수천억 규모의 대(對) 정부 소송’ 아니면 ‘포항 시민들의 집단 반발’.

2017년 11월 경북 포항을 뒤흔들었던 5.4 규모 지진의 원인에 대한 정부조사단의 발표가 20일 열릴 예정이지만,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지질학회가 주축이 된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이날 오전 10시반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지진과 지열 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조사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결과 발표회와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발표에는 정부조사연구단에 참여한 국내조사단과 해외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한다.
지난해 1월 포항 주민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포항지진 주거안정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정부조사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서울대 이강근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정부조사연구단의 구성과 활동 내용에 관한 설명에 이어 해외조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한 내용과 결론을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국내조사단의 연구와 총괄 결론 발표가 이어질 것”이라며 “외국인으로 구성된 해외조사위원회가 참여한 것은 조사단의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조사위의 판단과 발표는 독자적으로 이뤄지지만, 국내조사단과 견해가 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일 발표가 포항지진이 유발 지진으로 결론날 경우, 포항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수천억원대 규모의 소송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지진으로 결론이 나면, 포항은 ‘지진 도시’로 낙인찍히면서, ‘정부가 지진 책임을 회피한다’는 포항시민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20일에는 포항시장과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포항시민 200여 명이 전세버스를 이용해 상경, 발표장을 채울 예정이다.
2017년 11월 포항지진 발생 직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 지열발전소 건설현장. 규모 5.4 강진의 원인으로 포항지열발전소가 거론되고 있다. [중앙포토]

양만재 포항지진 시민대표자문위원은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을 떠나서 지열발전 실험을 앞두고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라며 “만약 지진과 발전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다면 포항시민들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지진’이라는 의견과, 자연 발생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첨예한 대립을 이뤄왔다. 유발지진론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간기업에 의뢰해 진행한‘MW(메가와트)급 지열 발전 상용화 기술개발’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지진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포항 지열발전은 섭씨 최고 170도에 이르는 포항 흥해읍 지하 4㎞ 아래의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자는 것이다. 땅 속 깊은 곳의 열을 끌어내기 위해 초고압의 물을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불안한 지층을 건드려 지진을 유발했다는 논리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유발 지진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그는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한 ‘2017년 포항지진의 유발지진 여부 조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포항 지진이 지열 발전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당시 근거로 ▶발전소의 물 주입 시점과 지진발생이 일치했고 ▶지진의 진앙이 물 주입지점 근처로 몰려있으며 ▶진원의 깊이가 일반적 자연지진보다 얕고, 물 주입 깊이와 일치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물 주입점 근처에 단층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은 논문을 통해서 “굳이 지열발전을 논하지 않더라도 포항지진은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며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한반도의 단층대들이 약해진데다, 2016년 9월 경주지진까지 어어지면서 포항지진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2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40여 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중앙포토]

포항 지진은 경주 지진에 이어 1978년 본격적인 지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다. 또한, 역대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다.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포항지진으로 인한 시설물 피해 총 2만7317건이며, 피해액은 551억원으로 집계했지만,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총 피해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양만재 포항지진 시민대표자문위원은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 외에도 부동산 가격 하락과 정신적 충격 등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며 “1000명이 넘는 이재민 중 일부는 아직도 시에서 마련해준 대피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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