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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자들 "우리는 부끄럽습니다"

박서연 기자 입력 2019.03.19. 22:22

5개월 분석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 기자들 “기업 기사에 내부 견제 심해져”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경향신문 기자들이 자사 경제부 기획기사가 무산됐다며 대자보를 통해 경영진과 편집국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들은 지난 18일 “우리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경제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 사건의 핵심은 편집국장이 정부, 대기업과의 관계를 신경쓰다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대자보에서 “편집국장은 지난 14일 독실위에서조차 후배 기자들의 문제 제기에 ‘팩트가 아니다. 짜깁기다’라고 했지만 전·현직 경제부장들의 증언이 공개되자 광고주인 대기업들, 정부의 경제 살리기 기초 등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구체적 외압이 있기 전 우려만으로 국장이 먼저 기사검열을 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라고 지적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그래픽=이우림 기자.

독실위는 경향신문 기자들과 편집국장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자사 지면을 비평하는 기구로 ‘독립언론실천위원회’의 줄임말이다.

앞서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지난 11일 첫 번째 대자보를 게시했다.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3인은 지난해 말부터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사를 기획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자들이 기획한 기사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600개 기업 현황을 5개월간 취재 분석한 것이었다.

대자보에 따르면 경제부장은 편집회의 후 기자들에게 ‘현대차와 한화, SK 등이 한꺼번에 나오니 (편집회의에서)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은 당시 편집회의에서 ‘일감 몰아주기 이슈가 뜨겁지 않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흐름에서 공감을 사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은 기획했던 기사 중 현재까지 한 건의 기사도 출고하지 못했다.

기자들은 대자보에서 “10년 전 독립 언론 경향신문 광고는 ‘두려운 것은 오직 독자밖에 없습니다’로 끝난다. 이 명제는 경향신문 입사와 매일 반복되는 출근의 유일한 이유다. 다른 회사가 ‘다 한다’는 이유로 포럼을 시작하고 구성원 합의 없이 해마다 연다. 최근 3~4년 사이 기업에 기사 사전 정보가 새는 일이 늘고 기업 기사에 대한 내부 견제도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사의 경영권과 편집권 분리는 언론의 자유 보장을 위한 기본 원칙이다. 이동현 사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이 편집권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영진 기조가 편집국에 스며들고 있다. 현재 월급이 주는 안온함에 안주한 사이 미래는 어둡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대자보 말미에 “이것은 경향신문 안에서 미래와 현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의 전초전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최초 대자보가 게시된 뒤 편집국장은 당일 입장을 밝혔다. 이기수 편집국장은 “당시 하노이 회담을 앞둔 상태로 정신이 없었다. 구체적이지 않은 기획안 틀이었고, 앞쪽 얘기는 새롭지 않아서 초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노이 회담 둘째 날 초고를 보게 됐다. 그런데 제 생각과 멀었고 경향신문이 기획하는 원칙이나 승부 호흡과도 멀었다”라고 밝혔다.

사흘 후인 지난 14일 기자들과 편집국장은 독실위에서 청문회를 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더는 국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자들은 “독립언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생존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는 있나. 경쟁사들은 새로운 조직, 새로운 수익 기반을 실험한다. 왜 독립언론 경향신문이 기업과 정부 눈치를 보며 광고를 얻는 것 밖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곳이 됐나”라고 반문했다.

기자들은 “우리는 근본적 대안을 원한다. 편집인 회의를 투명화하고 경향신문 미래를 논의하는데 기자가 참여하고 결정 권한을 가진 혁신기구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최초 대자보와 두 번째 대자보에 경향신문 기자 77명이 참여했다. 경향신문 한 기자는 “편집국 전체인원이 200여 명인데 대자보에 이름을 올린 기자는 각 부서 데스크를 제외한 현장 취재기자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19일 이기수 편집국장에게 연락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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