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소 굴착·물 주입 → 잇단 '미소지진' → 포항지진 촉발 [포항지진 조사 결과 발표]

김기범 기자 2019. 3. 2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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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부조사연구단 “포항지진, 지열발전소 탓”
ㆍ“2016~2017년 총 96회, 자연 유발지진 아닌 ‘촉발지진’
ㆍ2016년 경주지진과는 거리 너무 멀어 연관 가능성 낮다”

조사단에 큰절하는 위원장 2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마정화 포항지진 시민연대 위원장이 큰절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일 정부조사연구단이 지열발전소 탓이라고 결론을 내린 포항지진은 결국 정부의 무리한 사업 추진이 원인이란 점에서 ‘자연재난이 아닌 예고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열발전소에 고압의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숱한 미소지진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사업 보류나 중단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규모 5.4의 위험한 지진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이날 “지열발전을 위해 지열정을 굴착하고, 고압의 물을 주입하면서 포항지진의 단층면상에 남서 방향으로 깊어지는 미소지진이 순차적으로 발생했다”며 “그 영향이 포항지진의 진원 위치에 누적되면서 임계응력 상태에 있던 단층에서 포항지진이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조사연구단장을 맡은 서울대 이강근 교수(대한지질학회장)는 “포항지진이 일어난 단층은 곡강단층”이라고 지목하면서 자연지진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유발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내에서, ‘촉발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너머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의미에서 ‘촉발지진’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설명했다.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과 미소지진의 연관성은 상식적으로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사연구단이 이날 배포한 요약보고서에 따르면 물 주입이 이뤄진 2016년 1월부터 2017년 11월15일 포항지진(규모 5.4) 전까지 지열발전 실증부지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은 96회에 달했다.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이 대부분이었다. 2016년 1월 말 물 주입이 이뤄진 직후인 같은 해 2월에만 이 부근에서 14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또 2016년 12월15일 물 주입이 시작되자 이틀 후인 17일부터 29일까지 13일 동안 무려 33회의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7년 3~4월 사이 이뤄진 물 주입 때도 4월8일부터 30일까지 29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2017년 8월과 9월에도 물 주입이 실시되자 9월11일부터 26일까지 8회의 지진이 감지됐다.

하지만 관계당국과 발전소 운영업체인 넥스지오 등은 물 주입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의 안전불감증이 결국 국내 역대 두번째 규모의 지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조사연구단은 이번 발표 내용과 지난해 4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소의 관련성을 제기한 논문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포항지진의 진원을 정확히 결정했다는 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진원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밝히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며 “포항지진의 진원이 지열정에서 킬로미터 단위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는 지진 원인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사연구단은 2016년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조사연구단은 앞으로 포항지역에 지진이 재발할 가능성에 대해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 교수는 “포항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후 에너지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포항뿐 아니라 전 세계 지열발전소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살펴보고, (안전을 위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논문이나 토론회 등을 통해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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