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원 깔창이 필수품? 신병교육대 앞 노점상 상술
지난 18일 낮 12시 경기 화성의 51사단 신병교육대 앞. 300여명 훈련병이 입소하는 이날 신교대 앞 도로에는 노점의 ‘장’이 열렸다. 깔창, 우표와 편지지, 선크림, 손목시계 등을 사느라 예비 훈련병과 가족들이 노점 좌판 앞에 줄을 섰다.
신교대 앞은 왕복 2차선 도로다. 도로를 따라 약 200m 간격으로 3곳의 노점상이 영업 중이었다. 사단 정문 앞 노점상이 가운데 위치를 차지했고, 앞뒤로 다른 2개 노점상이 좌판을 깔았다. 역시 사단 정문 앞이 가장 목이 좋았다. 첫 노점상에서 미처 멈추지 못한 차량은 다음 노점상에선 차를 세웠다. 사단 앞 노점상 인근에 차량 5대 정도를 세울 공간이 있는 것도 이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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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훈련소에서 없으면 후회할 물건”이라지만, 군 관계자 “정작 쓸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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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만 못 챙길까 봐”…마음 약한 가족들
“훈련소에서 필수품”이라는 상인의 외침에 훈련병 가족들은 지갑을 열었지만 깜짝 놀라곤 했다. 가격 때문이었다. 상인은 인기 품목인 손목시계에 3만5000원, 깔창에 1만5000원, 물집방지패드세트·무릎보호대·선크림에 각 1만원, 편지 세트에 8000원을 매겼다. 소모품인 깔창과 물집방지패드를 상인의 권유대로 각각 2개, 5개 세트로 사게 되면 지불할 금액은 12~15만원에 달했다.
거래는 오로지 현금으로만 이뤄졌다. 현금이 부족했던 훈련병 가족은 급히 차를 돌려 인근 ATM 기기에서 돈을 인출해오기도 했다. 외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이순미(여·52)는 “내 아들만 못 챙겨가는 거 같아 일단 남들 하는 것만큼 물건들을 샀다”며 “가격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입소식 1시간 전 해당 좌판을 지켜봤더니 50분간 약 8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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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군 마트에서는 반값도 안 되는 가격
부대 측은 노점상의 가격 폭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날 개방된 사단 정문 군 마트에서는 노점상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이들 물품을 팔고 있었다. 군 마트에서 편지봉투는 20개에 240원, 편지지는 110원이었다. 노점상이 330원 우표 10개를 포함해 편지세트를 8000원에 파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2배 이상이었다. 노점상이 1만5000원에 파는 깔창과 7000원에 파는 라이트펜(빛이 들어오는 펜)은 군 마트에서 각각 4300원과 2000원이었다. 대부분 노점상이 2~4배 더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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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날부터 부정적인 군 이미지 줄까… 군 당국의 속앓이
군 당국은 노점상이 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까 우려하고 있다. 한 현역 장성은 “부모들이 훈련 시설이 열악하다고 여겨야 불법 노점상의 장사가 잘 된다”며 “부모 입장에선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자녀를 보내게 된다”고 걱정했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이 부대 장교는 “겨울에 어떤 상인은 ‘요즘 군대는 장갑을 안 나눠준다’는 거짓말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단속 권한을 갖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없었다. 화성시 측은 “해당 신교대 앞에서 불법 노점상이 영업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며 “다음 입영 날에는 단속반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부대 관계자는 “그동안 상인들과 마찰이 우려돼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했다”며 “앞으로는 계도 현수막을 붙이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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