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TV 당장 빼라""관세 300% 매겨라"..심상찮은 혐한

강기헌 2019. 3.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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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재 한국 기업인에 물어보니
나고야 전자매장선 "한국TV 빼"
도쿄 한식당엔 젊은이 발길 끊겨
"정치·경제 분리 대응법 찾아야"
아소 다로(麻生太郞·사진)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국의 징용피해 소송에서 배상 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와 관련해 송금과 비자 발급 정지 등의 보복조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일본 정부차원에서 보복조치로 한국에 대한 송금 정지와 비자 발급 정지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PA=연합뉴스]

“한국산 제품은 당장 빼라. 왜 한국산 TV를 일본 제품 앞에 전시하느냐."

이달 초 일본 나고야의 한 가전제품 매장 안 나이 지긋한 일본인 고객이 점원에게 호통을 쳤다.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한국 기업은 법인장 주재로 대책 회의를 열었다. 박용규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이 지난 18일 전한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반(反)한국 기업 기류다. 미쓰비시그룹에 한국산 식재료를 납품하는 한국 기업인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계약 단가 등에서 한-일 갈등이 계속되면 손해를 볼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과거사 분쟁에서 시작된 외교 갈등이 일본 내 반한국 기업 정서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최근 일본 네티즌 사이에선 이런 댓글이 부쩍 늘었다.

“한국산 스마트폰 배터리는 폭파한 전례가 있다. 한국 상품을 왜 쓰는 것인가.”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을 결코 용인해서 안 된다.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 기업 자산을 압류하면서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건가.”

이달 7일 한국 에너지 기업의 일본 시장 진출을 소개한 일본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한 일본 네티즌은 구체적인 보복 관세율을 언급하면서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비판했다. 한-일 경제 협력 모델이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각종 협회와 기업 주재원에게 일본 내 반한국 기업 정서에 대해서 들어봤다. 이들은 “눈에 띄는 경제 보복 현상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일본 네티즌 등을 중심으로 한국 상품 불매 여론이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네티즌이 지난 7일 한국 기업 뉴스에 남긴 댓글 중 일부. "한국 기업에 관세 300%를 매겨야 한다"고 적었다.

박용규 지부장은 “뉴스 댓글 등을 중심으로 ‘한국 제품을 왜 사느냐’는 글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산 제품 불매로 퍼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권혁민 전국경제인연합회 도쿄 사무소장도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 중에서 신규 계약이나 신사업 분야 확장에서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며 “양국 정부의 외교 갈등이 지속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비즈니스 네트워크나 계약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경색국면이 지속할 경우 사업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부에서 부는 반한국 기업 정서는 일본 정치권이 불을 붙이면서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앞서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이나 비자 발급을 정지하는 등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자부품 회사의 일본 주재원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불화수소 수출을 금지하거나 통관을 늦출 수도 있다는 소문이 최근 주재원 사이에서 돌았다”며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들려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보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일본 주재원은 “한국 음식점이 즐비한 도쿄 신오쿠보에선 ‘2012년 한-일 갈등 때처럼 대대적인 불매운동으로 번지지 않을까’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시작된 2012년 한-일의 독도 영유권 분쟁은 일본 내에서 한국 상품 불매 운동으로 번졌다. 일본 도쿄 신오쿠보 지역에선 한국 음식점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한 에너지 기업 일본 주재원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투 트랙 원칙을 양국 정부가 깬 게 이번 경제 협력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근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는 "양국 정부가 '경제 살리기'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경 분리 원칙을 기반으로 해서 한-일 경제협력 대화 채널을 확대하면 경제 갈등 확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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