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은 최고의 파트너인데" 한일관계 냉각에 日재계 한숨

윤설영 2019. 3. 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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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일 글로벌 인프라 협력만 100건
도쿄서 만난 일본 경제계 인사
"MB 독도행 때도 경제 협력 꿋꿋
정치적 갈등에 균열 커질 수도"
주일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가 주최한 ‘한·일경제인교류의 밤’ 행사가 지난달 1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데이코쿠(帝國) 호텔에서 열렸다. 한기련에는 현재 약 280개의 한국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해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이 공통적으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난 20일 도쿄 마루노우치(丸の内)에 있는 일한(日韓)경제협회에서 만난 고레나가 가즈오(是永和夫) 전무이사가 대뜸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답은 “기술과 인재는 있고, 자원은 없다”였다.

최근 한·일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일본 재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찾아간 기자에게 고레나가 전무는 1시간에 걸쳐 열변을 토했다. 양국 경제 협력과 협회 소개에 관한 24장짜리 자료와 프레젠테이션 영상까지 띄워 설명했다. 생각지 못한 환대(?)였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최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국가”라고 열 차례도 넘게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2010년 시작한 인도네시아 LNG 개발사업이다. 일본 미쓰비시 상사와 한국가스공사가 손을 잡았고, 삼성엔지니어링이 참여했다. 2015년부터 한국·일본에 연간 200만t의 LNG를 공급하는 연료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LNG 수요가 급증하는 건 겨울, 일본에선 여름이기 때문에 1년 내내 200만t을 생산해도 수급이 맞는다. 연간 장기계약을 해야 하는 LNG선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고레나가 전무는 “지리적으로 거리도 가까운 데다 서로 약점을 보완해 주는 상대로는 한국과 일본만한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방식의 ‘제3국에서의 한·일 자원개발 인프라 사업’은 2008년 이후 100건이 넘는다. 대상국도 쿠웨이트·프랑스·터키·모로코·미얀마 등 전 세계를 커버한다. 한국과 일본이 해외시장에서 경쟁 관계가 아니라 협력을 통해 ‘윈-윈’ 효과를 내고 있다는 증거다.

일·한경제협회 활동자료. [윤설영 기자]
한·일 경제협력 사례는 기존 사고의 틀을 깨기도 한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 건설 사업은 일본 정부가 돈을 대고 한국 기업이 시공을 맡은 케이스다. 656억 엔(약 6697억원) 규모의 일본 공적개발원조(ODA)가 투입됐는데, 삼성물산이 533억 엔(약 5441억원) 규모의 시공권을 따냈다. 일본 기업들이 ‘혹한=손실’이라며 손을 내저을 때 영하 30도~40도의 추위에서 자신있게 기술력을 펼칠 수 있는 게 한국 기업이었다. 일본이 한국 기업에 손을 내민 이유였다.

하지만 탄탄했던 한·일 협력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다. 5개월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이라며 나서지 않고 있고, 일본 측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라며 버티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제품 불매운동에 송금중단 등 대항 조치까지 거론되면서 한·일 경제계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일본 기업계에선 양국 정치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장 공장·설비 투자 등 직접 투자부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의 한 경제계 인사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도 꿋꿋했던 협력 관계였지만 앞으로 갈등이 계속되면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자리를 뜨기 직전 고레나가 전무는 “비즈니스맨은 정치를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일 경제 협력이 얼마나 긴밀하게 이뤄져 왔는지 정확히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균열이 커지기 전에 정부가 지혜를 모아 주길 바랍니다.” 양국 정부가 경제계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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