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10년] 변시낭인 속출..왜?

최유찬, 한수연, 정시내 2019. 3. 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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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10년] 변시낭인 속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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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찬, 한수연, 정시내

◀ 앵커 ▶

요즘 법조계에 등장한 '낭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오.탈.자'라고 합니다.

변호사 시험을 5년 동안 다섯 번 봤는데 합격을 못 해서 더 이상 응시 기회조차 없는 로스쿨 졸업생들을 말하는데요.

자, 오늘 저희는, 10년 전,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폭넓게 제공하기 위해서 도입된 이 로스쿨이, 고시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 이유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른바 '변시낭인 오탈자'들의 이야기를 최유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건설현장 관리직으로 일하다 8년 전 로스쿨에 입학한 44살 최 모 씨.

노동법 전문 변호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다니던 중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낙방, 두 번째 시험 직후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최 모 씨/변호사시험 불합격] "눈도 실명할 수도 있고,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고. 질병이 찾아오고 장애가 생기니까 일반인들도 그렇게 힘든 시험을 똑같이 겪는다는 자체도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그렇다고 공부를 중단할 순 없었습니다.

변호사 시험 기회는 어떤 예외도 없이 5년 연속 5번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도, 시험 준비도 제대로 못 한 채 5년을 보냈습니다.

[최 모 씨/변호사시험 불합격] "(남은)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더라 고요. 결국에는 뇌병변 장애 판정까지 받게 됐습니다."

이제 최씨에게 남은 건 장애 판정과 등록금 대출금 3천여만 원.

그리고 공부를 못해서, 또는 안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는 시선을 받는 '오탈자'가 됐습니다.

[최 모 씨/변호사시험 불합격] "변호사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무능력자, 그렇게 질타받는 게 개인적으로 심적이나 육체적으로 모든 게 다 힘들었습니다."

최씨는 하루 4시간 주민센터에서 기간제로 일하며 월급 8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간호사였던 김 모 씨는 의료분쟁 전문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며 변호사 시험을 치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김 모 씨/변호사시험 불합격] "(산후)조리원에서도 공부를 했어요. 완전히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시험을 봐야 해서. 골반이 이상이 생겨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까지 된 거에요"

특히 아이가 희귀병에 걸린 뒤로는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스스로 오탈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변호사 시험을 볼 자격이 없는 지금도 아이방 한켠엔 차마 버리지 못한 수험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김 모 씨/변호사시험 불합격] "어떤 우회로도 없잖아요. 제가 사회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느낌이에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5년 안에 최대 5번만 치르게 제한된 변호사시험 응시 규정에는, 병역 외엔 출산이나 질병 등의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응시 기간과 횟수 제한은 오직 변호사 시험에만 있습니다.

MBC뉴스 최유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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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오탈자…마치 서바이벌 게임처럼 '5년 안에 다섯 번'이라는 응시제한까지 두는데도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1회 시험 합격률은 원래 '자격'이란 시험 취지에 맞게 87%가 넘었는데요.

참고로 의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늘 90%가 넘습니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시험은 계속 합격률이 떨어지면서, 급기야 작년엔 불합격자가 합격자(49%)보다 많아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교육을 통해서 졸업 후에 바로 활동이 가능한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던 로스쿨이, 이제는 변호사 시험 합격에만 매달리는 '고시학원'으로 변질되고 있는데요.

그 실태를 한수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서울의 한 로스쿨, 전공필수 과목 수업.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은 변호사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수담/로스쿨 1학년생] "제가 (학부에서) 법전공이 아닌데, 막상 입학해보니까 쉽고 재밌게 가르쳐주셔서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없고…"

하지만, 졸업을 앞둔 3학년생은 특화된 법률 지식을 깊이 배울 틈도 없이, 변호사 시험공부에 전전긍긍입니다.

[황현정/로스쿨 3학년생] "(입학 전엔) 심화된 지식을 다양하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일단 변호사가 되는 게 급선무니까. 시험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점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로스쿨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사실상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되다 보니, 변호사 시험 과목과 관련 없는 수업은 폐강되거나,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양필구/로스쿨 3학년생] "인권쪽 수업은 수업을 듣는 사람 3명이 없어서 폐강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25개 로스쿨이 다 완벽하게 똑같은 고시학원화가 됐죠."

사설 학원의 인기 인터넷 강의를 구매해 수업시간에 틀어주는 곳도 있습니다.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아예 신입생 선발 때부터 명문대 출신이나 시험에 강한 20대 위주로 뽑는 경향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25개 로스쿨 신입생은 28세 이하가 71%, 31세 이하로 치면 86%로 사회 경험이 없거나 적은,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출신 입학생 비율은 40%를 넘습니다.

[한상희/건국대 로스쿨 교수] "유치원에서부터 로스쿨 입학할 때까지 중단없이 계속 공부만 한 학생,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재목이 입학하는 것을 원하는 건 사실이죠."

여기에 한 학기 등록금만 많게는 1천만 원까지 들어, 20대 금수저들의 돈스쿨, 법조 스카이캐슬이란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A씨/로스쿨 입학 거부] "거액의 학비가 들잖아요. 그게 진입장벽으로 작용을 하잖아요. (게다가)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를 가지고 법조인이 되는 기회를 차등적으로 차별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가 과연 평등한 제도인지…"

급기야 이번 주 25개 로스쿨 대학원장들이 "변호사 시험 때문에 로스쿨이 파행이다,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당초 취지는 불가능하다"고 한탄하는 성명까지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MBC뉴스 한수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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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10년 전 로스쿨 도입 취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를 최대한 많이 배출하겠다는 거였는데, 보신대로 로스쿨은 망가지고, 변시낭인들이 대거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럼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도대체 누가, 왜 낮추고 있는지 정시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법조인을 늘리자'

10년 전 로스쿨이 도입 된 주요 이유였습니다.

[김영철/로스쿨 비대위 대표 (지난 2007년)] "개업 변호사 사무실이 한 군데도 없는 곳이 전국에 시군구가 2백 개 이상 됩니다."

[김신일/교육부총리 (지난 2008년)] "다양한 지역적, 사회적 배경을 갖는 법조인이 고르게 배출됨으로써 법률서비스 확대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건 합격자 수를 매년 1,500명 안팎으로 정해놨기 때문입니다.

[박기태/변호사] "합격률에 대한 정상화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합격자 수는 현직 법조인들이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시험관리위원회가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의견을 듣고 정합니다.

그런데 대한변협은 변호사를 더 이상 늘려선 안된다는 게 공식 입장입니다.

[허 윤/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지금 현재 법조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거든요. 배출되는 변호사 수만 늘려놓은 상황에서 유사직역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 시장이 공멸로 가는 그런 상황이라고…"

유사직역 정비란 세무사, 법무사 등을 줄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 1천 명당 변호사는 0.03명.

미국(0.4명)이나 영국(0.22명), 독일(0.2명)에 비하면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방송통신대에 로스쿨을 도입해 로스쿨의 문턱을 낮추자는 법안도 발의돼 있습니다.

이런 온라인 로스쿨이나 야간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70%에 달합니다.

그러나 법조계의 반대에 막혀 논의는 시작도 못 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정시내입니다.

최유찬, 한수연, 정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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