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어여 이리 와서 앉아."
백발 할아버지는 더딘 걸음을 바삐 옮겼다. 덜컹대던 만원 지하철 안이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또 헤치고. 그렇게 발길이 닿은 곳엔 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선 비틀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부리나케 이끌었다. 여러 좌석 중 가운데쯤, 비어 있던 자리 앞으로 오더니 앉으라고 손짓했다. 마스크에 머플러까지 두른 할머니는 털썩 앉았다. 지친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체구에 비해 큰 배낭까지 멘 할아버지는 그 앞에 우뚝 섰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엔 안도감이 묻어났다. 잠시 뒤 한 자리가 더 생겼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곤,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 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운이 남았다. 백년해로(百年偕老)란, 부부의 연(緣)이란 이런 것인가 했다.
그게 올 겨울 출근하던 길이었다. 집에서 회사가 있는 광화문까진 50분 남짓. 원래 이 시간 길동무는 '스마트폰'이었다. 일단 출근길 분노(왠지 그런 느낌)와 어울리는, 거친 랩(rap)이나 락(rock)을 튼 뒤 이어폰을 꽂는다. 그리고 대뇌를 비우고 동공을 한껏 이완시킨 뒤, 4.7인치 직사각형 화면을 응시한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뉴스를 보고, 웹툰을 보고, 동영상을 보고. 문득 둘러보면,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었다. 고개는 약 45도 아래로 숙인 채 눈길이 묶인 직장인들 모습. 마치 거울을 보는듯 했다.
그날은 달랐다. 스마트폰을 안 보고 있었다, 조금 피로해서. 그러니 새삼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 왔었다. 정(情)스런 노부부도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본 것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에 꽤 매여 있었구나' 하고. 스마트폰 사용 기록(1월 첫째주 기준)을 보니, 일주일에 25시간36분이나 됐다. 하루 3시간39분, 화면을 깨운 건 100여번 이상. 이렇게 많이 썼었나 싶었다.
이젠 필수품이 됐으니, 안 쓸 수는 없는 노릇.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연락과 소식과 정보가 스마트폰을 통해 오가니까.
다만 눈이 스마트폰에 묶여 있는 동안, 놓친 것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서 눈을 좀 떼어보기로 했다. 꼭 필요할 때만 쓰고(취재·연락·음악·사진촬영), 시선을 좀 자유롭게 풀어 두기로.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두 달간 그렇게 했다. 3월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간은 더 집중했다. 그리고 보게된 것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미세먼지 취재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과천까지 가야 했다. 지하철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바삐 움직이는 인파 속에 유독 느리게 움직이는 이를 봤다. 할머니였다. 그는 캐리어 형태로 된 하늘색 가방을 들고, 한 걸음씩 싸우고 있었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몸을 먼저 올리고, 그 다음 가방을 두 손으로 잡고, 또 다시 올리고. 힘겹게 그걸 반복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회사 로비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그런데 대부분 이미 1층에 와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 탈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지각을 해서 마음이 급할 땐 매우 도움이 됐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다, 문득 의아하기도 했다. 누군가 타고 위로 올라가면, 그 층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왜 다시 1층에 돌아와 있는 것인지. 미스터리했다.
저녁 7시, 바람이 꽤 불었던 지하철 역사 앞. 에스컬레이터를 탄 이들이 출구로 속속 빠져 나갔다. 하루를 버틴 이들의 발걸음은 빨랐다. 그와 거꾸로 마주선 여성은 전단지를 하나씩 건넸다. 40대 초반쯤 됐을까. 전단지를 한움큼 쥐고, 다 나눠주면 바닥에 놓인 가방서 다시 꺼냈다. 귀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몇몇은 못 봤고, 또 몇몇은 보고도 스쳐 지나갔다. 10분 동안 지켜보니, 10명이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그 사이 그는 때때로 발을 동동 굴렀다. 추위를 잊으려는듯. 손에 쥔 전단지들을 놓쳐, 바닥에 흩뿌려지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쭈그리고 앉아 한 장 한 장 주웠다. 하나라도 사라질까 싶어 둘러보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전단지를 건넸다가, 사람들이 주머니서 손도 빼지 않았을 땐 괜시리 이어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가가 전단지 한 장을 달라고 했다. 평소엔 한 손으로 받았지만, 그날은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광화문역 기다란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너머. 평소 잘 안 봤던 이 곳엔 아이들 사진이 잇따라 붙어 있었다. 실종된 아동들이었다. 이름과 실종된 날짜, 장소가 적혀 있었다. 제보는 112로 달란 얘기까지. 많아야 네댓살쯤 됐을까, 하나 같이 앳된 모습이었다. 잃어버린 지 25년이나 된 아이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1분 남짓, 애끓는 부모 마음이 전해졌다. 잠깐이라도, 누구라도 봐줬으면 했는지 같은 사진이 3장씩 붙어 있었다. 다음은 그 찰나에 봤던 아동들 인적 사항이다.
이달 내내, 승리와 정준영 사태가 이슈를 뒤덮었다. 연일 팀원들과 대응하다 보니 피로감(感)이 쌓였었다.
무거운 몸으로 퇴근하던 길, 광화문역 내에서 장애인들을 봤다. 2012년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며 광화문 농성을 시작했었다. 1842일 동안 싸운 끝에 올 7월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겨우 약속을 이끌었는데, 왜 또 거리로 나왔을까. 활동가에게 서명을 해주며 물으니, "관련 예산이 미미해 실질 지원 체계가 없다"고 했다. 31년 만에 논의된 장애등급제 폐지가 실효성이 떨어진단 얘기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려 검색하니, 기사 수가 무척 적었다. 반면 승리·정준영 이슈엔 모든 매체가 달라 붙어 쓰는데 말이다. 이 사안이 그보다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기자(記者)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인지.
날이 슬슬 풀리던 3월 초. 아파트 단지서 갈색 길냥이 한 마리를 봤다. 사뿐사뿐 걷다가, 잔디밭으로 껑충. 그 길로 잽싸게 사라졌다. 길냥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어쩐지 낯익어 기억을 더듬었다. 누군지 기억이 났다. 지난해 9월 말 추석 연휴 때였다. 아내와 산책하다가 이 녀석을 만났다. 꼬물꼬물한, 새끼 3마리도 함께 있었다. 갓 태어난 듯 보여 걱정이 됐다.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싶어서.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 간식캔을 하나 샀다. 다시 돌아와 조용히 놓아주려 했다.
그러자 어미가 재빨리 다가왔다, 새끼 3마리를 등진 채. 녀석은 '크아앙' 하면서 하악질을 했다. 다가오지 말란 의미였다. 두려웠을텐데도 털끝을 쭈뼛 세우며 맞서는 모성에 울컥했다. 자극하지 않으려, 간식캔을 따서 멀찌감치 놔뒀다. 경계하던 어미는 천천히 다가왔다. 배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었다. 새끼 3마리도 사이 좋게 나눠 먹었다. 보기만 해도 배불렀던 기억이 난다.
겨울을 잘 이겨달라 바랐었는데, 봄까지 잘 견뎌줘서 고마웠다.
향수를 팔기 위해 자그마한 판매대서 꼬박 서서 일하던 한 여직원. 하나라도 더 팔려고, 지나가던 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한 켠엔 목 피로를 달래줄 보온 물통이 있었다. 그리고 초코바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픈 다리를 수차례 두드리던 그는, 출출했는지 초코바를 집었다. '먹으려나 보다' 생각하는 순간, 옆 판매대 직원에게 다가가더니, 초코바 반쪽을 쪼개서 줬다(한 입 크기였는데). "이거 먹으면서 해"라고 말을 건네면서.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서로의 힘듦을 가장 잘 알았을테니. 보는 것만으로 피로가 가셨다.
집에서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거두자 새삼 익숙했던 것들에 시선이 닿았다.
침실을 두리번거렸다. 문득 아내가 쓰는 화장대 위 거울을 봤다. 주말에 청소했건만, 먼지가 그새 소복이 쌓여 있었다. 유리 세정제와 마른 천을 가져와 뽀득뽀득 깨끗하게 닦았다. 예쁜 얼굴 선명하게 맑게 보라고(오글 죄송).
리필해서 쓰는 구강청결제 통도, 다 써서 텅 비어 있었다. 아내 몰래 다시 채워 놓았다. 퇴근한 아내가 "혹시 이거 채워 놓았어?"하고 물었다. "그렇다"며 씨익 웃었다.
3년 전쯤 생일 선물로 사줬던 아내 가방도 유심히 봤다. 가죽 손잡이 안쪽, 중간 즈음이 끊어져 있었다. 그새 꽤 낡았길래 "하나 사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직 한참 쓴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피로를 풀어준다고 잡았던 발뒤꿈치. 건조해서 조금씩 갈라지는 게 보였다. '풋크림'이 필요한 계절이 됐다.
이 녀석은 대체 뭘 좋아할까 싶어 공부를 했다. 햇빛을 좋아한다고 해서, 창가 쪽으로 자릴 옮겼다. 미세먼지 압박이 심했지만, 환기도 자주 시켜줬다. 통풍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매일 들여다 봤다. 죽지 않길 바라면서.
정성이 닿은 덕분인지, 다행히 건강해졌다. 맨 위쪽에 마주보고 붙어 있던 이파리 하나가 펴지길 기다렸다. 퇴근하고 온 어느 날, 활짝 펴져 있었다. "이젠 살았구나" 싶어 안도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는 연습을 한 지 두 달이 됐다. 1월 중순과 3월 중순, 두 시기의 스크린타임을 비교해봤다. 스마트폰 화면을 본 시간이 65% 줄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지런히 만지작거린다. 하루 2시간 정도는 스마트폰에 시선이 매여 있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불필요하게 보진 않으려 한다.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지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대신 그동안 본 것들. 어떻게 보면 참 소소하고 별 게 아녔다. 혹자는 그까짓 게 뭐냐 반문할 수 있다. 혹은 안 봐도 상관 없는 것들이라 여길 수 있다. 그 시간에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더 보는 게 낫다고 할 수도 있다. 짜투리 시간에 게임 한 판 하거나, SNS를 둘러보는 게 더 재밌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다 맞는 얘기다. 그게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니 한결 자유로워졌다. 묘한 해방감도 느꼈다.
그리고 무채색이던 삶이 유채색으로 칠해졌달까. 소감(所感)을 요약하면 그랬다. 익숙했던 일상인데 그런 낯선 기분이었다.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신 너머 무한한 세계가 아닌, 지근거리 이야기들이. 사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그랬다. 시선이 가니 궁금해졌고 '그게 뭘까, 또 왜 그럴까' 짐작하게 됐다. 지독하게 무심(無心)했던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좀 더 두리번거리고 발길이 머물게 됐다. 그렇게 마음이 자연스레 갔다.
그러니 동떨어져 있고 단절됐던 것들이 서로 이어지는 듯 했다. 아주머니 둘이 깔깔거리는 이야길 듣다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비오는 날 환경 미화원 아저씨가 비를 맞으며 쓰레기더미를 옮기는 모습에 속상해졌다. 퇴근길, 상사 전화에 연신 "죄송하다"며 한숨 쉬는 직장인을 보면 고달팠고, 가게 앞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추위에 떠는 강아지 모습에 맘이 아팠다. 별 것 아닌 것들이 특별해졌다. 지루했던 풍경도 다채로워졌다. 머물고픈 일상이 됐다.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에필로그(epilogue). 시선, 그리고 관심에 대한 단상(斷想).
20대 땐 오지랖이 참 넓었다. 언젠가 사람도 살렸었다. 50대 정도 돼 보이는 술 취한 아저씨였다. 에스컬레이터서 뒤로 자빠지는 걸, 뛰어 올라가 가까스로 등을 막았다. 차도로 자꾸 나가려는 걸 또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욕설을 했다. 발길질도 했다. 경찰에 신고한 뒤 가까스로 제압해뒀다. 10분 남짓한 시간이 지옥이었다. 그도 누군가 아버지일 거란 맘으로 참았다. 그 땐 그리 주위에 관심이 많았다. 그게 맞다고 여겼다.
30대에 접어들며 세상에 더 무심해졌다. 괜한 관심은 손해란 생각도 했다. 실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살기 더 팍팍해지고, 스스로를 지탱하는 것도 고단해졌다. 홀로 지내는 게 편해지고, 혼자 즐길 것도 많아졌다. 그렇게 조금씩 눈길을 거두게 됐다. 홀가분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좀 외로워진듯도 싶다. 홀로 씩씩하게 지내다가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니까.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삶의 섭리니 말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시선(視線)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 어느 한 곳도 빈 틈 없이, 그리 촘촘히 메워지다보면 어떨까. 그러면 맘이 좀 더 가지 않을까.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물론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볼 순 없어도, 옆 사람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어느 힘든 날, 날 봐주는 이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말 많고 시끄럽고 징글징글하고 외면하고 싶어도, 결국은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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