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세계 '最古' 일본기업, 뿌리는 '백제'

2019. 3. 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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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건축 전문 '곤고구미'의 1천441년 역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어에 '구다라나이'(下らない)라는 단어가 있다. 하찮거나 시시하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한반도 삼국시대의 한축을 이루던 '백제'다. 백제를 일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구다라(くだら)라고 부르는데, '구다라나이'는 결국 '백제답지 않다'는 뜻인 셈이다.

'백제답지 않은 것'이 하찮다는 뜻으로 발전할 정도로 일본 사람들이 백제를 높게 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백제인의 기여가 컸던 것이다.

이는 여러 분야에서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건축이다.

일본의 고도(古都) 오사카 중부 사카이(堺)시에는 불교사찰과 신사(神社)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곤고구미(金鋼組) 간사이(關西) 가공센터가 있다.

가공센터는 실제 건물에 들어갈 부자재들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곳이다.

곤고구미는 기네스북에도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기업으로 등재될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이 회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등장한 주식회사 제도가 없던 서기 578년 창업해 업력으로 따지면 1천441년의 생명을 이어왔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기업인 셈이다.

그런데 이 회사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 바로 백제인이었다.

기자가 지난 19일 이 회사 간사이 가공센터를 찾아가 도네 겐이치(刀根健一) 사장과 기우치 시게오(木內繁男) 대목장(大木匠)을 만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비결을 들었다.

창건 당시의 시텐노지(四天王寺) 모형 [출처:일본 위키백과]

◇ 쇼토쿠 태자 "최고 사찰 지어주세요"

일본 스이코(推古) 일왕(天皇·덴노) 치세에 섭정(攝政)을 맡아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 쇼토쿠(聖徳) 태자(574~622)다.

쇼토쿠 태자는 중국과 백제에서 선진 문물과 제도를 수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는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었는데 당시 일본에는 그럴 만한 기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빙한 것이 백제의 장인 3명이었다.

(오사카=연합뉴스) 도네 겐이치(刀根健一) 곤고구미 사장은 시텐노지 창건을 위해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은 3명이라며 그 이름을 적어줬다.

도네 사장은 백제에서 모셔온 기술자(工匠) 3명의 이름이 곤고(金剛, 이하 일본식 발음), 하야미(早水), 미치(永路)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힘으로 탄생한 것이 오사카의 대표적인 사찰인 시텐노지(四天王寺)다.

593년 완공된 이 절은 남문, 중문, 5층탑, 금당(金堂·본당), 강당(講堂·법당)을 남북 방향 일직선으로 배치하는 '시텐노지 양식'의 뿌리가 됐다.

시텐노지가 지어진 뒤 곤고는 초대 당주(當主)가 되어 사찰을 관리하고 수리하는 일을 맡아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온 곤고구미 창립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오늘날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한국식 이름은 유중광(重光)으로 전해진다.

충남 부여군은 2010 세계대백제전 때 곤고의 39대손인 곤고 도시타카 씨를 초청해 백제혼 선양에 기여한 업적으로 명예 군민증을 주기도 했다.

◇ 장인 기술 대대로 이어진 비결은

(오사카=연합뉴스) 사찰·신사 건축 전문업체인 곤고구미의 간사이 가공센터 전경. 이곳에서 원목을 가공해 건축 현장으로 가져간다.

현재 오사카 본사와 8개 영업소·지점, 간사이·간토 가공센터 4곳에 총 직원 100명 규모의 작은 회사인 곤고구미를 실제로 떠받쳐온 것은 신사, 절, 궁전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 미야다이쿠(宮大工)다.

현재 곤고구미에 전속된 미야다이쿠 집단은 간사이 지역 6개조 70명, 간토 지역 2개조 40명 등 총 110명이라고 한다.

(오사카=연합뉴스) 기우치 시게오 대목장이 못이나 망치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5층탑 제작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51년 경력의 목수다.

이들은 각 조장의 지휘하에 서로 경쟁하면서 건축 기술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못이나 망치를 전혀 쓰지 않는 공법은 이런 과정을 거쳐 축적된 기술이라고 한다.

조장은 실력이 가장 뛰어난 미야다이쿠 가운데 선발하는데, 통상 40년 이상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맡는다.

조원들은 현장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실물 도면을 바탕으로 수많은 연습을 반복한다.

실물 도면 책임자는 최저 3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오사카=연합뉴스) 도네 겐이치 곤고구미 사장이 종이 도면을 들고서 실물도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실물 도면은 베니어합판이 깔린 바닥에 실물 크기로 그려진다.

초대 당주인 곤고 시게미쓰가 완성한 시텐노지는 1990년까지 천재(天災)와 전화(戰禍)로 7차례나 소실됐다.

그때마다 이전 모습을 되찾은 배경에는 1천400여년 동안 선대 미야다이쿠들이 연마해 후배들에게 빠짐없이 전수한 기술이 있었다고 기우치 조를 이끄는 기우치 대목장은 말한다.

51년째 목수 일을 해온 기우치 대목장은 미야다이쿠 사이에는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금언(金言)이 있다고 했다.

보이는 곳은 정성스레, 보이지 않는 곳은 더 정성스레 손길을 준다는 것이다.

건축물을 짓거나 탑 같은 구조물을 만들 때 보이는 곳을 정성껏 마무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선 한층 더 정성을 담아 작업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 最古 기업에도 위기…"극복해 나가야죠"

일본은 신사와 절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신사와 사찰이 많다. 현재 전국에 편의점 수의 3배 정도인 16만 5천개의 신사와 절이 있다고 한다.

이는 곤고구미 같은 회사 입장에선 새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개보수 쪽의 사업 영역이 커지는 업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의미다.

또 '겐치쿠바나레'(建築離れ)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일본에서도 젊은 인력의 건축일 기피 현상이 나타나 유능한 기술자 확보가 숙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곤고구미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미야다이쿠가 없는 일반 건축업체들도 곤고구미가 전문으로 해온 사업 영역에 뛰어들면서 급기야 2005년께 도산 위기에 처했다.

그때 구세주가 된 것이 오사카 향토기업 다카마쓰(高松)건설이다.

이 회사는 "전통을 한번 파괴하면 두 번 다시 되살릴 수 없다. 국보급 기술을 가진 걸 알면서 파산시키는 것은 오사카 지역 동종업자로서 수치다"라며 지원에 나섰다.

그 덕분에 곤고구미는 2006년 다카마쓰건설그룹의 자회사가 되어 1천400여년간의 전통·기술·장인정신을 그대로 품은 채 연간 매출 40억엔(약 400억원)을 올리는 지구촌 최고(最古) 업체로 존속하게 됐다.

도네 사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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