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문 닫는 현대차 '중국 1호' 공장엔 안 팔린 차만 가득

2019. 3.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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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감원으로 이미 2천∼2천500명 회사 떠나"
4월말·5월초 공장 폐쇄 소식 주변에 널리 퍼져
생존 위기 협력업체도 다른 납품처 찾거나 중국 철수 검토
신차가 줄지어서 있는 베이징현대 베이징 1공장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김윤구 김진방 특파원 = "(다른 공장으로) 가요. 갈 수밖에 없죠. 안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베이징현대차 1공장에 다니는 직원 자오(趙)씨는 출근길에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공장이 한달 쯤 뒤에 문을 닫는다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회사가 배치하는 대로 2공장이나 3공장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오전 7시께 중국 베이징 동북쪽의 외곽 지역인 순이(順義)구에 있는 베이징현대차 1공장을 찾았다.

8시 조업 시작을 앞두고 회사 점퍼를 입은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공장은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현지 업체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2002년 말부터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한 '중국 1호 공장'으로 상징성이 크다. 연간 생산능력은 30만대에 이른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된 판매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곧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자오씨는 일자리를 걱정하느냐는 말에 "별일 없을 것"이라면서 "왜냐면 이미 춘제(중국의 설) 전에 2천명 넘게 감원이 있었다. 2천∼2천500명 정도가 이미 회사를 떠났다고 다들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1공장에 700명이 남아있는데 5월이 되면 2공장으로 300명, 3공장으로 400명이 간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회사 측이 생산하던 것을 마무리하는 대로 1공장의 문을 닫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다른 직원도 "5월에 생산을 중단한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회사가 아직 통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상황을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위에서 아무런 통지를 안 하니 밑에 있는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베이징 1∼3공장의 인력 감축에 이어 1공장의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직원들은 2·3공장으로 배치될 것이라면서도 공장 가동 중단과 매각 등 조치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회사의 함구령이 있었는지 이날 만난 많은 직원들은 "잘 모른다"면서 답변을 애써 피했다.

베이징 1공장 안에 출고 전의 신차가 세워져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공장 정문의 경비원은 기자가 출근길 풍경을 촬영하자 손짓으로 이를 제지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공장 주변에서 아침 요깃거리를 파는 사람이나 환경미화원도 4월 말이나 5월 초에는 문을 닫는다고 전할 정도로 공장 폐쇄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인근 식당 주인은 감원으로 이미 매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공장이 완전히 폐쇄되면 매출에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이전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사전에 1공장 내부 취재를 요청했을 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거부했다.

주변 건물에 올라가 보니 회사 측이 공장 내부 공개에 난색을 보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장의 일부만 시야에 들어왔는데도 팔리지 않은 신차 수백 대가 건물 사이의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이날 찾은 현대차 매장도 오전 시간이기는 했지만, 손님이 전혀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 매장은 판매 부진 탓에 큰 폭의 할인을 하고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영업사원은 투싼 SUV에 관해 묻자 "전에는 가격이 20만위안(약 3천4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6만위안으로 많이 싸졌다"면서 다만 전체 자동차 시장이 불황이라 현대차뿐만 아니라 폴크스바겐 등 업종 전반적으로 가격 인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쏘나타 차량에 대해 문의했을 때는 새 모델이 출시될 때까지는 팔지 않는다면서 신차가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에서 공장을 잇달아 지으면서 생산능력을 연간 270만대까지 늘렸지만, 판매 부진 때문에 지난해 생산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베이징 1공장이 폐쇄 수순을 밟자 베이징 순이와 핑구에 위치한 2차, 3차 부품 협력업체들 또한 울상이다.

베이징현대차는 중국 시장 판매가 반 토막 나면서 지난 1월과 2월에 사실상 1공장의 가동을 중지하다시피 했다.

부품 협력업체들은 지난 두 달여 간 납품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1일 베이징현대 1공장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베이징현대차에 차량 마감재를 납품하는 3차 협력사인 A사의 사장은 "현대차 부진으로 돈이 바닥나면서 부품 업체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4월 들어가면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베이징현대차의 '가격 후려치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베이징현대차의 경우 (현대차의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가 사실상 재무를 맡아 부품 업체들에 돈을 제대로 안 주면서 가격을 깎는 수법을 쓰고 있다"면서 "베이징현대차가 부품 협력사들에도 인심을 잃었다"고 성토했다.

문제는 베이징현대차의 부품 협력사들은 적자를 보더라도 직원과 시설 때문에 계속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베이징현대차와 계속 거래해온 B사 관계자는 "베이징현대차가 신차를 출시하면 그때 돈을 좀 받았다가 이후 가격 후려치기에 당해 사실상 손해 보면서 공장을 돌리고 있다"면서 베이징현대차 5공장이 있는 충칭(重慶)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현대차 협력사들은 현대차가 중국에서 외면받게 된 것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 때문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A사 사장은 "사드는 베이징현대차가 판매 부진에 대해 내세우는 방패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과거 실적에 안주해 새로운 마케팅, 생산 계획, 판매 전략 등에서 모두 기회를 놓치면서 이런 막다른 골목까지 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폴크스바겐이나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시장에서 소형차와 더불어 중형·대형차를 판매하며 브랜드 이미지와 수익을 늘려왔으나, 베이징현대차는 소형차 위주로 판매 대수에만 치중하다가 중국차에게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는 설명이다.

B사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서 베이징현대차가 직접 만들어 판다는 중형차는 소나타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싼 돈을 주고 한국에서 직접 수입해 팔고 있는데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이 되겠느냐"면서 "그저 몇 대를 팔았다고 본사에 보고하는 데 급급해 소형차만 찍어내다 보니 경쟁력과 수익성이 다 바닥이 났다"고 말했다.

또한, 베이징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SUV 차량 투입을 주저하다가 저렴한 가격의 중국 업체들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중국 토종 업체들의 차량은 가격이 많이 싸고 품질이나 안전도 등은 대폭 개선됐다.

베이징현대 매장에 싼타페(오른쪽), 투싼 등이 전시돼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문제는 베이징현대차의 쇠락이 베이징 1∼3공장뿐만 아니라 허베이성 창저우의 4공장, 충칭의 5공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화 시설을 갖춘 베이징 현대차 창저우 공장도 월 1만여대도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충칭 공장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사 사장은 "결국 베이징현대차에만 의존했던 우리 협력업체들은 손해를 보면서 계속 납품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중국 자동차 업체에 납품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중국 로컬 업체들과 경쟁이 만만치 않아 사면초가 상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대차가 아닌 다른 업체와도 거래하려고 중국 회사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일부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에서도 거래처를 다양화하라는 주문이 있었으며 현대차의 납품 단가 인하를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자동차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들 사이에서 중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기아차 역시 가동률이 낮은 장쑤성 옌청의 1공장의 가동을 멈출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현대차의 "과잉투자"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창저우 4공장에 이어 2015년 6월 충칭 5공장을 착공했을 때는 이미 중국에서 토종 업체에 추월당하기 시작해 판매 감소 쇼크를 겪던 상황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이 침체한 상황이라면서 포드와 푸조시트로엥, 현대차가 특히 중국에서 너무 급속히 생산량을 늘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독일·일본 업체와 중국 업체 사이에서 '넛크래커(호두까기 기계)'에 끼인 신세"라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친환경차 의무 생산 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현대차의 어려움을 가중한다고 이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가 커지고 있는데 현대차는 이 분야에서 뒤져있다고 설명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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