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착금이 나오자 아버지가 생겼다

입력 2019.03.2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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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② 자립정착금 500만원 ‘자립’에 못 쓰는 이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만 18세 아동양육시설·그룹홈·위탁가정 보호가 종료될 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퇴소생에게 ‘자립정착금’을 준다. 2005년 자립정착금 사업이 지방이양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지자체 재정 형편에 따라 100만~500만원이 지급된다. 아동발달지원계좌(CDA·디딤씨앗통장) 후원금도 쥐여준다. 후원자가 요보호아동 후원계좌에 월 최대 4만원을 입금하면 지자체가 일대일로 매칭해(4만원+4만원) 매달 적립해주는 자산 형성 프로그램이다. 후원자가 많은 대도시 아동양육시설에서 보호받던 아이들은 두 가지 지원금을 합쳐 현금 1천만원 이상을 손에 들고 자립한다. 정착지원금은 지자체 예산 상황에 따라 수령 금액과 시기에 편차가 큰 탓에 중앙정부 사업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스포츠토토로, 성형으로

중앙 환원과 별개로 ‘사용내역’ 논란도 있다. 이 돈을 아끼고 불려 주거비와 학비 등 ‘자립’에 요긴하게 쓰는 보호 종료 청소년이 있는 반면, 유흥·게임·성형수술·반려동물 비용 등으로 ‘탕진’하는 사례도 많은 탓이다. 사실 아동자립지원단이 지난 1월 공개한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를 보면 ‘통계’로 드러나는 자립지원금 사용내역은 양호하다. 전·월세 보증금과 월세로 지출한 경우가 49.4%로 가장 높았고, 생활비 39.3%, 가전제품과 가구집기 구입비 26.5%, 대학 등록금과 교재비 25.4%, 옷·신발 구입비 25.3%, 관리비 20.4% 순이었다.

하지만 아동양육시설 자립생과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상’은 통계와 좀 차이가 있다. 2월 자립한 김규석(가명)군은 “남학생 마흔네댓 명, 여학생 마흔두세 명이 퇴소했는데 벌써 그 돈을 다 쓴 친구가 많다”고 전했다. 김정우(24·가명)씨는 “나랑 같이 자립한 친구 중 한 명은 스포츠토토로 600만원을 화끈하게 날려버렸다. 자립정착금으로 성형하는 여자애도 많은데, 눈·코·입 셋 중 하나는 한다. 경제관념이 없으니 정말 돈을 펑펑 쓴다”고 전했다.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한 퇴소 선배들과 전문가들은, 시설 자립생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귀한 돈을 그렇게밖에 못 쓰는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특수한 배경을 이해한 뒤 정부가 더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요셉(26)씨는 1년 전 사회적기업 브라더스 키퍼에 취직했다. 요즘은 새벽일이며 야근이며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런 이씨에게도 자립 초기 실패담이 있다. 시설에 살 때, 고교생 이씨의 한 달 용돈은 2만원이었다. 2년제 대학에 입학하면서 바로 퇴소했는데, 자립정착금과 CDA를 합쳐 1200만원을 받아 나왔다. ‘금융관념’이 전무한 상태에서 ‘선물’ 같은 큰돈을 받아들자 시설에서 억눌러온 ‘소비 본능’이 폭발했다. 이씨는 그 돈으로 게임 아이템을 원없이 질렀다. ‘나 없는 애 아니야’라는 걸 보여주려고 옷과 신발도 왕창 샀다고 했다. 이씨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씨는 그렇게 다가온 첫 여자친구에게 “두 달 만에 200만원을 쓰고 헤어졌다”며 허탈해했다. 18년간 이씨 앞으로 적립된 1200만원을 다 쓰는 데는 1년이 채 안 걸렸다. “이제는 다 말할 수 있다”고 웃으며 털어놨지만 그때는 아팠다.

이씨와 함께 브라더스 키퍼에서 일하는 장윤수(24)씨는 프로페셔널 마술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립정착금 500만원과 CDA 500만원을 한 달 만에 다 써버린 악몽 같은 경험은 그의 인생에 큰 ‘교훈’으로 남았다. 장씨는 시설에서 한 달 3만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퇴소할 때는 한 몫에 1천만원을 손에 쥐었다. 마술을 전공한 장씨는 마술도구 사는 데 반을 썼고, 나머지는 한 달 만에 유흥비로 썼다. 가라오케 같은 유흥업소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 따라가서 돈을 썼다. 그러다 수중에 100만원이 남았을 때 “너무 무섭고 공포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장씨는 “대학에 가면 시설에서 더 살 수 있지만, 큰돈을 써보고 싶어서 퇴소하는 아이가 많다”며 “그 돈을 사기당하거나 마구 써버리는데, 돈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준비시켜 내보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 용돈이 8천원, 갑자기 생긴 목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시설 자립생들은 ‘사기’도 많이 당한다. 생전 연락도 없던 부모나 친척이 퇴소 무렵 나타나 정착지원금을 가져가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다현(21·가명)씨는 대리양육가정위탁으로 통장을 관리하던 할머니가 정착지원금 500만원을 삼촌에게 빌려줬다고 했다. 이씨는 “할머니가 ‘너희 아빠는 못 믿어도 삼촌은 믿어도 된다’며 빌려주셨는데 여태껏 안 돌려주신다”고 말했다.

김수지(23·가명)씨의 아동양육시설 친구는 사회성 장애가 있었다. 회사에 다니다가 남자친구를 만났고,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휴대전화를 만들어줬다가 수백만원 빚을 떠안았다. 이 빚을 해결하려고 뭔지도 모르는 사채를 쓰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친구는 요즘 억대 사채빚으로 넋이 나간 상태라고 했다. 김씨가 말했다. “저 때만 해도 시설에서 한 달 용돈 8천원 가지고 용돈기입장까지 쓰게 했어요. 신용카드도 없이 한 달 8천원 쓰는 아이들한테 제아무리 금융교육을 해봐야 현실감각이 전혀 없어요. 자립 전에 선생님들이 잠시 자립정착금이나 CDA 통장을 맡아서 조금씩 나눠주면서 금융교육을 하는 ‘중간단계’를 두면 좋겠어요.”

시설 자립생 중에는 유독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가 많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철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외로워서, 집에 강아지·고양이라도 있어야 안정이 되기 때문에 그런다. 이다현씨는 “나는 굶어도 강아지는 안 굶기고, 나는 못 입어도 강아지 옷은 다 사준다”며 애틋한 사랑을 드러냈다. 보호 종료 청소년을 교육하고 자립을 돕는 ‘소이프(SOYF) 스튜디오’의 고대현 대표는 “어떤 친구들은 강아지한테 150만~200만원을 쓰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4월부터 시설 자립생에게 시범사업으로 지원하는 월 30만원 자립수당에 대해서도 쓰임새를 달리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보인다. 최경옥 청운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는 “LH전세임대주택은 한 번에 2년씩 세 번까지만 계약이 되기 때문에 6년 뒤 주거 지원이 끊긴다”며 “자립수당을 적립했다가 그때 전세보증금으로 쓰게 하면 진정한 자립수당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에서는 일찍 자립한 자녀가 엄마 아빠한테 힘들다고 하면 6개월이든 1년이든 공부할 기회를 준다. 매달 자립수당을 주는 대신 그 돈을 자립 ‘세컨드 찬스’(두 번째 기회)로 활용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세컨드 찬스로 활용을

김성민 브라더스 키퍼 대표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랐다. 그는 자립생들에 대한 ‘금융교육’을 강조하는 현실적인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조금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립정착금 관련 뉴스가 나오면 욕하는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그런 돈을 왜 주느냐고. 물론 그 돈을 좋은 데 잘 쓰면 좋겠지만, 저는 아이들이 무엇이 됐든 자기 돈으로 사보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자기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이잖아요.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렇게라도 해소해봐야 상처를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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