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9단 "바둑 한 판 6개월 두던 시절이 그립다"
그의 최후 담은 소설 『명인』 나와
"바둑은 평생 닿을 수 없는 예술
요즘에는 너무 승부에만 집착"
1992년 절판돼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명인』(메리맥·작은 사진)이 최근 새롭게 나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손바닥 소설』 등을 번역한 유숙자씨가 번역을 맡았다. 책에는 바둑을 도(道)와 예(禮)로 여기던 당시 일본 바둑계의 풍경과 명인의 장인 정신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 『명인』이 그린 ‘장고 대국’=책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반년 동안 이어지는 명인의 마지막 대국을 한 수, 한 수 예술적인 필치로 풀어나간다. 은퇴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 얼마나 명인이 한판의 바둑에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명인뿐 아니라 그의 상대인 기타니 미노루 7단까지 자세히 포착해 책을 읽으면 당시의 대국 장면이 눈앞에 재연되는 듯하다.
책에 나타나듯 실제로 명인은 한판의 바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길 여러 차례 반복하며 겨우 은퇴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책에는 한판의 바둑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명인에 대한 존경과 애도가 짙게 배어 있다.
책에 묘사된 장고 대국에 대해선 “은퇴기처럼 6개월 동안은 아니더라도, 옛날에는 온종일 바둑을 두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며 “아침 10시에 바둑을 시작하면 자정을 넘기는 일이 흔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8시쯤 바둑이 끝나면 매우 빨리 끝났다며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한 판을 두는 데 체력 소모가 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물론 그렇다. 한판 두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과거 바둑의 규칙이었고,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조 9단은 스승의 자살에도 가와바타의 자살이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70년 애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하자 2년 뒤인 1972년 4월 16일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 9단의 설명에 따르면 친구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세고에 겐사쿠도 3개월 뒤인 1972년 7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승님은 가와바타가 자살하기 전부터 실의에 빠져 계신 상태였다. 애제자였던 내가 병역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애제자를 잃고 상심이 크신 상태에서 친구까지 자살하자 몸도 불편하셨던 차에 죽음을 결심한 듯하다.”
◆ “시대가 변하니 바둑도 변하더라”=책에서 명인은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둑에 쏟아부은 ‘장인’으로 묘사된다. 명인에게 바둑은 평생 추구해도 닿을 수 없는 예술이자 도의 경지다.
요즘 바둑계에 대해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조 9단은 “시대에 따라 바둑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요즘에는 너무 바둑을 승부로만 본다. 이기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는 과거의 바둑과는 너무나도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승부에 대한 그리움은 없을까. 조 9단은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며 “승부사로서의 삶은 끝난 지 오래”라고 잘라 말했다.
조 9단의 바둑 인생에서 가장 영광된 순간은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했을 때다. 그리고 가장 좌절했던 순간은 제자 이창호에게 패해 무관으로 내려왔을 때다. 승부사로서 마지막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다.
그는 “당시는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오랫동안 잘 버텼던 거 같다. 그만하면 충분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조 9단은 49세 10개월에 제7회 삼성화재배에서 마지막 세계대회 타이틀을 탔다.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최고령 타이틀 획득 기록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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