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알고 보니 재판장·변호사가 부부.."한진칼 재판, 대법 윤리규정 사실상 위반"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2019. 3.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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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진칼 회사개혁 가처분신청, 고법에서 ‘1심 결정’ 뒤집혀
ㆍ“문제 로펌 중간 사임했지만 재배당 요구한 후 손뗐어야”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한진칼과 이 회사 조양호 대표이사를 상대로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제기한 주총안건 상정 가처분 신청을 패소로 뒤집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대법원 윤리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족이 일하는 로펌 사건은 처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특정 로펌과 관계 있는 법관의 사건처리를 규제하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제8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면서 그 영향이 하급심에까지 전해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25부(재판장 왕정옥 판사)는 KCGI가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우리가 추천한 이사와 감사를 넣고 이사 보수도 5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줄이는 안을 주주안건에 부치라”며 제기한 신청을 지난 21일 기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이승련 판사)는 지난달 “상법에 있는 대로 주식을 3% 이상 가진 이들이 낸 안건들을 주주총회에 올리라”고 했다.

이 결정 이후 서울고법 재판부와 한진칼 대리인이 특수관계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항고심 재판장의 남편이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화우가 한진칼을 대리해 1심과 2심에 모두 참여하고 있었다”며 “그러다 지난 12일 항고심 재판장이 지금 재판장으로 변경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다음날 화우가 사임하고 재판장은 심문을 열어 한진칼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화우가 사임해 형식적으로는 윤리규정 위반이 아닐 수도 있지만 배우자가 일하는 로펌이 참여해온 사건이라면 재배당을 요구하고 손을 떼는 게 옳았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진칼은 왜 대형 로펌을 사임시키면서까지 이 재판장을 원한 것이며, 이 로펌은 왜 재배당을 기다리지 않고 돈 벌 기회를 포기한 것이냐”고 했다. 화우 관계자는 “사임은 대리인 스스로 결정했다”며 “사임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바뀌고 그러면 주총 안건 공시 전에 항고심 결론이 나오지 못할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가족들이 사건의 대리인을 넘어 이해당사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번 서울고법 재판부 주심판사의 형은 또 다른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이다. 그런데 태평양 소속 고문이 한진칼 사외이사다. 재판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재판장의 남편이 있는 화우의 대표변호사가 한진칼이 최대주주인 대한항공의 사외이사다. 이와 관련, 전임 재판장도 재판부를 떠나기 직전 “구성원의 일신상 사유로 재배당을 해야 한다”고 법원에 공식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한진칼의 상대방인 KCGI에서도 재배당을 요구하지 않았고, 전임 재판장이 재배당을 요청한 이유도 후임이 오기 전에라도 신속하게 해결하자는 것뿐이었다”고 해명했다. 2013년 제정된 권고의견 8호는 법관의 가족이 근무하는 로펌 사건은 맡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10월 권고의견 8호를 완화해달라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요청했다. 하지만 공직자윤리위가 수정에 난색을 표했고 이에 김 대법원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가족이 있는 김선수·노정희 대법관 등을 김앤장 대리 사건에 포함시켜 선고를 강행했다(경향신문 2월8일자 1·12면 보도).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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