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랑스 간 시진핑 "에어버스 300대 구매"..中 자금력에 분열하는 유럽

김성탁 입력 2019.03.26. 09:02 수정 2019.03.26. 09: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마크롱과 정상회담서 45조원 경협 계약
이탈리아 G7 최초 '일대일로' 참여 결정
美와 무역전쟁 시진핑 "세계 다극화 추구"
스페인, 포르투갈 등 이미 中 자본 넘쳐
"결국 종속" 경계령 속 EU 고민 깊어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은 프랑스 남부로 마중을 나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지중해 해안을 산책하면서 "이 곳이 참 편하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유럽은 다극화하는 세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다. 그래서 내가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유럽을 택했다. 단합해 번영하는 유럽은 중국의 세계 다극화 비전에 잘 어울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는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전례 없이 약화한 상태다.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글로벌 패권을 거머쥐려는 중국의 카드 중 하나가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다.
시진핑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45조원 규모의 경협 계약을 체결했다. [EPA=연합뉴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만드는 천문학적 규모의 인프라 건설 사업은 아시아와 중동은 물론이고 유럽 국가까지 흔들어놓고 있다. 시 주석이 앞서 방문한 이탈리아는 G7(서방 선진 7개국) 중 처음으로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EU 내부에서 ‘중국 경계령'이 나오지만, 경제 재건이 급한 이탈리아는 중국과 손잡는 쪽을 택했다.
시 주석은 프랑스 국빈 방문에서도 유감없이 돈을 뿌렸다. 중국 항공사들이 에어버스로부터 A320s 290대, A350 10대 등 항공기 300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프랑스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데 이어 프랑스산 냉동 닭 수입 빗장도 풀겠다고 했다. 프랑스가 중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등 에너지와 문화 교류 등을 포함해 수십 개 분야에서 400억 달러(약 45조원) 규모의 경협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이탈리아를 먼저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 니스로 들어오자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남부로 가 비공식 만찬을 했다. [A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일대일로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양국이 다른 나라에서 일련의 공동투자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다르게 참여하겠다고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래서 마크롱에게 시 주석의 방문은 시험대에 해당한다고 프랑스24 방송이 보도했다. 프랑스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할 수 있도록 중국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 동시에 중국의 글로벌 야심을 경계해야 하는 두 과제를 안고 있어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대일로에 대해 ‘쌍방향 길'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중국만 유럽을 향할 게 아니라 해외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중국 정부가 개선하라는 요구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유럽과 중국의 강한 파트너십이 필요하지만 강한 다자주의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무역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왼쪽)과 시진핑 주석의 부인이 개선문 헌화 행사장에 나란히 서 있다. [EPA=연합뉴스]

이미 이를 간파한 듯 시 주석은 르 피가로 기고에서 “프랑스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발전의 기회를 공유하기를 바라고, 중국 기업도 프랑스 경제에 더 기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어 “두 국가의 유대가 작은 물결에서 큰 강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강물이 중국에서 유럽으로만 흐를 것이라고 우려한 프랑스와 독일은 중국 견제론을 띄우는 중이다. 독일은 자체적으로 중국 자본이 국가 중추 산업의 주식을 일정 비율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마크롱은 지난주 EU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중국에 순진했던 시대는 끝났다”며 “우리가 조율되지 않은 채 접근하는 동안 중국만 이익을 봤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진핑 주석은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대통령궁에 입장하는 '황제 의전'을 받았다. [AP=연합뉴스]
그럼에도 EU 28개 회원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반응은 분열돼 있다. 13곳이 이미 참여를 선언했다. 그리스의 핵심 항만을 중국 기업이 운영하기로 했고, 스페인의 발렌시아와빌바오 부두도 마찬가지다.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포르투갈에 대한 중국의 투자 규모는 60억 유로까지 증가했다. 체코도 미디어 기업과 항공, 축구 클럽에까지 중국의 투자를 받아들였다.
중국의 유럽 파고들기를 이탈리아까지 수용하자 독일 등에선 경고가 나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24일 벨트암존탁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 미국 같은 거대한 국가가 있는 세상에서 EU는 단결해야 생존할 수 있다”며 “어떤 국가가 중국과 영리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믿을지라도, 나중 보면 중국에 의존하게 된 것에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며 “단기적으로 수익성 좋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가운데)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참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연합뉴스]

독일 출신의 귄터 외팅거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은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해 “EU의 거부권 행사나 EU 집행위원회의 동의 절차를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가 중국의 유럽 진출 교두보를 제공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6일 파리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이 시 주석과 만난다. 다음 달 예정인 EU-중국 정상회의에 앞서 무역과 기후변화 대책 등 주요 이슈에서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혼자 상대하기 버거운 중국을 여럿이 대응하려는 모습이지만 중국의 확장을 반길 수만도, 막을 수만도 없는 EU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찬을 앞두고 포즈를 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EPA=연합뉴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실시간 주요이슈

2019.04.24. 06:56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