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창씨개명·징병 등 정부책임 삭제..'과거사 지우기' 노골화

2019. 3. 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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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였던 조선 사람들에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거나 일본군 병사로 징병하여 전쟁터로 보내거나 했다."

26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교이쿠(교육)출판의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주어 없는 문장'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에게 강요한 창씨개명과 징병을 서술했지만 이 정책을 추진한 '일본 정부'의 책임이 모호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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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초등교과서 뜯어보니]
강점기 창씨개명 강요 등 서술
'주어' 없애 책임주체 모호하게

간토대지진 '학살 주체' 언급 않고
군함도 소개하며 '강제동원' 침묵
러일전쟁엔 "독립 희망 줘" 미화
임진왜란 '침략' 빼고 "대군 보냈다"

한일 교류·역사적 사실은 축소
도쿄서적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린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지도와 사진에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가 등장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식민지였던 조선 사람들에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거나 일본군 병사로 징병하여 전쟁터로 보내거나 했다.”

26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교이쿠(교육)출판의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주어 없는 문장’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에게 강요한 창씨개명과 징병을 서술했지만 이 정책을 추진한 ‘일본 정부’의 책임이 모호해진 것이다. 2014년 검정을 통과한 현행 교과서엔 ‘정부’라는 주어가 명시돼 있다.

주어를 빠뜨린 예는 또 있었다. 도쿄서적은 1923년 9월 간토(관동)대지진을 기술하며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적었다. 최소 6천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주체인 일본 군경과 자경단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12·28 합의나 2015년 8월 ‘아베 담화’ 때도 자기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할 주요 문장에서 주어를 생략한 바 있다.

이처럼 일본의 후퇴한 과거사 인식을 보여주는 구절이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적잖이 눈에 띈다. 일본 정부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에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 등 대전이 인류 전체에 미친 영향을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해온 ‘역사 뒤집기’의 영향 때문인지 아시아 주변국들에 끼친 피해를 상세히 기술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책임을 눙치는 태도는 2016년 한-일 사이에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던 군함도 관련 기술에서도 두드러진다. 도쿄서적 사회 교과서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면서 군함도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나가사키현 하시마의 사진을 넣고 지도에 위치도 표시했다. 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중세사에선 교이쿠출판이 임진왜란을 설명하며 기존의 ‘침략’이란 표현을 빼고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고만 적었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교과서는 니혼분쿄(일본문교)출판뿐이었다. 이 교과서는 “전쟁 등으로 아시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적도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서로의 국가를 존중하면서 더 강한 우호와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 대해 전쟁 중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지금도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하지만 이 출판사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 러일전쟁을 “구미 제국의 진출과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자각과 희망을 주었다”고 미화했다.

한-일 교류나 한국 관련 서술도 축소됐다. 니혼분쿄출판의 현행 교과서에는 “한국과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우호를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구절이 있지만, 이번엔 “우호를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부분이 빠졌다. 일본 고대 문명에 끼친 한반도 출신자들의 영향에 대한 기술도 축소됐다. 현행 교과서는 “(한반도) 도래인이 대륙에서 문화와 기술을 전해줬다”고 서술했지만 새 교과서는 이를 삭제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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