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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 "개혁입법의 첫 번째는 '개헌'..지금도 늦지 않았다"

입력 2019.03.27. 05:06 수정 2019.03.27. 08:06
백기철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 국회의장이 22일 국회 의장실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희상 국회의장(6선·경기 의정부갑)은 인터뷰 직전 주변에 “판피린에스 좀 갖다 달라”고 했다. 감기에 걸린 탓인지 목소리가 다소 둔탁했다. 감기약을 들이켜고 인터뷰를 위해 정좌한 노정객에게선 30여년 정치 인생의 무게가 느껴졌다.

문 의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세 민주정부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정권의 상승과 하강을 안팎에서 지켜봤다. 문재인 정부 3년차,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선거제 개혁 등 고빗길에 놓인 현안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당장의 현안인 선거법 개정안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문제에 대해 문 의장은 “제1야당이 제기하는 권력구조 개헌까지를 포함해 일괄타결해야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다만, 그는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더라도) 상임위에 6개월이 주어지는 만큼 이 기간 동안 협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과 관련해선 “이런 추세로 가면 여당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모든 정당이 3년차가 넘어가면 선거에서 전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인사 문제 바로 세우고, 야당과 협치하고, 실적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 전망에 대해 문 의장은 “김정은이 되돌아갈 수 없다. 뭐라고 얘기하든 협상용일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큰 틀에서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국회의장실에서 진행됐다.

-정권교체 이후 2017년, 2018년 두해가 흘렀지만 정치개혁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다.

“실질적인 개혁이 이뤄진 게 전혀 없다. 어떤 혁명적 상황, 4·19나 6·10항쟁, 촛불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시기마다 제도적으로 마무리가 안 되면 역주행했다. 나는 꼭 제도화를 강조한다. 촛불이 촛불다워지려면 ‘이게 나라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이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전광석화처럼 다 했다. 이것이 1년 뒤 75% 이상의 지지율로 나타난 거다. 그다음에 국회에서 제도화가 밑받침 안 되면 만사가 도로 아미타불이다.”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에 대해선 불가피하다는 입장인가?

“개혁입법의 첫번째는 개헌이다.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 지금 같은 체제와 운영방식이면 모든 대통령이 불행하게 끝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력구조 측면의 개헌은 여야가 그동안 수도 없이 논의해서 접근된 안이 있다. 총리에게 권한을 주어 대통령 권력을 좀 뺏는 것이다. 대통령제 자체를 없애는 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는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총리를 뽑기 위해 국회가 두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한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면 된다. 개헌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제1야당이 선거제 개혁을 얘기하면서 권력구조 문제를 거는 것은 그런 측면이라고 본다. 전체를 일괄타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괄타결을 말씀하셨는데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중단하고 권력구조 문제까지 넣어서 협상을 주선할 용의는?

“그건 내 재량이 아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국회법에 따라 순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임위에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 동안 의장이 할 수 있는 모든 뒷작업(헌법 개정을 포함한 일괄타결 노력)을 할 거다. 지금도 하고 있다.”

-선거법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져도 협상을 위해 노력할 거라는 말씀인가?

“선거제도는 관행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합의로 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선거제도 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개혁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촛불 민심이 그것이다. 국민이 준 민심의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수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다. 그런 확신 속에서 되게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는 게 제일 좋지만 안 된다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되면 사실상 협상 여지는 없어지는 것 아닌가?

“아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엔 국회 총리추천제가 없다. 문 대통령이 이를 꺼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정권을 잡으면 달라지니까. 정권을 잡지 않았을 땐 안 그랬다.”

-대통령이 부정적이라면 어려운 것 아닌가?

“그거는 국회가 하는 일이다. 자꾸 대통령 탓을 하면 안 된다. 국회가 합의하면 되는 거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국회가 먼저다. 내년 총선에 개헌 국민투표까지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개헌이 되면 문 대통령도 국회가 추천한 총리와 동거해야 하나?

“아무 관계 없다. 차기 대통령부터의 문제다. 어느 개헌안이건 차기에 하는 거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상당히 압박을 받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운영을 해봤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이 국회더러 총리 후보 두 사람을 추천해보시라, 이렇게 하면 어떤가.”

상임위 넘겨지는 6개월 동안 타협해야
합의가 최선이지만 안 되면 차선 택할 것
‘국회 총리추천제’ 개헌, 여야 합의 가능 역대 여당 예외 없이 3년차 선거에서 ‘전패’
지금 추세면 총선에서 여당 어려운 건 당연
인사·협치·실적으로 국민 신뢰 회복해야

-정치가 험악해지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때 의장께서 여야를 공히 꾸짖고 엄정히 수습했다고 들었다. 정치의 무한 대결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우선은 국회가 국회다워야 한다. 스스로 국회를 멸시하고 있다. 격조 있고 품격 있는 국회가 돼야 한다.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번씩 법안소위를 의무적으로 열게 하고, 법사위의 자구 수정 권한을 축소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준비했다. 인사청문회법도 개정해야 한다. 국회법을 고칠 게 한둘이 아니다.”

-정치인을 개별적으로 보면 훌륭하고 역량 있는 분이 많은데 정당이나 국회 차원으로 가면 결과물이 없어지고 흐지부지된다.

“제도 개선만으론 한계가 있고 정치문화가 고쳐져야 한다. ‘올 오어 나싱’으로, 이분법으로 갈라서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상대를 라이벌로 보고 상대를 인정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주인만 바뀔 뿐 매번 그 싸움이 그 싸움이다.” -자유한국당이 황교안·나경원 체제가 들어선 뒤 ‘좌파독재’ 프레임으로 연일 대여 강공을 하고 있다. 보수가 이렇게 강경보수, 공안보수, 극우보수로 가도 되나?

“가서는 안 되는 길로 가고 있다. 보수는 언제든 30%는 있어야 한다. 진보를 주장하는 가치가 30%가 안 되는 것도 불행한 상황이다. 나머지 40%는 때론 진보를, 때론 보수를 지지하는 게 정상이다. 어느 일방으로 가면 좋지 않다. 그런데 지금 보수는 극단적으로 생각한다. 30% 중 5%만 갖고 있는 극단 세력, 태극기 세력, 극보수로 자꾸 가려고 한다.”

-지난 연말에 문 대통령에게 ‘혼밥 하시냐’고 물으면서 여러 사람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이후 이런저런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뜸한 것 같다. 대통령이 다시 혼밥 하는 건가?

“대통령이 협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또 해야 한다. 그때도 시중에 대통령이 혼자 밥 먹는다는 소리가 들리면 문제다라면서 실제야 그렇겠냐고 했다. 대통령이 막 웃더라. 눈에 띄게 사람을 부르세요, 그런 얘기를 한 거다. 계속 불러다 밥 먹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 정권 탓, 야당 탓은 2년까지만 유효하다. 2년 뒤에는 절대 그게 안 통한다. 이제부턴 핑계 댈 데가 없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보시는지? 경제가 좋은 게 아니고 남북관계도 어렵다. 여당이 상당히 어렵지 않겠냐고들 한다.

“이런 추세로 가면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하다. 언제든 모든 정당이 그랬다. 집권 초 선거와 달리 3년차 넘어가면 전패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사 문제 바로 세우고, 야당과 협치 잘하고, 실적을 내야 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청와대, 대통령, 여당 전부 나서서 설득해서 선거제도 고치고 개헌도 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국민 신뢰를 잃으면 동력이 없어진다. 신뢰를 회복하는 걸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국회는 국회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해야 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비핵화, 남북관계 전망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북·미·남 다 그렇다. 특히 김정은이 되돌아갈 수 없다. 뭐라고 얘기하든 다 협상용이다. 이제 비핵화 안 하고 다시 돌아가는 건 못 한다고 본다. 해봐야 말뿐이다. 또 믿는 근거는 세 사람의 케미스트리다. 셋이 궁합이 이렇게 맞을 수가 없다. 북은 북대로, 미는 미대로, 문 대통령은 문 대통령대로 시기 판단만 좀 늦어질 뿐 나는 한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최근 의장께서 일왕 사죄 발언으로 논란이 됐는데 진의가 왜곡된 건가?

“왜곡이라기보다 진정성이 전달 안 된 거다. 내 말 요지는 이렇다. 역사의 법정에서 전쟁 범죄나 인륜에 관한 범죄는 시효가 없다. 독일이 패전국인데 유럽에서 대장이 되는 이유는 모든 문제에 사과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제일 중요하다. 아베 (신조) 총리, 또 아베 총리에 준하는 일본을 상징하는 국왕이 위안부 할머니한테 가서 ‘미안합니다’ 한마디 하면 근본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얘기였다.”

-6선 의원이신데 정치 인생의 좌표가 있나?

“세가지다. 하나는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도, 국가도 없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으면 나라가 아닌 거다. 국민이 믿고 따를 때 국가가 되는 거다. 나는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음은 화이부동. 모두 다르지만 전체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력, 리더십을 추구했다. 정치는 더해가야 한다. 뺄셈의 정치, 분열의 정치, 이분법의 정치는 못난 정치다. 세번째는 선공후사. 누구나 국가를 위해 결단해야 할 순간이 한번은 온다. 나는 여러번 왔다. 그때마다 어느 게 먼저냐, 선공으로 판단했다.”

-내년 의장 퇴임 후 정치 행로는?

“이름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그럴 각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감기 들고 쉬고 싶어도 이게 마지막인데, 남은 것 다 짜고 짜서 그래도 이런 정치인이 이렇게 하려고 애썼구나, 이렇게 하다가 스러졌구나 하고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내년 총선 출마는 안 하신다는 건가?

“이 말에 다 포함되는 거다.”

kcbaek@hani.co.kr

문희상 국회의장이 22일 국회 의장실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희상 누구인가
배우 이하늬가 조카…6선의 ‘선 굵은 정치인’

문희상(74) 국회의장은 요즘 사석에서 “조카가 더 유명한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문 의장 조카는 배우 이하늬씨다. 문 의장의 여동생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의 딸이다. 제사 같은 집안 행사 때 이하늬씨가 문 의장 집을 찾곤 하는데, 경비원들이 사진 찍겠다고 미리부터 대기한다고 한다. 조카가 더 유명세를 타는 셈이다.

경기도 의정부에서만 6선을 한 문 의장은 1992년 민주당으로 등원했다. 당시 디제이(DJ)의 명으로 이기택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아 충직하게 보좌했다. 이때부터 줄담배를 태우며 기자들과 격의 없이 문답을 주고받곤 했는데, 그 자리를 ‘봉숭아 학당’이라 부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두 정부의 기초를 닦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지난해 7월부터 20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고 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지냈다.

문 의장은 인터뷰에서 정치 인생을 두고 “불운했다”고 했지만 세 민주정부에서 중책을 맡은 만큼 꼭 그렇진 않아 보인다. 다만,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선 굵은 행보를 한 탓에 대결지향적인 정치판에서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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