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82세에 휴대폰 게임 개발.. "디저트 같은 노년을 즐기세요"

곽아람 기자 2019. 3.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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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스티브잡스, 와카미야 마사코

"노년이란 즐거운 거예요. 60세가 지나면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일에서도 벗어나고 자녀 교육도 끝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죠. 새하얀 캔버스에 새로운 삶을 그려가는 느낌으로!"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와카미야 마사코(84)씨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경쾌한 커트 머리에 맑은 피부, 회색 재킷에 받쳐 입은 빨간 스웨터가 선명했다. '노인들의 스티브 잡스'가 그의 별명이다. 82세이던 2017년 노인들을 위한 아이폰 게임 앱을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그해 6월 미국 애플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에 초대받았다.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에게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고, 그해 가을엔 일본 정부가 꾸린 '인생 100세 시대 구상회의'의 최연장자 멤버가 되기도 했다. 책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가나출판사)가 최근 출간됐다.

한 손엔 자신이 개발한 게임 앱이 깔린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손으론 엑셀 아트로 디자인한 핸드백을 든 와카미야 마사코. 그는 “‘이 나이에 이걸 하면 사람들이 흉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취미인 고토(일본 전통 악기) 연주는 아이패드 앱으로 하고, 엑셀을 이용해 문양을 디자인하는 '엑셀 아트'도 즐긴다. 최첨단 기술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지만, 60세까지 컴맹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일했다. 60세 정년퇴직 후 치매를 앓는 90대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다 컴퓨터를 구입하고 인터넷 사용법을 배웠다.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고,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다.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직접 스마트폰 게임을 만들었다. 코딩 입문서를 사 읽고, 동호회에서 만난 프로그래머로부터 강의를 듣는 등 6개월간 고군분투하며 게임을 완성했다. 그가 개발한 게임 '히나단'은 일본 여자아이들을 위한 인형 축제 '히나마쓰리'에서 착안한 것. 그는 "축제 때 인형을 장식하는 단(壇)에 순서대로 인형을 배치하는 게임이다. 전통 문화와 연관돼 노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령에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왕성한 호기심. 41세 때부터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한다. 다양한 세계를 만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좋아서다. 패키지 여행보다는 혼자 자유여행하는 편을 선호한다. 현지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할 때도 스마트폰은 든든한 친구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현지인들과 의사소통한다. 지금까지50여 개국을 여행했다. 지난해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녀왔고, 올해엔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에 갈 계획이다.

또래로서는 드물게 비혼이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다시 인연을 못 만났다. 그는 "우리 때는 여자가 독신으로 있으면 '야쿠자 같은 여자'라며 손가락질당하곤 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난 덕에 '여자다움'이라는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와 가능성을 얻었다"고 했다.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체력이 좋지만 딱히 건강에 신경쓰지 않는다. 자고 싶을 때 잠들어 깨고 싶을 때 일어난다. 기상 시간이 불규칙하다 보니 식사 시간도 불규칙하다.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맛있어 보이는 것을 먹는다. 그는 "건강은 삶의 수단일 뿐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미래가 걱정돼 저염식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맛있는 된장국을 먹는 게 좋다"고 했다. "'안티 에이징'을 한다며 미용에도 신경 쓰는 노인들이 많습니다만, 지는 해를 쫓아가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인생이 코스 요리라면 노년은 디저트랍니다. 노년이라는 맛있는 디저트를 만끽하며 '인조이 에이징(enjoy aging)' 하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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