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빈 상가' 대란 맞나..떠나간 사장님들 어디에?

모은희 입력 2019. 3. 29. 09:08 수정 2019. 3. 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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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신문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공실률 1%→19%, 강남 한복판 논현동이 이 정도면…"

경기침체로 논현동을 비롯한 강남 주요 상권의 공실률, 즉 비어있는 상가 비율이 1년 반 사이에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다.

순간 염려스러웠다. 빈 상가 때문에 임대 수입이 줄게 된 건물주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공실률이 껑충 뛰었다면 자연히 폐업도 줄을 이었을 터,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공들여 문을 연 가게를 정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다. 한국감정원이 제공하는 부동산 통계정보 사이트(www.r-one.co.kr)에서는 각 지역의 상가 공실률을 분기별로 집계해놓고 있다. 위에 언급한 기사의 내용과 같은 기간인 '2017년 2분기~2018년 4분기' 사이에 서울의 전체적인 상가 공실률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빈 상가 비율' 차이 없어…"싼 임대료 찾아 움직일 뿐"

서울 평균 상가 공실률은 2017년 2분기에 11.3%이던 게, 2018년 4분기 11.4%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강남으로만 대상을 좁혀봐도 두 기간 공히 8.4%, 공실률에 변화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빈 상가가 급증한 일부 상권 얘기를 부각한 기사였음을 짐작케 한다.

전체 공실률에 차이가 없는 만큼, 자영업자들은 기존의 가게를 접는 대신 다른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서울역 앞이나 공덕동, 장안동 등 해당 기간 동안 공실률이 줄어든 지역들일 수도 있다. 전에 있던 가게와 비교적 가까운 변두리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한 건,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비싼 임대료를 피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뜨는 상권'은 확 오르는데…'지는 상권' 임대료 제자리

소위 '뜨는' 상권의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면서 임차인들이 쫓겨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 문제가 되곤 한다. 그러면 반대로, 빈 상가가 늘어나는 '죽은' 상권의 임대료는 뚝 떨어질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임대료를 깎으면 해당 건물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걸 우려해 건물주들이 손해가 나더라도 점포를 비워두고 일단은 버티기 때문이다. 전성기에는 임대료가 급격히 확 오르고, 쇠퇴기에는 천천히 조금씩 내리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10년 전만 해도 강북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였지만, 몇 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상가정보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상가당 매출은 종로구 전체 평균이 3,600만 원이지만 삼청동은 2,800만 원에 불과했다. 인파로 붐비던 삼청동은 옛말이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평균 임대료는 종로구 전체가 44만 원인 데 비해, 삼청동은 129만 원으로 여전히 높았다. 최근 들어서야 임대료를 대폭 낮춘 상가들이 등장했으니, 상권의 부침보다 임대시장의 반응은 현저히 느림을 보여준다.

전월세 가격이 비교적 명확한 주택 시장과 비교해, 상가 임대 정보는 폐쇄적이라는 점은 임차인 입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상가 임대료 추이를 체계적으로 공개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건물주와 중개업소가 부르는 값에 휘둘리기 쉽다.


샌프란시스코 '빈 상가세', 임대료 안정 해법될까

최근 법 개정으로 세 들어 장사하는 자영업자들 보호가 강화됐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9억 원 이하의 상가라면 재계약 때 5% 이상 임대료를 올려받을 수 없다. 임대 기간도 10년으로 연장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가 마련됐지만, 임대료를 좀처럼 내리지 않는 데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폐업과 개업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10년 영업 보장'은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일명 '빈 상가세'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상업용 건물이 한 달 넘게 빌 경우 즉시 당국에 신고하고 1년에 711달러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다. 신고하지 않으면 4배, 즉 2,844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월세를 좀 낮추더라도 임차인을 꾸준히 받도록 해서 임대료 안정을 유도하고 공실률도 낮추겠다는 취지이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샌프란시스코 사례를 우리나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이다. 건물주에 대한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지는 건, 우리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정부의 촘촘한 대책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은희 기자 (monni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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