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갔더니 '예능 프로' 틀어주더라

이세영 기자 2019. 3. 3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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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교육은 안하고, 난민문제·反日 강연" 경험담 잇따라
올해 배포한 예비군 교육 영상에도 북한 관련 내용은 없어

지난 27일 오후 1시 30분 경기도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오후 교육이 시작됐다. 예비군 300여명이 교육관에 앉았다. 공부나 직장 업무를 미루고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부대 관계자는 대형 스크린에 2016년 방송된 한 예능 프로그램 영상을 틀었다. 한 남성 작가가 출연해 '왜 남자는 연애에 실패하는가'를 주제로 길거리에서 강연하는 내용이었다. "여성들은 사회적 핸디캡(불리한 조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있어 (연애에 대한) 방어기제로 나타난다"는 등의 내용이 20분간 이어졌다. 안보 영상이 나올 줄 알았던 예비군들은 "이게 뭐냐"며 수군댔다.

이날 예비군 훈련 계획에는 목진지(적이 다닐 만한 길목에 설치한 진지) 전투, 검문소 운영, 통신, 화생방, 구급법, 군 기강 확립 등을 교육·훈련하도록 돼 있었다. 국방부의 예비군 교육 훈련 훈령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은 일선 군부대 소속 예비군 지휘관이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당 예비군 부대가 예능 영상을 어떤 이유로 보여줬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 육군 관계자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준 것은 휴식 차원에서 좋은 내용이니 한번 보라는 의도였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3월 올해 예비군 훈련이 시작된 가운데 일부 교육 내용이 예비군 훈련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다는 김모씨는 "실내 교육 때 강사가 안보 교육으로 난민(難民) 문제를 다루면서 남북 대치 상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놀랐다"고 했다. "예비군 훈련 가서 양성평등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한 예비군 훈련 참가자는 "안보 교육 강사가 강의 시간 절반 이상을 중세 일본 역사와 일본으로 인한 한반도 수난사에 대해 강의했다"며 "주적(主敵)이 일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부가 남북 화해·협력을 강조하면서 군이 만든 예비군 교육 영상에서 북한 부분이 대폭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육군이 지난해 배포한 예비군 교육 영상에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한 번밖에 안 나와 논란이 됐다.

육군은 올해 10분짜리 영상 2개를 만들어 배포했다.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나는 대한민국 군인, 예비군이다'다. 육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영상에도 북한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나라를 잃은 난민의 고통과 6·25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보여주며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나는 대한민국 군인, 예비군이다'는 과거 예비군의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

전투 훈련이 주먹구구식이라는 평가도 많다. 최근 예비군 훈련에 참가했다는 이푸름(27)씨는 "미세 먼지 때문에 전투 훈련은 영상으로 대체됐고 훈련 계획에 있던 통신 교육은 안 하더라"고 했다. 김상연(29)씨는 "전투 훈련 때 지도를 펼쳐두고 분대장, 부분대장 등이 표시된 말을 각자 움직이면서 '약진 앞으로'라고 외쳤는데, 이게 훈련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 예비군 훈련 부대의 간부는 "소대장 교육을 할 때도 '사고가 나거나 민원이 나오지 않게 적당히 넘어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예비군을 폐지·축소해 달라는 청원 글이 200건이 넘게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예비군 훈련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정확히 교육하고, 교육 내용도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예비군들에게 혼란을 주는 교육은 중단하고 주적의 개념을 바로 세우고 안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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