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신도시 상가 살려보려 '재팬타운' 만들었다가..

시흥/김상윤 기자 입력 2019. 4. 1. 03:04 수정 2019. 4. 1. 08: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흥에 日음식점 거리 추진하자
"3·1운동 100년에 이래도 되나" 10만명이 상가 무효화 靑 청원

지난 26일 경기 시흥시 배곧신도시의 한 주상복합 건물.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라멘 가게가 3월 초 문을 열기로 했던 점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체 '부동산 메카' 김종민 대표는 "개점이 한 달 정도 미뤄졌다"고 했다.

"일본 쪽도 한국 내 반일 정서를 민감하게 생각하다 보니 3·1절이 있는 3월 개점은 피하기로 했어요. 재팬 타운이라는 명칭이 이렇게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줄 몰랐습니다."

지난 28일 일본 프랜차이즈 식당가 '재팬타운'이 조성될 예정이던 경기 시흥시 배곧신도시의 상가 거리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진한 기자

이 주상복합 건물은 작년 9월 입주를 시작했다. 1~2층 상가 분양이 저조하자 김 대표가 일본 외식업체 유치에 나섰다. "오사카 식당들 앞에 길게 줄 서 있던 한국 관광객들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김 대표는 일본에서 10년간 살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작년 하반기 일본 회사와 손잡고 일본 식당 유치에 나섰다. 30~50곳을 유치하는 게 목표였다. 일본 음식점이 모인 동네라는 뜻에서 '재팬 타운'이라고 광고했다. 김 대표는 "상권을 살리는 일이라 지역에서도 환영하리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명칭이 뜻밖의 논란을 불렀다. 지난달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팬 타운을 무효화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일본군) 위안부부터 해상초계기 사건, 독도 문제까지 일본과 관련해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문제가 많다"며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썼다.

이 글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으로 퍼졌다. 그러자 "3·1운동 100주년에 재팬 타운이 웬 말이냐"며 프로젝트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한 달이 안 돼 청와대 청원에 10만명이 동의했다. 논란이 되자 시흥시청은 "시는 재팬 타운 조성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해명 자료까지 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계약을 맺은 일본 음식점은 4곳이다. 다음 달에는 일본에서 음식점 점주 20여 명이 방한해 계약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일본인 점주는 "입점했다가 가게에 반일 스티커가 붙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경기도의회가 도내 학교 비품 가운데 일제강점기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기업 제품에 '전범(戰犯) 기업'이라고 표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데, 이 소식이 일본에도 알려진 것이다. 김 대표는 "오사카에 가서 '모든 한국인이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이나 입주민들은 일본 음식점이 들어오는 데 대체로 찬성했다. 상가 1층 카페 주인인 라의주(29)씨는 "손님이 하루에 많아야 스무 팀 정도"라며 "재팬 타운이 생기면 상가가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이 상가에는 150여 곳이 점포 입주할 수 있다. 현재 25개만 주인을 찾았다. 그중 11곳은 부동산 중개사무소다. 주민 김모(27)씨는 "일본을 비판할 것은 해야겠지만 일본 점포가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유동인구가 늘면 지역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 대표는 "매년 150만명 넘는 한국인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국내에도 수많은 일본 음식이 있는데, 우리 국민의 정서가 이런 줄은 몰랐다"며 "재팬 타운이라는 이름은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