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5·18 집단발포한 날 헬기타고 광주갔다

입력 2019.04.01. 05:06 수정 2019.04.01. 20:56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 전남도청 앞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던 5월21일 정호용(88) 당시 특전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광주를 찾은 사실이 군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이날 <한겨레> 와 한 전화통화에서 "(5·18 당시 서울과 광주를) 왔다 갔다 했다. (5월21일 헬기를 타고 광주에 갔는지는)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그때(88년 5월 <월간경향> 인터뷰) 이야기한 게 다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육군본부 '작전상황일지' 단독 입수
5월21일 '특전사령관 외 2명' 기록
전두환 동행 여부 등 진상규명 필요
정호용 "광주서 보안사령관 만난 일 없다"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오른쪽)이 1980년 5월27일 시민군이 진압된 뒤 전남도청을 방문하자 장형태 당시 전남지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 전남도청 앞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던 5월21일 정호용(88) 당시 특전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광주를 찾은 사실이 군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을 때 서울에 있었다’고 한 정씨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광주에 파견된 3·7·11공수부대의 수장이었던 정씨가 5월21일 광주에 있었다는 군 기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의 ‘작전상황일지’에는 1980년 5월21일 특전사령관 외 2명이 광주에 가기 위해 헬기를 이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31일 <한겨레>가 단독으로 입수한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의 ‘작전상황일지’를 보면, 80년 5월21일 ‘항공기 지원’ 내역에 한문으로 “특전사령관 외 2명”이 오전 8시부터 10시20분까지 기동용 헬기인 UH-1H(기록은 UH-1로 돼 있음)를 이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행선지는 광주다. 이 문서엔 가스살포용 500MD 헬기 5대가 광주에 파견됐던 사실도 함께 담겨 있다.

80년 5·18 당시 공수부대 특전사 등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 기록은 정씨의 주장과 배치된다. 그는 1988년 <월간경향>(5월호) 인터뷰에서 “사태가 악화되자 (5월21일 서울에 있는데) 발포 여부를 묻는 급전이 날아와서 나는 지휘계통에 서 있지 않았지만, 절대 발포 불가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도청 앞 집단발포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부인하고 있다. 도청 앞 집단발포는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천명하기 전에 신군부 핵심 세력이 시민들을 살해하도록 한 직접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데도 39년이 지나도록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씨가 5월21일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은 5·18 당시 광주에서 주한미군 501여단 방첩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김씨는 지난 14일 <제이티비시>(JTBC) 인터뷰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월21일 광주비행장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505보안부대 이재우 대령 등과 회의를 했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 직후 발포·사살 행위가 이뤄졌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의 ‘작전상황일지’ 5월20~21일 상황일지.

이런 상황에서 군 공식 문서를 통해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씨가 광주에 있었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집단발포는 비공식 지휘계통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집단발포의 단서가 될 증거와 정황은 잇따라 밝혀졌다.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80년 5월21일과 27일 광주시민을 상대로 육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해 2월 발표했다. 5·18 연구자 이재의 박사는 “헬기에서 지상의 시위대를 향해 사격한 것은 군인들이 위험에 처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위수단으로 발포했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당시 보안사령관-특전사령관-공수여단장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라인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특전사령관과 동행한 2명 가운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포함됐는지 여부도 5·18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사령부가 신군부의 집권 과정을 기록한 <제5공화국전사>엔 1980년 5월2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서울 국방부 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지만, 회의 시간은 명기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이날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5·18 당시 서울과 광주를) 왔다 갔다 했다. (5월21일 헬기를 타고 광주에 갔는지는)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그때(88년 5월 <월간경향> 인터뷰) 이야기한 게 다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난 ‘광주사태’ 때 광주에서 보안사령관을 만난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5월21일 집단발포 책임’과 관련해 그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우리 부대를 거기(광주)다가 배속시켜준 것밖에 없다. 광주에서 일어난 사항은 전부 광주 사단장하고 그 후에 (전투)교육사령관하고 그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eaha@hani.co.kr

이 시각 추천뉴스

    실시간 주요이슈

    2019.07.20. 01:28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