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87살' 국내 최고령 충정아파트, 철거 안한다

박민 2019. 4. 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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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충정로에 지어진 아파트
여러번 주인 바뀌면서 개명 수난 겪어
도요타→코리아관광호텔→유림→충정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위기 놓였지만
서울시, 유적 가치 인정해 보존키로
지은지 80년이 넘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가 철거되지 않고 문화시설로 영구 보존된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박민 기자] 올해 나이 87세 아니면 82세?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1930년대 태어나 주인이 여러번 바뀌는 비운의 세월을 보낸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아파트 가운데 최고령을 기록하고 있는 이 아파트는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해 영구 보존될 전망이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이달 중으로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내용 등을 담은 ‘마포로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을 지자체에 내려 보내 주민 열람 공고에 들어간다. 시 도시활성화과 관계자는 “충정아파트 보존 여부에 대한 쟁점이 있어 변천 등의 용역을 진행한 결과, 근대 건축물의 중요 유적으로 가치가 인정돼 문화시설로 변경해 보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충정아파트가 있는 충정로 2·3가 일대는 오래된 주택이 즐비한 곳으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옛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애초 해당 사업지구 추진위원회는 보존 여부 등의 논란 때문에 충정아파트를 제외하고 정비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서울시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후 추진위는 충정아파트 전면 철거 및 개발을 시에 요청했지만 시로부터 충정아파트는 문화시설로 기부채납하는 대신 용적률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통보 받았다.

시 관계자는 “당초 주민이 제안한 정비계획의 사업성이 저하되지 않도록 충정아파트를 기부채납하고, 대신 해당 아파트 소유자는 재개발 사업 이후 일대 신축 아파트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해당 재개발 전체 용적률 및 아파트 층수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충정아파트를 제외한 마포 5구역 2지구는 용적률이 기존 526.5%에서 590%까지 올라가고, 지상 최고 28층까지 지을 수 있게 된다.

충정로 3가 8차선 대로변 고층빌딩 사이에 삐죽 나와 있는 충정아파트는 여러번 주인이 교체되면서 수차례 개명(改名) 수난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지난 1930년대 일본인 건축가였던 도요다 다네오(豊田種雄)가 지은 건물로, 그의 이름을 따 ‘도요타(豊田)’ 아파트 혹은 한자어를 우리말로 번역해 ‘풍전 아파트’로 불렸다. 이후 1950년 초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유엔(UN)군의 임시숙소로도 쓰였다가 1961년 한국 정부에 양도됐다. 이승만 정권 당시 6·25 전쟁때 아들 6명을 잃었다는 이에게 정부가 공로훈장과 함께 이 건물을 포상하면서 그의 손에 넘어갔다. 건물주는 기존 4층에서 5층으로 증축해 ‘코리아관광호텔’로 운영했다.

하지만 아들 6형제를 전쟁에서 잃었다는 사연이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정부가 이를 다시 환수했고, 이후 여러 명의 건물주 손을 거치다 1975년 건물에 저당을 잡고 있던 당시 서울신탁은행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서울신탁은행은 이 건물을 본래의 용도였던 아파트로 용도 변경하고 단지명도 ‘유림아파트’로 지어 일반에 분양한 뒤 지금에 이르렀다. 이후 ‘충정로’ 지명을 따 한차례 이름을 더 바꿔 지금의 ‘충정아파트’가 됐다.

최근엔 고령의 나이로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앞서 충정아파트는 국내 최고령 아파트답게 서울시가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서울 미래유산’ 등재를 검토했지만 재산권 침해 문제로 무산됐다. 미래유산은 자발적 보존을 원칙으로 하는 만큼 소유주들의 동의가 없이는 선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유산 등재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 문화시설로 지정돼 결국 생존에 이른 것이다.

충정아파트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령 아파트다. 서울시 건축물대장에는 준공(사업승인) 연도가 1937년 8월29일이라고 쓰여 있으나, 1932년이라고 적힌 문헌도 여럿이다. 하지만 최초의 아파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축된 아파트는 1930년 일본 기업이 지은 회현동 미쿠니 아파트로 당시는 미쿠니상사의 일본인 직원 숙소로 쓰였다.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처음부터 아파트 용도로 지은 건물은 1960년대 당시 대한주택공사(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로 1991년 철거됐다.

지은지 80년이 넘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가 철거되지 않고 문화시설로 영구 보존된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지은지 80년이 넘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가 철거되지 않고 문화시설로 영구 보존된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박민 (parkm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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