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 내자"던 의원, 고속도로 인근 농지에다 '2층집'

입력 2019. 4. 3. 05:06 수정 2019. 4. 5.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①부동산 이해충돌 현장을 가다-도로
고삼 수변 개발사업 공약 내건 김학용
당선 이듬해 농지·임야 산 뒤 집 지어
농지는 주변 땅의 반값에 매입
4개월 만에 미실현 차익 2억3천여만원

환경부 생태 훼손 우려했지만
나들목·휴게소도 들어설 예정
김 의원 "거주하려고 샀으며 이사할 것"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 자리한 김학용 의원의 2층집. 안성/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 촬영지인 경기도 안성시 고삼 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2층 주택에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고삼 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듬해 7월과 12월 저수지 하류 쪽인 고삼면 월향리에 농지 836㎡와 임야 692㎡를 3억8382만원에 매입해 이 집을 지었다. 저수지 상류를 교량으로 통과하는 서울-세종 고속도로가 2022년 완공되면 서울까지 거리는 40분대로 단축된다. 저수지 상류에 나들목과 휴게소도 세워진다. 김 의원은 “도로공사 의견도 그렇고 나도 적극 찬동했다. 고속도로는 주민이 이용하게 진출입로가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26일 한국도로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고삼 나들목과 휴게소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고삼 저수지 인근이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철새 개체 수를 조사하는 ‘조류 동시 센서스’ 지역이어서 교량과 휴게소를 최대한 우회 또는 이격해달라고 도로공사에 기관 협의 의견을 냈으나, 최종적으로 휴게소 면적 500㎡를 줄이고 교량은 저수지를 근접 통과해 조망권이 확보되는 방안으로 결정됐다. 김 의원은 지난해 7월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 고속도로 휴게소에 친환경 농민 시름…4개월 만에 미실현 시세 차 2억3000여만원

20대 총선에서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을 공약으로 낸 이듬해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농지와 임야를 매입해 지은 2층집에서 저수지가 한눈에 보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과 달리 저수지는 고인 물인데 휴게소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차량에서 나오는 타이어 분진 등이 수질을 오염시키겠죠. 농민들은 반대하다 체념 한 것 같아요. 당장 오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10년 지나면 친환경 농사짓겠습니까?”

고삼면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김사욱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삼면은 1994년 국내에서 최초로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지역 중 한 곳으로 경기도 학교 급식과 친환경 농산품 협동조합 ‘한살림’에 연근과 쌀 등을 납품한다. 고삼농협 관계자는 “고삼면 일대 농지 300㏊ 가운데 150㏊가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고 설명했다. 고삼면은 농업과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 접객으로 생계를 잇는 어업인이 많다. 어업계장 유성재씨는 “휴게소 불빛 공해도 그렇고 교량이 하류가 아닌 어류들이 산란하는 상류를 지나는데 물고기가 폐사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초안과 본안, 보완 1·2차 협의 단계에서 줄곧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저수지 및 하천 등 수변을 교량으로 통과하는 구간은 수생환경 및 조류 등 생물 다양성에 직간접적 영향이 예상되므로 경계선으로부터 최대한 이격하거나 우회해야 함. 특히 고삼 저수지는 환경적 측면에서 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지역으로 휴게소 설치는 변경 방안을 재검토해 보완 제시”(전략환경영향평가), “생태 자연도 1등급지가 훼손되는 구간은 터널 출입구, 교각 설치 등에 따른 훼손을 최소화 또는 제척할 수 있는 방안을….”(환경영향평가 본안 이후 1차 보완 의견)

그러나 교량은 저수지를 통과해 생태자연도 1등급지 산을 지나는 쪽으로 설계됐다. 교량 높이에 맞추어 생태자연도 1등급지인 산악 지역을 깎아야 한다. 한국도로공사 품질환경처 관계자는 “휴게소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환경부 의견을 따라 저수지에서 휴게소를 좀 이격시키고 면적을 줄였다. 산을 깎기 때문에 (야생 동물을 위한) 생태통로를 만드는 대안으로 환경부와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성남 구간에 대해 최종적으로 ‘조건부 동의’ 의견을 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김 의원이 평당 107만여원에 농지를 취득한 지 4개월 만에 바로 옆에 자리한 같은 조건의 농지가 두 배에 가까운 평당 199만여원에 팔렸다. 4개월 만에 2억3272만원의 미실현 차익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고삼저수지 월향리 일대 땅은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정아무개(87)씨 가족이 대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씨 가족이 2017년 월향리 일대에서 매매한 농지와 대지 등 5개 필지를 보면, 177만~199만원에 거래됐다. 전 소유주로부터 땅을 반값에 매입한 경위를 묻자 김 의원은 “팔리지 않아 땅 주인이 7년 전부터 사달라고 했던 토지를 제값을 주고 샀다. 가격이 높아 지인들이 만류했으나 거주 목적으로 샀으며 고등학생인 자녀 학업이 끝나면 그 집에 이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에서 집을 지을 경우 농지와 대지 건폐율이 20%로 동일하기 때문에 가격 차이는 10%밖에 나지 않는다. 농지에 집을 지으면 지목이 대지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과 전 소유주는 서로 아는 사인데 정치인이고 하니 싸게 준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취재 과정에서 <한겨레>에 내용증명을 보내 “고삼 스마트 나들목(IC)은 토지 매입 이전인 2016년 11월 안성시와 도로공사가 협의를 거쳐 관련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공약으로 내놓은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은 안성시와 한국농어촌공사가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아직 사업이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김 의원은 지난해 3월 박성진 한국농어촌공사 안성지사장과 만나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 진척 사항 등을 놓고 논의하기도 했다.

■ 의원 아내의 땅 일대를 산업단지와 연결해준 2억7800만원짜리 도로

경남 밀양시 부북면 사포산업단지 방음벽 밖으로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의 농지 등 일대 토지가 가로 막혀 있었으나 삼흥열처리 공장 옆으로 신규 도로가 개설되면서 양쪽 지역이 서로 연결됐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매입한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밭에는 잡풀만 무성히 우겨져 있었다. 2097㎡ 면적의 밭은 허리까지 풀이 자라서 걸을 때마다 다리에 도깨비 풀이 들러붙었다. 밀양시는 2014년 3월21일 이 농지에서 직선거리 85m 거리에 2억7800만원을 들여 1차선 도로를 내기로 결정하고 시장 결재를 받았다. 당시 엄용수 밀양시장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이 도로는 인근 사포산업단지에서 소규모 사찰 대성사를 지나 예림서원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 252m의 도로다. 엄 의원 농지는 예림서원 옆에 있다.

밀양시청 건설과 관계자는 “산업단지 주변 농지 소유자가 불편하니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있어서 도로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시청 건설과 서류상 기록된 민원 제기자는 한 명으로 인근 사포산업단지 기업체 협의회장 주아무개씨였다. 주민 한 명의 민원에 도로를 개설하냐는 질문에 시청 관계자는 “비법정 도로를 놓는데 정확한 기준은 없다”고 답했다. 엄 의원은 “인근 사찰과 산업단지 사이에 방음벽을 설치하려는데 스님이 방음벽으로 인해 사찰 손님이 줄어든다고 1인 시위를 했다. 민원 해결을 위해 도로를 놓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농지와 관련 없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엄 의원 아내가 농지를 사들인 2004년 5월은 밀양시가 사포산업단지 조성을 준비하던 때다. 인근 ㅅ부동산 관계자는 “그때만 해도 밀양 시내와 이 일대 사포리 지역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도시 기본구상이 발표되고 산업단지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인기 있는 땅이었다”고 말했다. 밀양시는 당시 건설교통부와 협의를 거쳐 그해 12월 사포산업단지 지구지정을 승인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엄 의원 농지는 산업단지 방음벽 밖에 놓이면서 토지 수용도 안 되고 매매도 어려워졌다. 2억7800만원을 투입한 신규 도로는 산업단지 방음벽 밖에 놓인 절과 엄 의원 땅을 포함한 농지, 그리고 산업단지 내부를 이어준다. 엄 의원은 “농사지으려고 해당 농지를 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사포리 땅 외에 그의 아내가 2014년 1억3100만원에 매입한 밀양시 용평동 밭(790㎡)도 잡풀만 우거진 채 방치돼 있었다. 몇 가지 예외 사항은 있지만, 농지법 제6조는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원칙상 농지 소유를 제한한다.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보유한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농지에 잡풀이 무성히 우겨져 있다. 밀양/박유리 기자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소유한 밀양시 용평동 밭에서도 작물을 찾을 수 없었다. 밀양/박유리 기자

■ 교통정체 해소 위해 의원 땅에서 멀어진 울산 도로

“현재 이 지역이 화봉 경찰청 운전면허장인데, 당초 이쪽으로 도시 계획이 돼 있었는데 면허시험장 전체를 다 옮기려면 문제가 많다. 그래서 저희가 선형을 강길부 의원님께 보고했고 이 개설은 전액 국비로 합니다.”(2008년 2월14일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회의록)

회의록에 기록된 김상채 울산시 투자지원단장의 발언이다.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면서 통상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도로공사로부터 노선 설계를 보고받는다. 건설교통부 차관 출신 강길부 자유한국당 의원은 울산 길천산업단지 진입도로 예산을 정부 안보다 증액해 2008~2010년 375억원을 확보했다. 강 의원이 1955년 증여받은 농지는 3필지(4016㎡)로 해당 도로에서 직선거리 1.1㎞ 떨어져 있다. 원래 강 의원 토지와 가까운 태화강 오른쪽 직선으로 나려던 도로는 태화강 왼편으로 둘러서 나게 됐다. 김 단장의 시의회 발언처럼, 면허시험장 전체를 옮겨야 하는 문제에다, 차량 정체 해소를 위해 인근 언양 시가지를 피해 가야 한다는 주민 탄원서가 반영된 것이다. 강 의원은 “처음에 태화강 강변으로 직선으로 길이 나야 비용도 적게 들고 농지 잠식도 적어서 그렇게 주장했지만, 울산시가 바꿨다. 결과적으로 현재 도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 토지 공시지가는 4억8755만원으로 2008년 도로 착공 이후 63.1%증가했다. 밀양·울산·안성=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