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제주도민이 '됐다' 할때까지 4.3진실 채울 것"

박미라 기자 2019. 4. 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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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할머니는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그저 바다를 좋아하시는구나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948년 4·3 당시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굴 저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맨발이 참 시렸다고 했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이 다 끌고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것을 본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자 누군가 아이를 잡아챘고, 돌담에 부딪쳐 기절 했습니다. 머리에 주먹만한 상처를 안은 채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 이름이 바로 김연옥입니다. 고아가 된 우리 할머니는 10살 때까지 신발 한번 신지 못하고, 전국을 떠돌았어요. 한강에서 아이스크림 팔며 생계를 잇는 등 어렵게 생활하셨어요. 그래도 제주에 살아야 부모님 잊지 않고, 누구의 자식인지 기억할 것 같아 18살에 다시 제주에 오셨습니다. 바다에 버려져 시신은 없지만 가족들의 묘(헛묘)를 만들어 지금도 정성껏 벌초하십니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바다에서 물고기에게 다 뜯겨 먹이가 됐을까봐 지금도 생선은 멸치 하나도 절대 드시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파도치면 부모님이 ‘연옥아 연옥아’ 하고 두팔 벌려 부르시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할머니도 두 팔 벌려 바다에 들어갈 뻔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고운 할머니가 그런 아픔 속에 사신 줄 몰랐습니다. 더 이상 자식들에게 못해 준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4·3생존희생자인 김연옥 할머니(77)의 손녀인 정향신씨(23)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했다. 객석에 앉은 김연옥 할머니는 손녀의 따뜻한 편지를 듣는 내내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4·3의 광풍과 비극이 고스란히 담긴 김 할머니의 가족사에 다른 생존희생자와 유족들도 눈시울을 붉혔고, 장내는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했다. ㅣ제주도 제공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이날 오전 10시 ‘다시 기리는 4·3정신, 함께 그리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제주4·3평화공원에서 국가추념식으로 거행됐다.

이날 추념식이 시작하는 10시 제주도 전역에는 1분간 사이렌이 울렸다. 4·3추념식에 참석한 이들은 물론 참석하지 못한 이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4·3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기 위함이었다.

이날 추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제주4·3생존 희생자와 유족, 주요 인사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이 총리는 “오늘은 대한민국의 가장 잔혹한 현대사에 속하는 제주4·3의 일흔 한돌”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완성을 역사의 소명으로 받아 들였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제주도민들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며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실종자를 확인하겠다. 생존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특히 “국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과 배보상, 입법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국회와 협의하고 정부의 생각을 제시하겠다”며 “4·3평화재단 출연금도 늘어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과 불법군사재판 무효화, 트라우마센터 설립, 추가진상조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4·3특별법 전면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지난 1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심사대에 올려졌으나 정부가 대안을 다시 마련해 논의하기로 하는 선으로 마무리됐다.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4.3유족이 흐느끼고 있다. ㅣ제주도 제공

이날 추념식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정당 대표도 총출동해 일제히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했다.

추념식에서는 4·3 희생자들이 겪은 억압, 수형인 18인이 ‘공소 기각’ 판결을 형상화한 퍼포먼스 ‘벽을 넘어’도 공연됐다. 지난 1월 4·3생존수형인 18명은 4·3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적인 절차에 의한 이뤄진 것임을 인정하는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은 셈이다.

추념식에서는 또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 의미를 담은 도올 김용옥의 ‘제주평화선언’, 배우 유아인 등 젊은 세대의 결의와 다짐이 낭독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제주4·3평화공원 위패 봉안실에는 지난달 26일 제주4·3위원회에서 추가로 인정된 희생자의 위패가 새로 봉안됐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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